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을 했다. 9월 1일 자 2학기 담임. '2학기 담임'이라는 것이 어떤 까다로움이 있는지 문외한인 채 교실에 들어섰다. 중간 담임은 교직생활 12년 동안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필드였지만 자신 있었다. 나의 매력과 실력으로 24명의 학생들을 잘 이끌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1학기 담임을 맡았던 선생님은 이제 갓 교대를 졸업한 24살의 기간제 선생님이었다. 임용시험에 떨어져 다시 준비하는 중이라고 했다. 한눈에 봐도 귀엽고 상큼한 선생님이었다. 춤과 노래를 좋아해 대학 때부터 꾸준히 연극동아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목소리는 카랑카랑하고 쫀득쫀득했다. 동문은 아니어도 후배를 대하는 마음으로 복직 전 연락을 했다. 교실에 찾아가 인사도 나누었다. 카카오톡 기프트콘으로 마음을 전하며 1학기를 잘 마무리해 달라고 했다.
나는 미리 학급명렬표를 다운로드하여 출석번호 순서대로 이름을 외웠다. '거기 파란색 입은 남학생!'하고 부르는 순간 학급경영은 끝이다. 2학기 중간담임이니만큼 첫날 바로 '김지애, 자리에 앉으세요.'라고 말해야 학급경영을 시작할 수 있다. 내 이름도 모르는 선생님을 따를 학생은 없기 때문이다.
출근 첫날. 두 시간 일찍 출근을 했다. 교실은 엉망이었다. 컴퓨터 바탕화면은 조잡했고, 폴더별로 제대로 정리되어 있는 것이 없었다. 교탁은 먼지로 소복했고, 칠판은 매연이 뿜어져 나올 듯 가루 범벅이었다. 학생들 책상은 더욱 가관이었는데, 온갖 잡동사니와 액세서리가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고, 서랍장은 쑤시기 방탱이었다. 신발장에는 과자 봉지와 날짜가 한참 지난 우유가 있었다. 청소용 구함을 열어봐도, TV장을 열어봐도, 학급문고를 들여다봐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1학기를 마무리하고 간 것인지 중간에 달아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똑똑똑. 옆반 선생님이 찾아오셨다. 수업시간에 복도에 나와 뛰어다니는 것은 예사요, 급식실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반이라고 하셨다. 힘들 것이라고 하셨다. 불길한 직감은 더욱 선명해졌고, 맞아떨어졌다. 2학기 내내 나는 기본생활습관과 학급질서를 세우는 데 시간을 보냈다. 학급에서는 다양한 사건사고가 이어졌다. 학교폭력위원회의 절차를 프린트해서 꼼꼼히 살펴보았다. 24명 중 딱 5명의 학생들이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문제를 일으켰다. 그중엔 ADHD 진단을 받고 약을 먹는 학생도 있었다. 동학년 선생님들께서는 우리 반이 1학기 때와는 완전히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하셨지만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보통 2학기 즈음에는 담임-학생 간 돈독해진 래포형성을 바탕으로 보다 유연하고 도전적인 수업과 활동들을 시도한다. 크고 작은 열매가 맺힌다. 교사로서의 보람을 가장 많이 느끼는 때이다. '아, 나는 9월에 뜬금없이 나타나서 기본생활습관만 지도한 선생님으로 기억되겠구나.' 서로의 신의를 바탕으로 다양한 널뛰기를 시도해 보았던 지난날들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결국 나는 원인 모를 피부병에 걸렸다. 내 양 허벅지를 붉은 좁쌀 반점들이 뒤덮었다. 신기하게도 종업식 당일 말끔히 사라졌지만.
몸과 마음을 완전히 소진하고서야 교감선생님을 찾아갔다. '내년에는 육아휴직을 쓰겠습니다.' 내 교직 인생에서 가장 상처가 되었던 시절, 중간담임을 맡았던 그 해이다. 던지고 달아나듯 휴대폰에 깔려있던 클래스팅, e알리미 앱을 가장 먼저 지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를 미워하진 않았다.
나를 잡아먹었던 그 해의 몇 학생들에게 이 말을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교사로서의 존엄과 자부심을 놓칠 뻔했던 그 해.
넌 교사잖아
이 문장을 가장 많이 떠올렸다. 넌 교사잖아. 나를 위로하고 돌보기보다는 몰아세우고 다그쳤다. 교사니까 비가 내리면 비 맞고 가야 하고, 누가 돌을 던지면 맞서 싸우기보단 돌을 맞으면서 앞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사를 보호해 줄 우산과 방패가 없기 때문에 학교에서 나는 맨몸이다.
매섭게 몰아치는 초자아 덕분에 겨우 종업식까지 마무리했다. 떠올리는 것조차 상처가 되는 그 해. 그로부터 2년이 지났다. 이제야 진정이 된 나는 슬그머니 들추어본다. 괜찮니?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교사라는 사회적 역할을 떼어내고 그때의 나를 찾아가 만난다. 학생을, 학부모를 미워하지 않으려고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노력했던 그때의 나. 그 해 내가 쓴 일기장을 보면 유난히 짧고 글이 탁하다. 버거운 것을 꾸역꾸역 삼키다 체한 느낌이다. 절망이 아니라 무망이다.
나 혼자 보는 일기장에도 속시원히 하소연하지 못할 정도로 교사라는 역할과 당위에 매여있었다.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그 기간을 지나오느라 정말 애썼다고 뒤늦게 말해준다. '넌 교사잖아.'라는 말로 스스로 모든 감정과 욕구를 차단하거나 억압하지 않겠다고 덧붙인다. 나에게 용서를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