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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홍 Apr 09. 2024

디트리히본회퍼의 나를 따르라.

오늘이 디트리히 본회퍼 기억하는 날

디트리히 본 회퍼
1906년 2월 4일 브레슬라우의 유복하고 전통있는 가문에서 팔남매 가운데 여섯째로 태어나다.
1923년 튀빙겐 대학교에서 신학공부를 시작하다.
1924년 여름학기부터 베를린대학교에서 공부하다.
1927년 12월 17일 라인홀트 제베르크 밑에서 성도들의 교제(Sanctorum Communio)로 박사학위를 취득하다.
1930년 7월 5-8일 24세에 제2차 신학고시에 합격하고, 행위와 존재akt und sein로 대학교 교수 자격을 취득하다. 9월 5일부터 1931년 6월까지 미국 유니온 신학교에서 연구하다.
1931년 8월 1일 베를린대학교 신학부에서 대학교 강사로 일하다.
193년 10월 17일 27세에 런던에서 독일인 교회 목사로 취임하다.
1935년 4월 26일 칭스트(발트 해)에서 신학원을 시작하고 2개월 후 핑켄발데로 이전하다.
1936년 2월 베를린 대학교 신학부에서 나를 따르라라는 제목으로 마지막 강의를 하다. 8월 5일 제국 교육부 법령에 따라 대학교 교수 자격을 박탈당하다.
1937년 9월 게슈타포가 핑켄발데 신학원을 폐쇄하다. 11월 31세에 《나를 따르라》(nachfolge)를 출간하다. “값싼 은혜는 우리 교회의 숙적(宿敵)이다. 오늘 우리의 투쟁은 값비싼 은혜를 얻기 위한 투쟁이다.”(1939년 출간)
1939년 9월 괴팅겐에서 《성도의 공동생활》을 출간하다. 1939년 출간.
1939년 6월 2일 미국 유니온 신학교의 초청을 받아 미국으로 출발했으나, 6월 20일 귀국을 결심하다. 7월 27일 베를린으로 되돌아가다. “독일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몸서리치는 양자택일 앞에 서 있습니다. 나는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압니다. 그러나 안전한 가운데서 그러한 선택을 할 수 없습니다.”
1940년 9월 디트리히 본회퍼의 행동이 국민을 분열시킨다는 이유로 발언 금지 조치를 당하다. 관할 경찰서에 주소지 신고의무를 부과받다.
1941년 10월 베를린에서 유대인이 추방당하기 시작하자, 이들을 방첩대 요원으로 위장해 구출하는 작전 7을 수행하다.
1943년 1월 13일 37세에 마리아 폰 베데마이어와 약혼하다. 4월 5일 게슈타포의 가택수색으로 한스 폰 도나니, 요제프 뮐러 부부와 함께 체포되다.
1944년 1월 수사책임자 뢰더가 교체되어 기소가 무기한 연기되다. 7월 20일 슈타우펜베르크가 히틀러 암살을 시도하다.
9월 22일 게슈타포 수사관 존더레거가 초센 방첩대 방공호에서 히틀러의 범죄성을 입증할 증거자료로 보관하던 문서철을 적발하다.
10월 프린츠 알브레히트 슈트라세 게슈타포 지하 감옥으로 이송되다.
1945년 2월 7일 부헨발트 강제수용소로 이송되다.
4월 3일 부헨발트에서 레겐스부르크로 이송되다.
4월 6일 쇤베르크(바이에른 산림지대)로 이송되다. 이틀 뒤 플로센뷔르크로 이송되어 야간에 즉결재판을 받다.
4월 8일 이틀 뒤 플로센뷔르크로 이송되어 야간에 즉결재판을 받다.
4월 9일 새벽 플로센뷔르크 강제수용소에서 39세이 나이로 교수형에 처해지다. “이로써 끝입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삶의 시작입니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로 떠난 그의 묘비에는 “디트리히 본회퍼, 그의 형제들 가운데 서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라는 비문이 새겨지다.
1951년 9월 뮌헨의 카이저 출판사가 유고 문서집인 《옥중서신-저항과 복종》을 출간하다.
1996년 8월 1일 베를린 지방법원이 본회퍼의 복권 탄원권에 대해 “본회퍼의 행동은 결코 국가를 위태롭게 할 의도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나치의 폐해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구한 행동이었다.”라는 취지로 판결하다.
디트리히 본회퍼, 김순현 옮김,《나를 따르라》, 복있는 사람의 저자소개.
이러한 천재 신학자가 1936년 미국 유니온 신학교 정교수로 일할 기회가 있었지만, 도로 독일로 돌아가서 순교한 역사가 너무나도 위대하다. 2024년 4월 9일 디트리히 본회퍼 순교일. 세계교회가 쓰는 개정공동성서정과에는 4월 9일이 디트리히 본회퍼를 기억하는 날이다. 2024년 4월 9일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레위는 일어나서 예수를 따라갔다. 마가복음서 2:14
부르심이 있자, 부름받은 자의 복종행위가 즉각 이어진다. 제자는 예수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응답하지 않고, 복종의 행위로 응답한다.
디트리히 본회퍼, 김순현 옮김, 〈“나를 따르라”라는 부르심〉, 《나를 따르라》, 복있는 사람 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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