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서를 제출한 후, 나는 퇴사를 기다리며 조용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노동철 변호사의 소개로 지역 언론사 기자인 민기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밝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어린 나이에 노동조합 비대위원장님이 되셨습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사실, 제가 이런 일을 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반도체 공장에 들어와 일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고요."
민기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군요. 제가 알기로는 재작년 초에 현장실습생으로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바로 현장에 들어가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나는 눈을 잠시 피하며 대답했다.
"그 부분은 좀 복잡합니다. 사실 부모님께는 배낭여행을 다녀온다고 말씀드렸거든요. 지금까지 연락을 끊은 상태라서... 만약 이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면 부모님도 크게 놀라실 거예요. 그러니 인터뷰에선 이 내용은 빼주시면 좋겠습니다."
나는 억지로 웃음을 지었고, 민기자도 다소 당황한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습니다. 그 부분은 생략하죠."
잠시 침묵이 흐르다 민기자는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럼 노동조합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게 된 계기가 있나요?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 질문은 내가 예상했던 것이었지만, 여전히 답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솔직하게 말하기로 결심했다.
"사실 처음에는 노동조합이 뭔지도 몰랐어요. 그런데 제 친구가 죽으면서 제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죠. 친구의 죽음 이후, 공장 내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한 처우와 부당한 해고, 저임금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노동조합 활동에 참여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어요."
민기자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정말 뜻깊은 일이네요. 친구분의 죽음이 큰 계기가 되셨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친구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이 사회의 문제들을 직면하게 되었어요. 그 친구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민기자는 메모를 멈추고 나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당신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될 것 같습니다."
나는 민기자의 말에 가볍게 미소를 지었지만, 내 마음속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친구의 죽음이 나를 이 길로 이끌었지만, 그 길이 올바른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는 분명했다.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친구의 기억이, 그리고 나의 결심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