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소나무
지난 번에 얘기한 그 오빠.
그 오빠를 만났던 그 모임에는 우리말고 다른 대표커플이 있었다.
진짜 예쁜 언니가, 진짜 잘.. 못 .. 생긴 남자애랑 사귀었다.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세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둘은 알콩달콩 서로를 위하고 서로를 웃겨하며 잘 사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들 언니한테 ‘진짜 착하다’고 했고, 언니는 "왜~ ㅇㅇ이 잘생겼잖아~"라고 했었다.
모임이 깨진지도 4년이나 흘렀는데, 어느날 언니가 모임 애들을 소환했다.
첫 번째 소환 때는 가지 못했고, 몇 달 후 두 번째 소환 때 참석했다.
언니가 신혼여행 기념선물을 줬다. 첫 번째 소환이 청첩장 모임이었다는 걸 나중에 전해들었다. 청첩장도 못 받고 결혼식도 못 갔던 나는 얼떨결에 신행 기념선물만 받은 애가 되고 말았다.
신혼여행은 그 때 그애가 아닌 다른 남자와 다녀온 것이라는 걸 다른 아이들의 "아우 형님이 듬직하시고 어쩌고"하는 이야기로 유추할 뿐이었다(그애는 언니보다 연하남이었으니까). 언니는 "아니 잘 생기진 않았는데~ 어쩌다보니~ 잘 생겨보이더라고~" 하며 웃었다. 부끄러워하는 모습마저 행복해보였다.
당황스러움과 축하와 고마움과 반가움 뭐 그런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인 채로, 집에 오는 길에서야 언니 카카오톡 프로필사진의 결혼식 사진을 찬찬히 봤다.
언니 취향 참 소나무구나.
다른 사람이 보기에 나도 그럴까?
하나도 안 닮은 것 같은 나랑 내 친언니도 다른 사람들이 보면 쌍둥이같다고들 하는데. 나를 스쳐간 그 사람들.. 내 생각엔 하나도 안 닮은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이 보면 나도 취향 소나무라고 하려나.... 까지 생각하다가 지금의 남자친구가 내 첫사랑과 닮았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중학생 때 다니던 학원은 홍보전단지에 성적우수자들의 얼굴 사진을 빼곡하게 올려놨었다. '와 이 언니가 Y여고 전교 1등이구나. 와 이 오빠가 S남고 전교 1등이구나.'하며 구경하다가 D남고 전교 1등 오빠의 얼굴을 보고 '느낌이 왔다'. 나는 그 오빠에게 내 명찰도 주고 편지도 주고 선물도 주면서 마음을 다 줬다. 그 오빠는 한 번도 받아주지 않았지만.
친한 언니가 자기 남자친구는 친구들과 이렇게 놀더라면서 노래방 영상을 보내줬다. 남자1이 못 부르는 노래를(미안합니다) 열창하고 있었고, 영상을 찍던 카메라는 도저히 남자1을 더 못 찍겠는지(미안합니다 진짜) 앵글을 돌려 다른 사람들을 찍기 시작했다. 남자2를 찍다가 남자3을 지나 남자4,5의 모습으로. 잠깐. 뒤로 잠깐 다시 돌렸다. 1초도 채 찍히지 않은 남자3을 보고 '느낌이 왔다'. 언니에게 그에 대해 다 알려달라고 했다. 그가 지금의 내 남자친구가 됐다.
취향은 불호에 대한 것도 소나무여서, 언니의 신행 선물을 받아오는 길이 불편할 뿐이었다. 나는 스크럽제도 비누도, 심지어는 핸드크림도.. 정말 잘 안 쓴단 말이야. 결국 6개월 정도를 묵혀두다가.. 이웃에게 나눔했다. 이 죄스러움이 결국 이 글을 만들었다. 언니 미안해. 잘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