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필승 코리아
그시절 나는 얼굴에 ‘송종국’ 페이스페인팅을 하고 학교에 가던 초등학생이었다.
송종국씨가 지아아빠가 될 줄은 꿈에도 모른채, 그를 내 얼굴 위에 붙이고 다녔었다.
그 얼굴을 하고는 소고를 배웠다.
앞뒤로 돌려가며 소고를 쳐대는 게 너무 신명나서 풍물부에 들어갔다. 나는 꽹가리를 치고 싶었다.
풍물부에서 다같이 장구도 배우고 꽹가리도 배우고 북도 징도 배우다가, 선생님이 각자에게 악기를 배정해주었다.
나는 장구를 맡게 되었다.
운동장에 나가서 연습을 할 때면 꽹가리 치는 언니가 선두에서 신명나게 리드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샘이 났다.
저 자리가 내 자리였어야 했는데.
꽹가리를 흔들며 쨍한 소리를 내고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며 박자를 맞추고 막 빙글빙글 돌아가며 퍼포먼스 하는 모습이 어찌나 멋있어 보이던지. 뒤쫓아가며 장구를 치는 내 모습으론 영 만족할 수가 없었다.
꽹가리로 바꿔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송종국 페이스페인팅을 하고 학교에 가던 소녀는 그만한 용기는 없었다.
그 즈음부터 풍물부 연습을 잘 가지 않았다.
엄마한테는 운동장 모래때매 자꾸 눈이 아프다고 했다. 연습마다 괜히 보건실에도 가고 안과에도 괜히 자꾸 갔다.
친구들과 Be the Reds! 티를 입고 남문(그시절 번화가)에 가서 디델리 떡볶이를 먹는 게 즐거워지는 시기였다.
더러운 손으로 눈을 비비던 어느날 얻게 된 결막염을 빌미로 풍물부를 탈퇴했다. 선생님께는 운동장 연습 때문에 모래가 자꾸 눈에 들어가서 결막염이 생겼다고 했다. “눈이 약하대요.” 라고도 말했던 것 같다.
그렇게 방과후 활동이 없어진 뒤로 친구들과 더 많이 놀러다녔던 것 같다. 역시나 Be the Reds! 티를 입고. 송종국이랑 결혼한다느니 나는 김남일이랑 할거라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며.
대한민국 국민은 2002년을 떠올리면 가슴이 웅장해지는 사람과 웅장해지지 않는 사람으로 나뉜다.
어느새 나는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3,4인 사람들에게 “와씨 그럼 2002 월드컵 못봤겠네.” 라고 말해버리고 마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2002년.
송종국.
풍물부 탈퇴.
오 필승 코리아.
꿈⭐️은 이루어진다.
근데 진짜 2002 월드컵 안 본 사람들은 어떻게 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