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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엉 Mar 22. 2024

1일 1버리기 5일차

투 핫


우리는 봄쯤에 만났다.


그가 나를 짝사랑하고 있다는 소문이 모임에 퍼져갈 때쯤, 그의 큰 키와 매끈한 다리가 마음에 들어 사귀자고 했다.







아주 오랜만에 연애를 시작한 나는 온갖 종류의 콘돔을 다 써보고 싶었다.


노콘노섹.

세상은 넓고 콘돔은 많다.

(내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양하게 준비했어.






그러나 나는 생각보다 콘돔의 두께도, 돌기도, 굴곡도.. 핫젤이니 뭐니 하는 스페셜리티들을 잘 느끼지 못했고, 딱 하나 내가 호불호를 판단할 수 있는 건 ‘향’이었다. 향이 있는 콘돔을 선호하진 않았기 때문에, 결국 콘돔은 그의 취향에 맞춰 사게 됐다. 


여름이 되자 그에게서는 알 수 없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향’이 아닌 ‘냄새’. 

‘악취’가 자꾸 느껴져 그와 더이상 키스도 섹스도 하기 싫어졌다. 나이 지긋하신 지인 중 한 분은 간이나 위 같은 내장기관의 문제라며, 그에게 말해줘야 한다고 하셨지만.

나는 결국 이유를 대지 못한 채 이별을 고했다.


길에 주저 앉아 엉엉 울던 키 크고 다리가 매끈한 그 오빠가 떠오른다. 더이상 오빠를 좋아하지 않아, 미안해. 말하고는 그 후로 입을 닫아버렸던 내 모습도.


그를 더 달래고 사랑하기에 그 여름은 너무 더웠다.




그 오빠는 나와 헤어지고 1년도 되지 않아 결혼했다. 때때로 그 사실이 생각나 웃음이 난다.

그의 결혼생활이 3년을 넘어가도록 내 서랍에 잠자코 눈 뜨고 있던 눈알 파우치야. 이제는 안녕.









눈알파우치는 나연언냐가 품어주기로 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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