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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이방인2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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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구년생곰작가 Sep 28. 2024

깊은 어둠






한편 회사의 전무이사이자 회장의 둘째 아들인 김이사의 방문은 마치 기다렸던 순간처럼 성민이의 어머니 집 앞에서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허름한 집 문을 두드린 소리가 어머니의 가슴속 불안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문을 열자 전무이사와 그의 수행원 두 명이 서 있었다. 김이사는 어머니를 보며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마치 오래전 친구를 만난 듯한 미소였지만, 속내를 숨긴 차가운 기운이 가득했다.



"어머니, " 김이사가 입을 열었다. 


"예전에 아드님이 사고로 돌아가신 건 정말 안타깝습니다. 저희 회사도 그 일을 참 슬프게 생각하고 있지요. 저희도 산재로 인정되지 못한 부분은 정말로 유감입니다."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그녀의 눈에는 피로와 고통이 가득했다.



"하지만, " 김이사는 마치 한숨을 내쉬듯 말을 이었다. 


"아드님의 실수로 저희 회사도 막대한 손해를 입었습니다. 어머니도 그 점은 이해해주셔야 합니다."



그의 말은 날카롭게 다가왔다. 이미 한 번 합의를 마친 일에 대해 다시 꺼내는 것은 분명히 불쾌한 일이었다. 그러나 김이사의 표정은 무척이나 차분했다.



"물론, 어머니를 탓하는 것은 아닙니다." 김이사가 살짝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저희가 미안한 마음에 5천만 원으로 합의를 봤지 않습니까? 더 이상의 말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는 여전히 아무 말 없이 그들을 응시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혼란과 공포가 뒤섞인 감정이 요동치고 있었다.



"다시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면." 김이사는 말을 잠시 멈추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저희도 업무방해나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밖에 없다는 점, 기억해 주십시오."


그의 마지막 말은 더 이상 회유가 아니었다. 명백한 협박이었다. 김이사를 포함한 세 명의 남자는 집 안의 허름한 가구들 사이에서 어머니에게 정신적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네, 그럼요. 저희도 회사 덕분에 이렇게 작은 가게라도 열 수 있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어머니는 마침내 말문을 열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그들이 떠난 후 어머니는 문이 닫히자마자 무릎을 꿇고 흐느꼈다. 그것은 아들의 죽음과 그녀의 무력함에 대한 울음이었다. 그리고 그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나는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노동철 변호사가 들어와 앉았지만, 그의 표정도 무거워 보였다. 나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니를 설득하지 못하면, 형사고소나 민사소송도 불가능할 텐데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까지 준비해 온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성민이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회사의 부주의와 무책임한 노동 환경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히려 애썼다. 그러나 어머니가 협박에 굴복한다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것이다.


노동철 변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딱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아는 기자가 있습니다. 인터넷신문이나 유력 방송국에서 일하는 기자죠. 언론을 통해 이 사건을 공론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잠시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곧이어 변호사의 눈빛이 다시 어두워졌다.



"하지만, " 그가 말을 이었다.


"아직 나이도 어리고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셨는데, 당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 수 있습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공론화가 되면 더 이상 이 사건은 조용히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회사는 물론이고, 성민의 죽음을 둘러싼 많은 이들이 적이 될 수도 있었다. 나는 잠시 마음속 갈등에 휩싸였다.



"당신의 인생 전부를 걸어야 할 겁니다." 노동철 변호사는 경고하듯 말했다. 


"앞으로 평범한 삶을 살아가긴 어려울 겁니다. 당신의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끊임없이 공격받고 위협받을 것입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말이 너무나도 무겁게 느껴졌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가 덧붙였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살기 힘들어질지도 모릅니다. 친구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저도 고민이 되는 건 사실입니다."



그의 말을 듣고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내 머릿속에는 성민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가 마지막으로 나를 봤을 때의 그 슬픈 눈빛, 그리고 그가 노동 환경 속에서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 내가 결심하듯 말했다. 


"하지만 당신 말이 맞습니다. 저의 인생이 걸린 일이니 신중히 생각해야겠죠."



노동철 변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태일 지부장도 아마 이해할 겁니다. 당신의 절박한 이야기를 듣고 선뜻 도와주기로 했지만,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는 책상 위에 놓인 서류들을 무심코 훑어보았다. 그 서류들에는 우리가 오랜 시간 준비해 온 증거들과 성민의 죽음에 대한 자료들이 가득했다. 그 서류들이 이제 아무 의미 없는 종이조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해결 창구가 있으니, 좀 더 생각해 봅시다." 변호사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우리는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내 마음속은 마치 깊은 어둠 속에 빠져드는 것처럼 복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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