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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애 Apr 01. 2024

영어유치원? 영어학원 유치부입니다.

P(Program), Pre-school, A(Academy)


노랗고 긴 버스가 들어온다. 몸으로 놀면서 배워야 할 시기의 아이들을 책상에 앉혀놓고 영어 공부를 시키는 영어유치원 버스다. 어미새가 어린 새의 양쪽 날개를 잡고 벌렸다가 오므리며를 반복하며 날갯짓 연습을 시키는 듯한 느낌을 풍긴다. 노란색에는 내 아이를 잘 교육시켜야 한다는 부모의 부담이 묻어있는 것 같아 어쩐지 안쓰럽다.

 

 영어학원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부모들의 무엇을 자극하는 것일까? 기꺼이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도록 만드는 그들의 전략은 무엇일까? 부모들은 수업료가 비싸기 때문에 오히려 더 선호하는 것은 아닐까? 아무나 보낼 수 없으므로.


먼저 '영어 유치원'이라는 이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영어유치원은 유치원이 아니라 학원이다. 실제로 '영어 유치원'이라고 간판을 내걸면 교육법에 걸린다. 불법이다. '00 영어학원 유치부' 또는 '00 어학원 유치부'라고 불러야 옳다. 대부분의 학원이 P(Program), A(Academy), Pre-school 등을 넣어 이름을 짓는 이유다.


있는 그대로 담백하게 '영어학원 유치부에 다녀요.'가 아니라, '영어유치원에 다녀요.'라고 말하는 이유는 뭘까? 은근히 표현을 바꾼 데에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 유아를 영어학원에 보내는 것은 스스로도 위험한 행동일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기 때문에 '영어를 배우는 학원'이 아니라 '영어도 배우는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고 말하며 심리적 평형을 찾는 것이다.


나는 춘이를 영어학원 유치부에 보내고 싶지 않다. 왜? 이곳에 내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1. 영어학원 유치부는 관습적 학습 방법을 사용한다.


 관습적 학습 지도는 '유아기 발달 특성'과 맞지 않는다. 비효과적이다. 관습적 학습이란 성인이 교육을 주도하는 방식으로 정형화된 읽기 및 쓰기 행동이 중심이 된다. 영어학원 유치부에서는 단어 외우기, 책상에 바르게 앉아 영어교재 보기, 네모 칸에 반듯하게 따라 쓰기 등의 방법으로 영어를 가르친다. 이러한 관습적 학습은 아동 발달단계에 적합하지 않고, 효과도 미미하다. 초등학생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유아에게 지도를 하면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은 이미 숱한 연구로 증명되었다. 굳이 비효율과 비생산성이 입증된 방법으로 교육하고 싶지 않다.


 효과가 미미할 뿐만 아니라 부작용의 우려도 있다. 학부모의 기대와 달리 아이는 영어에 대한 거부감, 부정적 자아상, 학습된 무기력감을 느낄 수 있다. 유아는 받아쓰기와 같은 시험의 형태에 압박을 느끼고, 반복적 글자 쓰기 연습은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진짜 공부가 시작되는 학령기가 되었을 때 관습적 학습 방법을 잘 받아들여 학습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유아기에 풍부한 발현적 학습을 경험해야 하는데 영어학원 유치부는 거꾸로 접근하고 있다.




2. 모국어 발달이 견인할 인지 발달을 놓친다.


 학습에는 모국어 발달이 가장 중요하다. 모국어의 발달은 곧 사고의 발달이기 때문이다. 모국어 확립 이전에 외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모국어(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발달이 견인할 인지 발달을 놓친다. 많은 부모들이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욕심을 내면서 정작 모국어를 놓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의아하다. 교육자뿐만 아니라 뇌과학, 소아정신과 의사 선생님들도 영어유치원의 교육 내용과 방법에 대해 부정적인 우려를 표하고 있음에도 모든 전문가들의 의견을 뒤로하고 영어유치원에 열을 올리는 일부 풍경을 보면 가끔 고개가 갸우뚱하게 된다.



국어는 '도구 언어'의 위상을 갖고 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세계 모든 나라의 교육과정 편제에 모국어 교육이 가장 많은 시수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이다. 모국어를 풍성하고 다양하게 경험하고 확립해야 하는 시기에 영어를(그것도 관습적 학습 훈련으로) 가르치는 것은 부모의 무지 또는 욕심 또는 결핍이 크다고 생각한다.



3. 영어 교육의 중요한 단기 목표는 입시다.

결국 한국에서 대학을 보낼 것이라면 더더욱 영어유치원은 가성비가 떨어진다. 영어 교육의 목표는 입시다. 내신과 수능. 외국어 영역 1등급을 받는 것이다. 영어유치원에서 시작해 고3이 될 때까지 영어교육에 들인 노력의 결과가 2등급 또는 3등급이라면? 고등학교까지 갈 것도 없다. 초등학교 고학년 교실만 봐도 알 수 있다. 


단언컨대 학습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문해력이다. 국어교과뿐만 아니라 수학, 사회, 과학 그리고 영어 학습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지문을 이해하지 못해 문제를 못 푸는 식이다. 우리나라 내신과 수능은 압도적으로 읽기 영역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국어뿐만 아니라 영어도 결국은 문해력으로 돌아간다. 비견할 수 있는 예시로, 우리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하지만 모두가 언어영역 1등급은 아니다. 그 차이를 생각해 보자.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영어학원 유치부를 고려하게 된다면 다음 세 가지 경우 중 하나일 것이다.


첫 번째, 남편이 미국인이어서 내 딸이 자연스럽게 다중언어사용자(bilingual)로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이미 갖추어져 있는 경우이다.


두 번째, 내 딸이 언어에 특출하고 비상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 만 4세가 되었을 때 초등학령기 수준의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가 가능한 경우이다.


세 번째, 우리나라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다닐 계획이 없는 경우이다. 유학을 준비하게 된다면 영어학원 유치부를 고려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영어는 미국의 언어가 아니다. 세계어(International language)이기 때문에 반드시 배워야 한다. 나도 매일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아동의 발달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시도되는 모든 교육은 위험하다. 우리 부모의 마음 안에 어떤 불안이, 열등감이, 욕심이, 경쟁심이 들어있나 살펴볼 일이다. 공포와 불안을 강요하는 세상에 맞서기보다 부모가 느끼는 불안을 아이들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른들의 불안은 어른들이 알아서 해결하고 아이들만큼은 행복하게 자라도록 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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