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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 Jan 05. 2024

우리의 첫 종주, 덕유산 육구종주

<슈슈는 쩨쬬를 좋아해> 10화


 2022. 6. 10. 금. 맑은 날씨 오후 3시부터 폭우와 우박


 6월 9일에 맞추어 덕유산 육구종주-육십령에서 구천동 주차장까지 트레킹-를 계획했었다. 새벽 1시가 조금 넘은 시간 컵밥을 먹고 정리해 둔 짐을 챙겨 구천동주차장으로 갔다. 쩨쬬가 등산카페에서 구한 동행을 만나 택시를 타고 육십령으로, 인천에서 오신 남자 두 분은 친구사이로 각자의 아내로부터 자유를 부여받았다.


 랜턴을 꺼내어 쩨쬬에게 씌워주고 출발! 살짝 선선해서 걷기 좋았다. 중간중간 가금류 냄새가 올라오는 게 주변 어딘가에 오리농장 따위가 있나 보다. 운무가 드리운 곳을 지나니 첫 번째 봉우리 할미봉에 도착했다. 이른 새벽이라 깜깜한데 할미봉 각인이 빨간색으로 쓰여있어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그래서 "할~미~ 봉~~"하며 으스스하게 영상에 담았다. 조금 걷다 보니 서봉에서 남덕유산 능선으로 해가 떠올랐다.


 쩨쬬는 새벽에 일어나 이렇게 산행을 하는 것도 일출을 보는 것도 처음이라며 신이 났다. 나올 듯 나오지 않는 서봉을 향해 걷는데 속도도 나지 않고 우리는 쉽게 지쳤다. 쩨쬬도 지쳐가고 나는 해가 뜨기 전에 거리를 빼야 한다는 생각에 두 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강행군을 했고 쩨쬬는 본인을 못 쉬게 했다며 칭얼거렸다. 물론 서로의 생각을 이해했다.


 서봉 직전에 삼각김밥을 하나씩 먹고 서봉에 도착하여 가방을 잠시 내려놓고 남덕유산 정상을 맨몸으로 다녀온 뒤 삿갓봉과 삿갓재 대피소 방향으로 향했다. 쩨쬬가 등산코스를 알아보았는데 육구종주 중 가장 지루한 길이라고 한다. 우리는 끝말잇기를 하며 벌칙으로 서로를 사랑해 주며 지루한 길을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의 길로 남겼다. 무룡산을 거쳐 동엽령으로 향하던 중 시원한 바람이 부는 바위 위에서 쉬었다. 쩨쬬가 선글라스를 떨어트려 바위사이에서 주웠던 그 장소, 탁 트인 전망, 계속해서 까먹었던 제주에서 가져온 귤과 끝없이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쩨쬬는 "땅콩빵 맛있다!"를 외쳤다. 동엽령을 지나 중봉을 거쳐 새벽 3시부터 걸어온 종주길을 뒤돌아보니 서봉과 남덕유산이 보인다. 많이도 멀리도 걸어왔구나! 서봉에서 앞으로 가야 할 곳을 보며 향적봉에 작은 점으로 보이던 정자를 보며 저기까지 가야겠지 했었는데 어느새 가까이 보인다. 이젠 돌아가는 게 더 멀다.


 향적봉에 도착하기 전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을 외쳤었는데 쌀쌀한 바람이 불더니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저 멀리 작은 점으로 보이던 정자가 우리 눈앞에 거대하게 나타난 순간 비는 우박으로 바뀌었다.


 "으악!~ 으악~"


 "쩨쬬! 뛰자!"


 천둥번개도 치더니 곤돌라 운행도 중지됐다. 우리는 홀딱 다 젖었고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원했던 우리는 따뜻한 어묵국물을 찾고 있었다. 따뜻한 국물과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손에 쥐고 있으니 다시 힘이 났다. 칠봉을 향해 무주리조트 스키장 슬로프를 따라 내려갔다. 비가 한차례 쏟아져 젖은 풀에 바지며 신발이 축축하게 다 젖었다. 인월담까지 마지막 2km가 정말 좁혀지지 않았다. 쩨쬬는 녹이 슨 철계단을 맨손으로 잡고 싶어 하지 않았고 진흙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바람에 기분도 안 좋고 급격하게 지쳐버렸다. 그러다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쩨쬬는 오른쪽 갈래 길로 나는 왼쪽 갈래 길로 나뉘어 걸어가다가


 "어? 거기야?"


 라고 묻는 순간 쩨쬬는 미끄러졌다. 완전히 앞으로 고꾸라져 엎어졌고 그대로 한 바퀴를 더 굴러 떨어져 바위사이에 끼어버렸다. 나는 너무 놀라 뛰어가다 진흙길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고 부리나케 다가가 바위에 낀 쩨쬬를 안아 올려 다리, 허리, 팔 순으로 괜찮은지 조금씩 움직이며 몸상태를 확인했다. 왼쪽 팔과 왼쪽 무릎이 까졌고, 얼굴과 머리에 솔잎이 덕지덕지 붙은 거 말곤 괜찮았다. 나는 혹시라도 넘어진 곳이 낭떠러지였다면 큰일 났겠다 싶은 생각이 잊혀지지 않아 너무 무서웠다. 우리는 가만히 쪼그려 앉아 쩨쬬가 미끄러진 흔적을 보며 멍해진 정신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리곤 우린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쩨쬬는 이런 일이 있을 경우 사고를 지켜본 사람이 놀랄 수 있으니 사고자가 괜찮으면 빨리 괜찮다고 동행을 안심시켜야 된다고 한다. 크게 한 번 넘어지는 걸 보고 나니 쩨쬬가 조금만 휘청거려도 내 심장이 덜컹거린다. 계곡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고 인월담에 당도하여 어사길을 따라 덕유산 탐방안내소에서 육구종주 완주 도장을 쾅! 찍었다. 완주하면 한우를 먹고 중간에 탈출하면 다슬기 비빔밥을 먹기로 했었는데 우리는 기분 좋게 한우를 구워 먹었다. 편의점에서 쩨쬬의 상처를 치료할 메디폼을 사고 숙소에 들어왔다. 반신욕을 하며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니 15시간 동안 산행의 노곤함이 싹 풀린다.

 

 쩨쬬와 긴 여행을 한 기분이다. 오롯이 하루를 겪었고 다양한 감정교감과 경험을 공유했다. 쩨쬬가 더 애틋해졌고 더 아끼고 더 보살펴야겠다. 소중한 추억이 빙글빙글 돌아 섞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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