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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이방인2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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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구년생곰작가 Sep 30. 2024

침몰하는 배






회사를 상대로 법정 싸움을 준비하는 나는 이미 이곳에서 더 이상 머물 이유가 없었다. 그동안 노동철 변호사와 함께 소송 준비에 매진하느라 업무에 소홀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퇴근하고, 회식에 참석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고, 그런 내 모습을 부서 사람들은 탐탁지 않게 여겼다. 특히 부서 과장은 내가 회사에 소송을 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나를 차갑게 대했다. 그의 시선 속에는 분명한 불편함이 느껴졌다.



사실 이런 상황이 오래갈 수는 없었다. 한편으로는 회사에 남는 것이 의미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 내 마음은 이미 이곳을 떠나고 있었다. 그래서 미리 써두었던 사직서를 서랍에서 조용히 꺼냈다. 



"어찌 되었건, 첫 사회경험이었는데, 이렇게 끝나게 되어 아쉽긴 하네." 



나는 사직서를 손에 들고 과장에게 향했다. 과장의 책상 앞에 다다랐을 때, 내 마음은 무겁고 복잡했다. 그에게 사직서를 제출하며, 더 이상 회사에 남기 어려운 이유를 설명했다.

과장은 내 말을 듣고 난 후 잠시 침묵하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흠... 아쉽군. 하지만 자네가 노조에 있으면서 업무에 소홀했던 것은 사실이네. 처음에는 나도 회사 입장에서 자네를 색안경 끼고 본 게 맞지. 그 부분은 미안하게 생각해. 그러나 자네가 조금만 더 회사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일해줄 수는 없겠나? 자네가 전 부서에서 고가 평가도 좋았던 것으로 알고 있어. 뭐, 부당하게 이곳으로 전출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처음처럼 힘들진 않을 거야."


그는 말을 이어갔다. "솔직히 나도 이제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 회장과 이사 같은 경영진들이 회사의 방향을 마음대로 정하고, 우리는 그저 그들의 결정에 따라 움직여야 하지. 예전에 중국에 시설이랑 기술 투자를 한 적 있잖아. 주변에서는 시기상조라고 했지만, 회장의 고집으로 밀어붙였지. 결국 어떻게 됐나? 인력 유출에 기술 유출, 그리고 무리한 투자로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지."


과장의 말투는 평소와 달리 깊이 있는 고민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대기업도 아니고, 이런 상황에서 무리한 투자로 회사를 구할 수 있는 여력이 없네. 나도 여기서 15년을 일했지만, 요즘은 나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네. 그러나 아직은 조금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네. 자네도 한 번만 더 생각해보지 않겠나? 회사가 살아야 직원들도 사는 것 아니겠는가? 사직서는 받아두겠지만, 자네도 좀 더 생각해 보게."



나는 그의 예상치 못한 말에 잠시 당황했다. 과장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도 이 회사에서 나처럼 고민하며 시간을 보냈던 걸까? 그동안 과장을 회사의 수호자로만 봤던 내 시선이 갑자기 달라졌다.



과장의 말을 뒤로하고, 나는 자리로 돌아와 사직서를 다시 손에 쥐었다. 회사를 떠난다는 결심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지만, 과장의 말이 계속해서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가 말한 회사의 상황, 경영진들의 결정, 그리고 남은 직원들의 미래. 내가 떠난다면, 그들은 어떻게 될까? 그들도 나처럼 회사를 떠나기를 꿈꾸고 있을까? 아니면 나처럼 싸움을 이어갈 힘을 잃고, 그저 순응하고 있는 걸까?



내 마음은 더욱 복잡해졌다. 회사를 떠난다는 결심을 내리면서도, 과연 이곳을 떠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최선의 선택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회사를 향한 나의 마음은 예전과 달리 한결 가벼워졌다는 것이다. 퇴사의사를 내비친 후, 나는 마치 긴 족쇄에서 벗어난 듯했다.



그러나 동시에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내가 떠나면 남은 직원들은 과연 어떻게 될까? 그들의 삶은 회사의 부침 속에서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 회사의 미래는 바람 앞의 등불 같았다. 그러나 그 불안감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저 회사라는 거대한 시계가 돌아가는 대로, 함께 돌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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