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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PAULE Feb 25. 2017

아빠 생각이 나는 것

새벽 엘레베이터 소리

내가 사는 아파트는 방음이 잘 안된다. 현관 옆 방이자 엘레베이터와 닿아있는 내 방에서는 엘레베이터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소리니 이미 익숙해서 거슬리지 않는다. 다만 늦은 밤, 새벽에 엘레베이터가 누군가의 부름을 받고 움직이면, 그리고 그 문을 내가 사는 층 또는 그 근처에서 여는 소리가 나면 아빠가 술 찌인하게 걸치고 살금살금 들어오고 있는 것만 같다.


아빠는 술을 자주 마셨다. 좋아하기도 했고, 일을 열심히 하며 살기도 했다는 이유로 말이다. 내가 머리가 크고 난 이후에 아빠가 술자리를 갖는 날이면 엄마는 보통 먼저 잠들곤 했다. 나나 동생이 오면 알아서 들여보내고, 후처리를 하겠지 하는 믿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동생은 당시엔 일찍 잠드는 타입이었고, 걔 방은 현관과는 제일 멀리 있었다. 따라서 엘레베이터가 움직이는 소리가 잘 들리는 방을 차지하고 있던 나만이 아빠의 늦은 귀가를 알아채곤 했다. 엘레베이터가 올라오는 소리가 나면, 문이 열리고, 발자국 소리가 나다 멈추면, 우리집 도어락이 울리면 그건 바로 아빠. 아빠의 귀가. 너무 늦은 새벽에는 아빠가 민망하기도 할거고, 나가기가 귀찮기도 해서 자는 척을 했고, 조금 이른 새벽에는 스르륵 문열고 나가서 살살 현관문을 단속하는 아빠를 흘겨보거나, 졸린걸 잔뜩 참고 있는 마냥 눈을 가로로 가늘게 뜨고 인사를 했다. 그러면 아빠는 날 발견하고는 신발을 벗지 않고 멀뚱히 서서 주로 "오잉, 아직도 안 자고 있냐?"라고 약간 정신없이 큰 목소리로 말했고, 그런 아빠에게 나는 "아, 다 자니까 빨리 들어와서 씻구 주무셔"라고 말하고 방으로 쏙 들어갔다. 다들 자거나 자는 척 하는데 나름 반겨주는건 나 혼자니 고마워 하슈, 하는 일종의 생색이었다.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아빠가 기분이 좋은 날에는 포옹을 해주기도 했고, 내가 기분이 좋은 날에는 아빠가 방으로 들어가게끔 밀어넣고 취침 준비를 하는 지 확인하기도 했다. 가끔은 아빤 그런 내게 고맙다고도 했던 것 같다.


기계 소리에 반응하는 내 모습을 보니 파블로프의 개가 떠오르긴 하지만, 그래도 새벽 엘레베이터 소리는 어느새 아빠와의 짧은 순간들을 진하게 만들어 놓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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