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소리 없이 내리는 것 같지만 왠지 소리가 나는 것 같고, 펄펄, 사르르, 끝도 보이지 않는 저 하늘 높은 어딘가에서 내려오지만 바로 눈앞의 발끝에 닿아 사르륵 녹거나 덜 녹은 눈들 위로 소복하게 쌓인다 소복하게 쌓인 눈으로 눈길마다 눈길이 밟히고 걸을 때마다 뽀득뽀득 소리가 난다 도시의 재와 섞이고 밤새 돌고 도는 발밑의 둥근 세계로 인해 이제 이게 눈길인지 흙길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끝도 없이 광막하게 보이는 회색빛의 하늘을 보면서 작고 하얗고 이내 녹아버릴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가는 눈길마다 눈인 것처럼 흩뿌려진 하얀 알갱이들은 내리는 눈을 쫓아내려고 뿌려놓은 것인 양 길에 널려있지만 내리는 눈에 정말 0적인 힘이라도 있는 것인지 0도의 세계는 다시금 끝도 경계도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의 꼭대기 위에서 녹아 사라져 버릴 것을 내려보내려 한다 영원의 세계에서 언젠가 사라질 나는 왠지 소리가 나는 것 같은 눈에 눈길을 둔다 두는 눈길마다 펄펄 광막한 저 높은 곳에서 눈길이 내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