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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갈빵 Jan 01. 2024

2023 공갈빵 어워드 : 최고 술집5

줄인다고 줄였으나 사실상 오십보백보. 여느 해와 다름 없던 2023년의 음주 활동 중 나만의 베스트를 추려내고보자 몸 아픈 연말에 고독히 끄적끄적해보려 한다. 침대에 누워 푹 쉬고자 하면서도 심심함을 느끼는 필자에겐 이만큼 의미 있고 치열한 고민은 없을 터. 노트북을 열어 리스트를 적어본다. 그간 다녀온 곳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나비 넥타이를 맨 시상자가 된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 공갈빵의 소소한 취향 고백, 모든 건 내 기분 탓에 의한 결정이다.



1. 또또

8월의 밝은 오후, 연남동에서 좀 더 넘어갔다. 처음 마주한 동네, 주말의 낮과 딱 어울리는 조용한 나른함이 있었다. 근처 카페에서 여자친구와 여행 계획을 세우다 오픈 시간에 맞춰 곧장 문 앞으로. 여름날의 5시는 낮술로 분류해도 무리가 없는 듯 했다. 낮술을 시작할 때의 그 오묘한 설렘을 모두 가지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술=밤' 이라는 공식에서 벗어난 어른들의 몇 안되는 탈선에서 오는 감정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그런 들뜬 마음으로 입장했다. 이곳을 강력하게 추천했던 친구도 함께였다.

이곳의 시그니처인 두부김치. 이토록 정성스러운 두부김치를 본 적이 없다. 이에 더해 기본안주는 콩나물 잡채다. 이 두가지 어필만으로도 낚아챌 몇 술고래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무장은 해제된다. 애견이 동반되는 곳이라고 한다. 나도 곧 여자친구의 애견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멍멍. 평범하기에 특별한 곳이라고 생간한다. 흉내낼 수 없는 평범함, 그것이 참 비범하다. 돈 내고 먹지만서도 정성스러운 음식들에서 고마움을 느끼기도 하고 응대에도 친절한 섬세함이 있다. 이곳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아마..그래, 기분 탓이 제일 큰 것 같다.

아늑하다. 보고싶던 친척네에 놀러온 것 같이 불편하지 않고 포근하다. 비우고 비워낸 공간이라 부담 없고 담백하다. 남은 공간에는 하트 모양의 공기 방울이 뿅뿅 떠다니는 듯. 술집 주제에 사랑스러운 곳이라고...감히 표현해본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놓여 술이 술술 넘어간다. 이곳을 권유해준 친구에게도 감사할 따름, 아마 내가 무척이나 좋아할 거라 생각했을 터. 갈수록 예민해지는 술집 선택 활동에 있어 동네와 공간이 주는 특별 점수가 꽤 커지지 않나 싶다. '맛있음' 은 당연함이고!

지는 해를 체감했음에도 쉽게 일어나지지가 않았다. 앉아있을 때까지는 정신이 괜찮은 줄 알았는데.

또또의 인스타그램 또한 사랑스럽다. 늘 친절하고 배려가 넘친다. 한 브랜드의 마케터처럼 술을 이쁘게 소개해주시기도 하고 날씨에 따라 계절에 따라 새로운 메뉴를 내어주시기도 하는 모양이다. 거리가 멀어 매번 갈 수 없으나 문득 문득 떠올라 여자친구와 이야기한다. "아, 또또 가고 싶다!"

여름에 한 번, 가을에 한 번 다녀온 곳이다. 요즘 보아하니 눈 내린 겨울 저녁의 분위기 또한 상당하다. 그곳에 있는 나를 상상해본다. 또 가고 싶다, 또 보자!



2. 순돌이곱창

또또를 추천한 친구의 고향은 군산이다. 순돌이곱창은 군산에 있다. 군산은 맛있다. 엥.

19년도인가 20년도인가 한 차례 들른 적이 있다. 불향이 입혀진 음식들에 여행뽕까지, 좋은 추억으로 남았더랬다. 올해 3월, 여자친구의 생일을 기념하야 군산여행을 기획한 바! 그녀의 입맛을 딱 훔칠 것이라 생각하여 첫날 코스에 집어넣어버렸다. 결과는?

