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슈는 쩨쬬를 좋아해> 11화
2022. 6.22. 수. 장마, 다시 습해진다.
내 안의 공허함, 설렘, 성욕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의 사랑의 크기와 무관한 것일까? 대화가 줄어들었고 통화를 편하게 생각하게 된다. 무료하다. 연애가 아닌 나의 삶이, 쩨쬬를 만나고 세상의 모든 걸 얻은 듯했고, 세상만사가 다 경이롭고 행복하고 즐거웠는데 현재는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매일매일 되뇐다.
문제를 알면서 개선을 하지 않는다. 몇 번이나 쓰고 생각을 했을 것이기에 더 이상 언급하고 기록하지 않겠다. 무언가 잊지 못하고 있는 기분이랄까? 왜 슬프려고 할까? 어떤 그리운 느낌과 별일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기록은 그때그때 해야 한다. 뭔가 쓸게 있었는데 잊어 먹었다.
쩨쬬네 부모님이 필리핀에서 오신 선교사로부터 코로나에 감염되셨다. 근심 걱정이 많은 아버님은 얼굴이 반쪽이 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쩨쬬에게 영상통화를 하면 세상 밝은 얼굴로 맞이한다. 나를 봐서 기분이 좋다며 씩씩한 모습을 보인다. 쩨쬬는 똑 부러져 보인다. 너무 예뻐서 정상적일 수밖에 없다.
2주 연속 육지에 다녀와서 몸이 피곤한가? 장마로 인해 습해서일까? 욕구가 없다. 욕구가 없으면 쩨쬬로부터 마음이 멀어진 것일까? 다른 여성이 눈에 들어오는가? 그건 아니다. 다가오는 이사로 인해 처리할 것들도 많아 신경 쓸 일이 많다. 삶이 정지된 기분이다. 이야기가 많은 경험이 많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어쩌면 내 인생에 가장 귀한 순간을 허투루 보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를 사랑하자.
2022. 7. 6. 수. 더워
결혼은 누굴 위해 하는 건가? 나는 태어날 자녀를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마다 기준을 충족하는 이성을 찾는다. 나의 기준은 두뇌이다. 나와 배우자로부터 태어 날 아이는 보통만큼만 이해를 했으면 한다. 공부를 한다면 수업을 듣고 책을 읽으며 바로바로 이해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한다. 예쁘고 잘생기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괘념치 않는다. 매력과 강점은 스스로 찾을 수 있다.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결혼을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제도의 중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않는다. 결혼은 호적으로 국가가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한 제도이다. 결혼은 '우리는 속지(俗地)된 곳의 제도에 수긍하기로 모두에게 선언' 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다시 돌아와 결혼을 하고 싶은 이유를 들자면 아이를 가지고 싶어서이다. 더하여 육아가 힘들다고 하니 육아를 해보고 싶다. 똥기저귀 갈고 하는 게 으악! 할 것 같지만 한 두 번 해보면 익숙해질 것이고 아이가 어떻게 크는지 보며 내가 어떻게 컸는지 인간은 어떻게 자라며 성장하는지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고 예상치 못한 사건이 생기는지 기록하고 싶다. 어쩌면 현재 나의 최대의 호기심은 육아인 것 같다. 그렇다면...... 아! 슬프다! 결혼을 안 하는 건 상관없는데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이젠 아닌 걸까? 결혼을 안 한다는 건 언젠가 쩨쬬와의 이별을 의미하겠지...... 혼자 사는 삶,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미를 모르니 떠나겠지?
2022. 7. 25. 월. 폭염 시작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누구와 살 것인가? 누구는 누구인가? 결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나는 결혼에 대한 책임을 질 사람인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일까? 내가 그렇게 씌운 것은 아닐까? 믿음과 신뢰는 어디에서 오는가? 못 미더운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애당초 신뢰와 믿음이 가는 이, 과거의 관계, 현재의 관계, 관계의 변화에서 오는 믿음과 신뢰의 변화
누구에게 질문을 던질 게 아니라 나에게 묻는다. 과거와 현재 나의 믿음과 신뢰는 어떠한가?
남과 여, 모든 관계의 연인, 믿음, 신뢰 그리고 호감, 그에 따르는 감정들 좋아한다, 사랑한다, 그리워한다, 보고 싶다. 그래 나는, 너는, 우리는 누군가가 떠올랐을 것이다. 왜 그가 떠올랐을까? 그가 떠오른 게 당연한 것인가? 나는 어떤 상처를 받았나? 나는 상처를 받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나? 드는 생각, 드는 마음, 지나가는 것일까? 우연히 스치게 된다면 우리의 입은 열릴까? 열리는 순간 우리의 감정은 어떻게 될까? 무엇이 내가 바라던 것이고 오랜 기간 간직해 왔던 게 실은 이게 아니라 저것이었다고 깨닫게 된다면, 아니, 무엇이 이것이고 무엇이 저것인지도 구분 짓지 못하는 복잡한 실타래, 망설임, 나 다운 생각, 행동, 판단, 지금의 나는 나다운가?
삶을 당신답게 살아가는 그대를 진심으로 존경한다고 했다. 나는 나답게, 존경받을 정도로 살아가고 있나? 이 말을 한 사람은 누구이고 들은 사람은 또 누구인가? 나는 오늘, 글을 쓰는 지금은 하나의 자아가 아닌듯하다. 여러 개의 자아일 수도 있고 단순히 분열된 것일 수도 있다. 나는 복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