준회원님과 중구에서 취하기
2019년 여름, 아르바이트와 취업 준비로 밋밋하던 나날들. 싱거운 일상 몇 조각을 짭조름하게 요리하기 위해 불러낸 친구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맛동산의 준회원! 내장류 불가에 버섯도 어려운 그지만 어쩐지 한잔 마실 술을 두잔 마시게 하는 알콜성 마력이 있는 남자. 그런 그와 중구라니, 멸망을 자초하는 일이지만 기꺼이 뛰어들었던 나날들을 요약해본다. 을지로와 충무로, 그 옆 필동에까지 꾸밈 없는 가게들을 쏘다녔던 그때 그 여름으로.
아는 맛의 무서움이 첫째요, 가게의 모습에서 세월을 마시니 배채우며 알딸딸해지기에 안성맞춤인 곳. 산수갑산에서 황평집 방향으로 뻗어있는 LA갈비 골목, 용강식당은 그곳에 용감하게 서있다. (웃음) 우리는 좁은 가게 안에서 정겨웁게 음식과 만났지만 날씨가 좋을 때면 골목에 있는 가게들은 일제히 야장을 늘여놓는다. 그 풍경이 꽤나 매력적이어서 보는 순간 엉덩이가 들썩거릴 정도. 'LA갈비 골목'을 검색하여 이미지를 보면 움찔하는 엉덩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맛도 맛이지만 그에 더한 구수한 감성이 입맛을 땡기는 그런 곳이다.
이토록 허름할 수가, 허름이란 것이 이토록 매력적일 수가. 취하지 않을래야 취하지 않을 수 없도록 설계된 곳이 아닐까. 와-미쳤다라며 탄식을 반복한다. 사진을 보자, 맛으로 먹나! 아니다, 가게의 기운을 먹는 곳이다! 꼭 다시 가야겠다는 다짐이 자연스레 가슴에 박힌다. 함부로 가면 안된다. 좋은 날에, 좋은 사람들과 갈 것이다. 코밍순. 기억하기로 아마 준회원의 취업 과정을 들었다. 진로 탐색 끝내주게 했다며 확신에 찬 응원을 했던 기억이다. 낄낄거리다 이따금씩 찾아오는 진중함은 소주의 참맛이기도 하다.
갔어야 했다. 허나 어찌 가겠나. 술이 술을 부르는 짙은 농도로 취했으니. 길을 걷다 유난히 밝은 야외 테이블이 눈에 띄어 앉아버리고 말았다. 육회를 시켰고 유쾌하게 종말을 맞이했다.
어찌 또 이런 곳을 찾았을까, 골목에 또 저기 골목으로 들어가 닭볶음탕. 오래 전이라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맛있었으리라. 간판으로도 이미 충분한 안정감이 있다.
이날은 왜 가벼웠을까? 만선호프에서의 맥주로 마무리하는 것이 가능했단 말인가? 이럴 때도 있었나보다!
또다시 어마한 곳. 모아서 보아하니 3일 모두 1차로는 중구의 리얼 오리지널 진땡 노포로 시작했구나 싶다. 각자 1인용 감자탕에 소주 한 병씩.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주인장과 몇 이웃들이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었는데 우리에게 건네는 한 마디가 꽤나 묵직했다. 정겨웠다.
무슨 말이 필요하랴. 사진으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낮술이다, 낮술! 가벼운 안주들에 가벼워지는 내 정신머리! 이것이 노포다! 마시고 죽자!
역시나 끝을 냈어야 했지만, 걸어간 곳은 광장시장. 우리의 마지막엔 육회가 있네.
19년 여름, 준회원과의 만남들을 쭉 돌아보니 맛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서도 낄낄대던 기억들이 새록새록하다. 입꼬리가 시익 올라간다. 야무지게도 다녔고 참 잘 찾아갔다. 백수 신분으로 낮부터 들이켰던 쨍-한 소주의 나날들, 돌아갈 수 없어 괜히 또 아련하다. 하지만 우린 안다. 허무맹랑한 농담과 실없는 웃음과 다시 웃음기 뺀 이야기들로 언제든 술잔을 부딪히며 그날의 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꼴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