말해 무엇하리! 우리 둘의 표현으로는 맛없없(맛이 없을래야 없을 수 없는) 메뉴다. 막창, 곱창, 고기 등을 섞어 주문하면 된다. 냄새가 없다고 할 수 없다. 아니 조금 난다. 근데 웬걸, 난 어느정도의 냄새를 좋아한다. 자, 연말에 이런 글을 쓰는 돼지쯤 되면 파에 집중한다. 저 볶아진 파의 맛을 알고 나서, 술을 알았다 생각했을 때보다 더 큰 어른이 된 것만 같았는데...여전히 아기돼지이다. 불맛, 불맛이 여기저기서 쏟아지지만 이곳이 내 기준, 불맛의 적당함이라고 생각한다.

슬 물릴 때가 되었나? 쌈에도 싸먹었다고? 서비스 김치찌개를 드시라. 이 진부한 표현까지 쓰기는 싫었지만, 찌개로 소주 두 병이다. (웃음) 막판에 찌개 맛에 눈이 번쩍 뜨여 여자친구와 감탄을 내뱉었는데. 왜 맛있었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울음) 다시 가봐야 할 아주 좋은 구색이다. (웃음)

가족들과 여행객들이 얼마 없는 자리를 채운다. 오래된 맛집의 분위기 또한 일품이다. 아빠다리를 하고 먹는 자리를 부여받은 우리는 쉽사리 일어나지 못한다. 엉덩이 띄우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여긴 분명 소주다, 소주. 한 병 더다, 한 병 더!


3. 요코스카쓰나미

아늑하고 포근한 분위기, 노포의 분위기가 가미된 위 두 곳과는 달리 이곳의 선정 이유는 맛이 지배적이다. 숙성회의 눈을 뜬 곳이다. 심청이는? 또또와 순돌이를 건넨 그 자식이다. 영향력 좀 행사하는구만, 신스틸러상 정도는 부여해야 되겠다.

형형색색 이쁜 것 말고는 아직 잘 모르겠던 숙성회의 세계, 어딘가 밋밋했던 입질의 추억이 있었다. 근데 그와 이곳에서 같은 부위를 한 점, 한 점 먹으며 맛에 대한 고찰을 나눌 때 비로소 깨달았다. 우린 진짜 돼지란 걸. 엥. 아니, 생선 하나하나의 특징이 이렇게나 선명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쓰나미의 인스타를 팔로우하고 재료의 재미와 또 매일 새벽 노량진에서 고기를 가져오는 사장님의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두 번째 방문은 여자친구와 셋이었다. 다금바리를 가져왔다는 인스타그램을 보고는 출정을 결심했다. 협소한 곳이어 세 명인 우리가 들어서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비싸고 비싼 다금바리를 어디서 경험해보겠는가. 이런 고급 어종(?) 이벤트도 종종 일어나니 그 매력이 대단히 대단하다. 항정살 튀김 '도로카츠' 와 '금태 사시미' 를 가지고도 감동하며 그 녀석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여자친구의 귀에는 아마 꿀꿀거리는 소리로 들렸을 지도. 어이없어하는 그녀의 눈빛이 아직 선명하다.

어둡고 좁디 좁은 곳, 동선은 불편하나 맛에 대한 얘기만 두 세시간을 채울 수 있다. 그러다보면 소주병을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딱히 큰 이유는 없으나 회에 대한 (나만의) 기준이 올라갈 때 즈음 만나 기준이 된 곳 같다. 이 가격에 이 구성에 이 맛이라고? 뭔들 불편함은 감수할 수 있다. 사악한 웨이팅마저도.


4. 희로

좁디 좁은 곳이라  스푼 아쉬웠던 쓰나미와는 달리, 이곳은 좁기에 완성된  같았다. 겨울 바람 쎄게 불던 일요일, 연희동 중국집에서 한잔을 마친 후 2차였다.

