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답게 산다.
한 달 동안 매일매일 하루 한 시간씩 글을 써보는 것을 루틴으로 하고자 하였을 때, 어느 작가의 책에서 ‘프롬프트’라는 것을 가지고 연습한다는 글을 읽었다. 막상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를 때 매일매일의 다른 주제를 정해주고 그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을 뜻하는 것 같았다. 나는 챗쥐피티를 열고 한 달 동안 글쓰기 위한 프롬프트를 받았는데, 내가 받은 오늘의 프롬프트는 “나를 나답다고 느낄 때”였다.
나를 나답다고 느낄 때라는 말을 듣고 한동안 무엇을 쓸까 고민이 되었다. 나답다는 것? 내가 스스로 나 답다고 느끼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러한 의제를 떠올릴새 없이 시간은 빨리 가고 나는 자잘한 일들에 파묻혀 살고 있다. 나다운 것을 느끼는 때를 물어보는 것조차 매우 생소한 질문이었던 것이다. 막연히 내가 가장 멋있는 나의 이상화된 모습을 묻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어떤 모습에 몰입하다가 나 스스로 “나 좀 멋졌어” 하는 순간처럼.. 그런 순간들을 나열하다 보면 정말로 “난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새로운 것에 계속 용기를 내어 도전하는 나의 모습, 다른 사람들이 안 하는 것을 찾아서 해보는 나의 모습, 경제적 이득은 뒤로하고 신념이 가는 일 (예를 들어 돈이 안 되는 연구를 하면서 주위에 나는 “이렇게 필요하고 중요한 연구”를 하는 것을 설파하는 일)을 해나가는 나의 모습, 굳이 윗사람이 아닌 주위의 학생들이나 직원들에 친절함을 베푸는 나의 모습…
그런데 이러한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이러한 모습들이 가장 크게 표출되는 공간이 SNS라는 것도 함께 떠올린다. ‘아, 이건 스스로 나다운 모습이야. 나의 이런 멋진 모습을 누가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나처럼 고독하고 멋진 사람이 이런 생각이나 이런 행동을 하는 것도 누군가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SNS 피드의 ‘홀로 고백체’ 독백 속에는 이러한 모습들이 여지없이 투영되어 있다. 어쩌면 오늘의 프롬프트는 나에게 자의식 과잉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홀로 고백’을 하는 SNS의 글을 올리는 시간은 대부분 홀로 있을 경우이다. 저녁에 혼자 연구실 컴퓨터 앞에 앉아 이 고독을 뭔가 즐기면서도 폼 잡는 글 하나 올리고 싶은데, 이게 스스로 인식하는 나다운 나라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하면서 쓴 글들, 그래서 많은 경우 이런 SNS의 피드는 썼다 지웠다 하는 일을 반복한다. 내 안의 내 시선 와 그것을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볼 때 어떨까 하는 시선이 왔다 갔다 이동하는 것이다. 마치 내가 나를 감상하는 소비자가 되는 것 같을 때도 있다. 마르틴 부버(Martin Buber)의 말처럼 그건 ‘나-그것’의 관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내가 객관적 관찰자이고, 어떤 인물의 실제 가장 그 다운 모습을 관찰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그가 홀로 있을 때보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며 상호작용하는 순간을 눈여겨볼 것 같다. 실제로 나 혼자서 상상하는 “나다운 나”와 실제의 사람들 속에서 부딪히며 나오는 내 모습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의 “나다운 나는” 자비롭고, 침착하며, 세상의 고난을 마치 넉넉히 이기는 여유로운 모습이나, 실제의 나는 그렇지 않다. 지하철에서 줄을 설 때 조금이라도 빨리 앉아보려고 눈을 굴리는 모습, 뭔가 옷을 잘 입고 나온 것 같으면 보는 사람 없어도 교실 복도를 두 번 더 걸어보는 나의 모습, 화장실 안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유난히 연예인들 닮은 것 같다고 셀카를 찍어대는 나의 모습, 이러한 구차한 모습이 나의 하루에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사실 홀로 고고한 모습의 가장 나다운 모습이 아니라 이러한 지질한 모습이 가장 나다운 모습일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이렇게 “나다운 나”를 생각할 때, 항상 멋지고 보람차고 세상 속에서 우뚝 선 하나의 나무같이 생각되는 면에서, 작고 하찮고 별 볼 일 없는 모습까지도 “나다운 모습”으로 포용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나다운 것은 ‘이상적 자아’가 아닌’ 익숙한 민낯’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나이 듦인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겠다. 이런 못난 모습까지 포용하는 나의 모습을 여전히 “그래서 더 멋진 나”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나는 오늘도 나답게 산다. 나의 멋진 모습, 그리고 조금 구겨지고 때때로 웃기지만 그 나를 오랜 친구처럼 정겹게 바라봐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