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음식점이라고 다 맛있는 건 아니더라
1. <모터트렌드>가 강남구 대치동에서 종로구 인의동으로 이사한 지 1년이 됐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는데 서울에 인의동이라는 곳이 있는 줄 몰랐다. 찾아보니 종로구에는 100여 개에 달하는 행정동이 있다(이것도 놀랍다). 그중 유명한 부암동, 평창동, 효자동, 익선동 등을 제외하면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당주동, 묘동, 견지동, 도렴동 등이 그렇다. 그런데 동네 이름 대부분이 조선시대부터 이어졌다고 한다. 당주동은 조선시대 지명인 당피동의 ‘당’자와 야주현의 ‘주’자를 합친 데서 유래했다. 야주현은 당주동에 있는 낮은 고개 이름이다. 회사가 있는 인의동은 성균관과 가깝고 4부학당 중 하나인 동학(東學)이 있어 유교 윤리의 네 가지 덕목인 인의예지(仁義禮智)에서 인의를 따와 이른 붙였단다. 깊이 생각해서 지은 지명은 아닌 듯하다.
2. 조선시대부터 서울의 중심이었던 종로는 고궁이 많고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는 종묘도 있다. 특히 종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많은 외국인이 찾는다. 늘 개방된 곳이 아니고 정해진 시간에만 입장할 수 있기에 외국인들이 줄을 선 모습을 볼 수 있다. 외국인들이 한민족의 전통과 조선의 뿌리를 담은 종묘를 보기 위해 줄까지 서는 걸 보면 왠지 뿌듯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그런데 난 아직도 종묘에 가보지 못했다. 기자들에게 날씨 좋으면 한번 가보자 했더니, 내가 출장 간 사이 자기들끼리만 다녀왔다. 다음엔 억지로 끌고 창덕궁에 갈 생각이다.
3. 처음 전철을 타고 출근한 어느 날, 종로3가역 11번 출구에서 처음 보는 이에게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욕지거리를 들었다. 아침 출근길부터 기분이 썩 좋지 않아 화를 끌어 올려 그가 들어본 적 없는 화끈한 욕으로 응수하려 했다. 그런데 그는 나뿐만 아니라 11번 출구로 나오는 모든 이에게 욕을 해대는 미친놈이었다. 전철을 타고 출근할 때면 종종 보였고 그때마다 욕을 들었는데 언제부터인지 그가 보이지 않는다. 궁금하다. 다음엔 8번 출구로 나와 봐야겠다. 아! 그 욕쟁이는 11번 출구로 나오는 모든 이에게 눈을 마주치며 욕했지만, 유독 외국인들에게는 욕을 하지 않았다. 외국인이 낯설어서 그랬을까? 그 이유도 궁금하다.
4. 외국인은 광장시장에 많다. 좁은 골목에 노포가 빼곡하고 지나는 객이 많아 발 디딜 틈이 없다. 이러한 풍경이 외국인들에게는 이국적이며 신기할 것이다. 광장시장엔 맛집이 많고 맛있는 음식이 가득하다고 한다. 그런데 난 잘 모르겠다. 빈대떡과 마약김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인가 보다.
5. 회사가 종로로 이사 갔다고 하니 지인들이 “맛집 많아서 좋겠다”고 한다. “아는 맛집 있어?”라고 물으면 대부분 광장시장과 육회를 말한다. 매일 출근하는데, 매일 마약김밥과 육회를 먹을 수는 없지 않나. 여러 사람이 종로에 맛집이 많다고 하는데, 사실 직장인들이 점심 먹기엔 강남이 낫다. 강남은 어느 집에 들어가도 웬만하면 먹을 만한데, 종로는 웬만해선 먹을 만하지 않다. 안타깝지만 사실 종로엔 허름하고 불결하며 불친절한 곳이 꽤 있다. 종로로 이사 오기 전까지 나도 종로에 맛집이 많은 줄 알았다. 1년을 있어보니 종로는 오래된 음식점이 많은 것이고 ‘오래됐으니 당연히 맛있겠지’라고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오래됐다고 다 맛있는 건 아니다.
6. 오래된 건 음식점뿐 아니다. 종로는 모든 게 오래됐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길이 자연스럽게 도로가 되면서 구획정리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과적으로 좁고 꼬부랑거리는 길이 대부분이다. 강남에선 우회전을 세 번 하면 제자리인데, 여기는 다른 곳이다. 오래된 건물들은 재건축하기도 쉽지 않다. 건물을 붙여 지은 탓에 한꺼번에 허물어야 할 거 같다. 건물을 허물어도 끝난 게 아니다. 고궁과 종묘가 가까워 지반공사를 할 때 문화재청이 지표조사를 한다. 문화재가 나올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문화재가 나오면 건축이 중단되고 그 문화재는 국가에 귀속된다. 공사 기간은 길어지고 그만큼 비용도 늘어난다. 그러니 대형 빌딩을 올릴 게 아니면 재건축보다는 고치고 사는 쪽을 택한다.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노인도 많다. 노인들의 최고 핫플레이스인 탑골공원이 있고, 곳곳에 노인복지센터가 있다. 노인을 대상으로 한 무료 급식소도 여러 곳이다. 점심엔 줄을 길게 늘어선다.
7. 근무 환경도 많이 바뀌었다. 모든 직원이 한 층에 몰려 있어 시끄럽다. 그래서 기자들에게 사무실에서만큼은 조용히 하자고 주지시킨다. 다른 사람과 타 부서를 배려하는 이타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동네 어귀 평상에 모여 수다 떠는 아낙들도 누군가 다가오면 조용하니까. 오후 6시 이후엔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야근해야 하는 마감 기간이 너무 덥다. 믿기 힘들겠지만 8월이면 실내 온도가 35°까지 올라간다. 견디기 힘들어 지난해 여름엔 내 돈 주고 냉풍이 나오는 공기청정기 두 대를 샀다. 그런데 냉풍 성능이 별로다. 올해는 이미 작은 냉장고를 장만했다. 이것도 내 돈으로 샀다. 올여름은 어떻게 버텨야 할지 벌써 걱정이다. 에어컨을 사야 하나?
8. 1년이나 지났지만 종로는 여전히 낯설다. 이 낯섦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겠으나, 환경이 바뀌지 않으니 내가 바뀌어야 한다. <모터트렌드>도 시장 환경 변화에 따라 조금씩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 첫 번째는 차별화다. 이달부터 남들도 하는 건 줄이고, <모터트렌드>만 할 수 있는 것을 늘리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의 노력이 독자에게만큼은 낯설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