사람이 너무 좋을 때면 다양한 설명 대신에 가장 기본적인 감탄을 외치지 않는가. '와', '진짜 좋다', '여기는 진짜 키스각이다' (삐질&웃음)

관심이 있다면 지도앱에 들어가 '희로'를 검색해보시라. 몇 천원대에 '무', '아스파라거스' 같은 메뉴들이 적혀있는 것이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들어가 경험해보니 그 단정한 메뉴명에서, 그 기본의 맛이 어찌나 짱이던지. 하나하나가 모두 좋지만 또 여러가지 시킬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해주니 더욱 좋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일본풍의 술집들이 많지만 여긴 정말 일본인 걸. 좋아하는 일본 영화 심야식당의 ost가 절로 들려오는 듯 했다. 따뜻한 술과 무, 스지, 오뎅에서부터 시작해 메뉴 탐구를 이어갔다.

여행을 온 듯한 새로운 공간이다. 누군가와 무르익기에도 알맞은 곳인 것 같다. 사랑이건, 우정이건! 보다 가까운 자리에서 내놓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들을 구태여 꺼낼 수 있는 잔잔한 용기가 생기는 곳. 취함이 일품인 곳. 다만 절제도 가능할 것 같은 곳이었다. 겨울에 방문한, 그것도 바람이 세차게 불던 일요일의 희로에 대한 감상은 이러했다. 여름이면 창문을 열고 창문 사이로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그때의 맥주도 분명 일품일 것이다.


5. 공실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부산으로 갔다. 소주가 제격인 음식들이 즐비해있는 부산이지만서도 날도 날이니 세련된(?) 술도 한 잔 곁들이면 그만한 밸런스가 또 없으니 열심히 찾아봤다. 개중에 찾은 곳이 공실이었다. 이만치 좋을 지는 몰랐다.

내가 생각하는 빠 는 보통 차가운 속성을 가지고 있다. 공실은 식물과 나무들이 함께였다. 초록색, 나무색이 주를 이루었고 우드 소재의 디테일이 이곳저곳 있어 찾아내는 눈도 즐거웠다.

남포동 언저리 골목을 가다 3층짜리 계단을 올라서면 이런 곳에 이렇게? 하는 장소가 반겨준다. 두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한 곳은 본관(?)이 다 차면 안내하는 별실이라고 했으나 또 탐이 나기도 했다. 그래도 빠 는 또 빠 자리가 좋은지라 둘이서 나란히 앉아 모르는 술 이름을 이리저리 골라봤다. 그러다가 태블릿을 주기에 신청곡도 추가했다. 주문한 화이트 와인과 진토닉, 추가했던 위스키 두 잔에 더해 꽤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근래 종종 2차나 3차에 빠 를 가곤 한다. 만남을 끝내기는 아쉽지만 그러자고 냅다 부어버리면 내일이 힘드니 덜 취해서이고 싶은 경우가 많다. 적지 않은 곳을 가봤다(기에는 빠 가 너무 많기도 한 것 같지만) 그 빠 마다의 특징들이 어느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은 사뭇 달랐다. 다르기에 좋았던 경험인 것 같다. 더불어 곁에 누가 있었느냐가 만들어주는 기분일테고! (삐질)

부산에 가서 잠시 사투리 쓰는 직원이 있는 빠 의 매력...아니아니, 플랜테리어의 감성에 한 번 취하고 (소주보다) 비싼 술에 또 한 번 취하는 경험을 중간을 꼭 끼워넣기를 바라본다.




이뿐이겠는가! 2023년에는 넘치고 넘쳤던 좋은 자리, 좋은 사람, 좋은 음식, 좋은 시간, 좋은 술이 있다. 수원 순대타운의 허름한 맛도 좋고 마포 부영각에서 먹었던 복튀김도 생각난다. 서대문의 맥주 살인마 텐조에선 지갑을 열지 말지어다. 연남동의 이노시시도 기억에 남는다. 저기 저 모란에는 페이브라는 맛있는 귀여움이 있었고 평택에는 주말 한잔이 어울리는 와인집 다이브인투 가 있었다. 회사를 마치고 터벅터벅 걸어가던 날에 마주친 명가순대국에서 오소리감투순대국에 소주 한 병 을 내일 해야겠고, 겨울이 됐다고 여자친구랑 달려갔던 금호의 은성보쌈도 눈 똥그라지게 맛났다. 그리고 사실 매번 고심해서 차려주는 엄마의 밥상이 최고지! (급작스러운 훈훈 전개) 그리고 내일 출근이다. 아..XX. (급작스러운 짜증) 다들 2024년, 많이 먹으세요! 때깔 좋은 귀신이나 되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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