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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 Mar 15. 2024

쓸데없이 연락하지 마라

너무 미안합니다

 "쓸데없이 연락하지 마라"


 나의 첫 연애를 이렇게 끝냈었다. 제주도에서 살기로 마음을 먹고 나는 내려왔고 그때의 여자친구는 육지에 있었다. 연애가 처음이니 단거리 연애도 처음이고 장거리 연애도 처음이었다. 그리고 연애 초짜였던 나는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는 통화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기억에 남는 두 번의 이별 이야기를 짧게 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인간관계에 대한 정립이나 나의 정체성에 영향을 주었던 분이기 때문에


 앞서 하던 얘기를 마저 하자면 아 이 친구는 '순자'라고 하겠다. 순자라는 이름처럼 정말 착했고 나에게 다 맞춰주었다. 내가 이래라저래라 하면 이러고 저럴 사람이었다. 하루는 순자가 전화를 걸어 말했다


"오빠, 나 요금제 무제한으로 바꿨어! 이제 오빠랑 연락 더 자주 할 수 있어!"


"쓸데없이 연락하지 마라"


 이렇게 끝이 났다. 내 생에 가장 미안한 사람이다. 그리고 앞으로 모든 이에게 말로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하루는 체육관에서 러닝머신을 뛰고 있었다. 짐 칸에 소나무를 실은 SUV가 한대 들어오더니 예쁘장한 여성이 내려서 체육관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체육관 한 켠에서 몸을 접었다 폈다 하더니 돌아갔다. 어느 날 또 짐 칸에 소나무를 실은 SUV가 들어오더니 더 예쁘장해져서 체육관으로 올라왔고 그날도 어김없이 몸을 접었다 폈다 하고 돌아갔다. 나는 차에 소나무를 실어 다니는 그녀가 궁금해졌고 그녀는 노란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로 얼굴을 가린 채 벤치에 누워 낮잠을 자던 내가 궁금했다고 한다.

 하루는(위의 하루와 다른 하루다) 차를 타고 동네를 배회하다 소나무를 싣고 다녔던 그 SUV가 보였다!(SUV 짐 칸에 있던 소나무도 드디어 땅에 뿌리를 내렸다!) SUV가 주차된 곳에 카페가 보였고 그곳은 인도식 밀크티인 '짜이'를 파는 곳이었다. 옳커니 됐다! 처음 방문했을 때 가게 문은 열려 있었으나 사람이 없었다. 두 번째 방문했을 때는 예쁘장하긴 한데...... 과거에 더 예쁘시지 않았을까? 의문이 드는 분이 계셨는데 그분은 10살 터울의 언니였다. 세 번째 방문했을 때 드디어 그녀를 마주했다. 앞으로 '현숙'이라 하겠다. 현숙은 내가 '짜이'를 아는 걸 놀라워했고 나는 현숙이 인도에서 10년 간 살았다는 것에 놀랐다. 체육관에서 몸을 접었다 폈다 한 것은 요가 동작이었고 현숙의 차에 실려있던 소나무는 그냥 실려있어서 계속 실은 채로 다녔다고 한다. 현숙 또한 너무나 착한 사람이었고 본인이 업으로 삼는 명상에 대한 열정도 강했다. 잠깐! 현숙에 대해 너무 구구절절 얘기를 하는 것 같다. 나에게 영향을 준 이별에 대한 이야기로 급히 돌아가자면 이 친구와 세 번의 이별을 하였는데 첫 번째는 또 나의 말실수로 인해 끝이 났고 두 번째는 집에서 반대한다고 했다. "이 사람은 착해 이 사람은 성실해 나는 네가 하는 일을 응원해" 이런 말들은 다 부질없다. 결국 사람은 평가를 하고 평가를 받게 되고 무엇을 보고 판단하냐면 직장이다. 나는 내 자존감이 무너지는 걸 용납하지 못한다. 현숙도 나를 잘 알았기에 이 말을 내뱉기까지 너무나 힘들었다고 했다. 사귀는 동안 어머니의 반대가 계속 이어져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결혼하자고 했나? 나의 배경 때문에 연애도 제한되는 건가? 에잇! 카스트 아주머니 너무해요!


앞서 말했지만 나는 내 자존감이 무너지는 걸 용납하지 못한다. 그래서 현숙에게 물었다.


 "우리 몰래 만날래?"


 현숙은 활짝 웃으며 답했다


 "그래"

 

현숙과 나는 서로 죽이 잘 맞았던 것 같다. 뭐랄까...... 상상만 해오던 나의 말을 내뱉어도 맞장구를 쳐준다고 할까? 다른 사람 같았으면 부모님 몰래 만날래 하고 묻는다면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밀어냈을 것이다. 아니 몰래 만나자고 하는 나도 보통내기는 아니다만 마치 본인 생각도 그러하다는 듯 신이 나 '그래'를 외치던 현숙의 표정이 잊히지가 않는다. 결국엔 헤어졌지만 현숙에게 고마운 건 명상을 하는 사람이어서 더 그렇겠지만 만나는 동안 마음이 정말 평온했다. 그야말로 힐링이랄까? 그래서 헤어진 이후에도 나에게 힘든 일이 생기면 현숙을 떠올리며 극복했었다. 다시 연락을 해볼까? 하는 생각을 꾹꾹 눌러 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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