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가 틀렸다 하더라도

선택에 대한 믿음과 불안에 대하여

by Epakouon 에파쿠온

게임을 하다 보면 높은 티어에 대한 갈망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은 높은 티어에 속해있지 않다.


정말 잘하는 사람들은 상위 1퍼센트 안에 들고, 게임 내에서 그들의 판단이 옳은 경우가 많다.

또 그런 사람들은 방송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채팅창을 살펴보면 시청자들은 자신의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하는 걸 볼 수 있다.


채팅을 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99퍼센트 안에 들 것이고 스트리머는 상위 1퍼센트일 텐데

그렇다면 이 때도 대다수의 의견이 맞다고 볼 수 있을까. 또한 그 스트리머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아주 명백한 정답이 눈앞에 있음에도, 집단의 압력 때문에 사람이 얼마나 쉽게 오답을 말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유명한 실험이 있다.


솔로몬 애쉬의 선분 실험인데, 선 하나를 보여준 뒤 A, B, C 선분 중 무엇과 길이가 같은지 물어보는 간단한 실험이다.


먼저 7명의 연기자와 1명의 피험자에게 질문을 한 뒤 연기자에겐 모두 오답을 말하라고 지시한다. 결과적으로 피험자가 마지막에 대답한 답이 정답인 확률은 63프로에 불구하다고 한다. 혼자 있는 상황에서의 정답률은 99퍼센트이다.


솔로몬 애쉬가 이 실험을 통해 남긴 말이 있다.

"충분한 지적 능력과 판단 능력을 갖춘 젊은이들조차도 기꺼이 흰 것을 검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는 우리의 교육 방식과 우리의 행위를 이끄는 가치관에 대해 의심을 갖게 할 수밖에 없다."


코페르니쿠스도 지동설을 주장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의 반발을 받았다.

그러나 그 후 케플러와 갈릴레이와 같은 과학자들이 증거를 찾아내면서 인정받게 된 것이다.

다수의 의견이 틀린 것이다.


다들 많은 사람이 정답이라고 해서 아무런 의심 없이 따라 해 본 적이 있지 않은가?


유행에 맞는 옷을 입는다던가 다들 좋다고 하는 여행지를 따라가는 것과 같이

가벼운 선택에 있어서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것 말고도 다른 선택의 피로가 상당하니까.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결정에 있어서도 다수의 의견에 동조하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해봐야 한다.

막연히 취업이 잘되니까 공대를 가고, 안정적이라 좋다는 말만 듣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그 끝내 자신의 본질을 살펴보지 못한 죄로 뒤늦게 그만두게 될 것이다.


그것 자체로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미 매몰 비용이 발생한 시점에서

새로운 도전에 대한 조급함은 더해져 갈 수밖에 없다.


동조 현상을 메타 인지하는 것은 개인의 관점에서도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집단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로 가능하다.


집단 전체가 비판 없이 합의만 중시하다가 비합리적 결정을 내리는 상태를 '집단사고'라고 하는데

구성원들 모두가 다수의 생각이 맞을 거라는 다소 안이한 생각이 사로잡혀 집단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다들 주장에 대한 불안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동조 현상과 집단사고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선택에 대한 불안감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운전대를 남에게 넘기는 것은 그 불안에 대한 항체를 생기지 못하게 할 뿐이다.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될 땐 노트에 믿음직한 근거들을 적어놓고

그 믿음으로 불안을 감싸 안아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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