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잘하죠? 어린이집 선생님이 물어보셨다. 안 그래도 답답한 마음이 겹겹이 뭉개져있던 나의 화두, 나의 역린. '언어발달'을 콕 짚으셨다. 춘이보다 2-3개월 늦게 태어났는데도 월등하게 말을 잘하는 같은 반 친구 몇몇을 목격하고서는 대롱대롱 내려올까 말까 했던 좌절감이 결국 뚝하고 떨어졌다.
춘이는 엄마가 선생님인데, 심지어 대학원에서 초등국어교육을 전공했는데, 남편도 육아시간을 쓰며 춘이 육아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적기 교육을 하며 다양한 발달 자극을 주고 있다고 은근 자신했는데 어째 그들과 비슷하지도 못하고 늦는 걸까. 아귀가 안 맞아도 한참 어긋났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토끼 인형을 가리키면서 '춘아, 이거 뭐예요?' 하셨다. 춘이가 한참을 머뭇거리자 주변 아이들이 고 틈새를 비집고 '토끼!'라고 대답하는데 가슴이 서늘했다.
말을 하긴 하는데 빠르지는 않은 것 같아요
어린이집을 나서며 나는 기가 죽었다. 약간은 울상이었던 것 같다. 평소 내 발음이 뭉개져서 그런 걸까? 우리 엄마 말대로 춘이가 표현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챙겨줘서 말이 늦는 걸까? 지능은 엄마 쪽 영향을 받는다는데, 원래 공부 못했던 나를 닮아 그런 건 아닐까? 못난 생각들이 이어졌다. 뭉뚱그려있는 습한 감정을 펼쳐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모장을 켰다. 독서 기록 목록을 샅샅이 뒤적였다. 뭐라도 걸려라.
독서메모기록 :「엄마 심리 수업」 윤우상(2019)
①엄마 욕심 뒤에 숨은 4가지 욕망 : 콤플렉스, 부모의 못 이룬 꿈, 경쟁심, 존재 증명
②체면 엄마(남들이 어떻게 보겠어?) : 초자아가 불안한 엄마. 자기 아이도 엄마 체면의 하나다. 아이에게 문제가 있으면 나에게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나는 춘이를 나의 체면 중 하나로 여기고 있었다. 잘 크는 모습을 보여주며 사람들에게 나의 존재 증명을 하려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춘이는 돌이 지나자마자 씽씽이를 탔다. 그때 나의 경쟁심이 발동됐던 것 같다. '대개 두 돌이 되어서야 시도하는 씽씽이를 춘이는 벌써 하네?' 기타 모든 영역들도 대근육 발달처럼 또래 보다 한참 앞서나가길 바랐던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이어야 하는' 춘이에 꽂혀 현실의 내 아이를 편안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앞서나가야지, 이겨야지, 뛰어나야지, 잘해야지 뭐든.
그러나 춘이는 나 대신 경기에서 뛰어주는 운동선수가 아니다. 경기에서 이기고 싶으면 내가 필드에 서서 선수로 뛸 일이고, 남보다 뛰어나고 싶으면 내가 열심히 공부할 일이다. 내 경쟁심에 두 살배기 춘이를 끌어들였다는 생각이 들자 코끝이 시큰거렸다. 자식은 부모의 열등감을 해소시켜 주는 존재도 아니고, 부모를 기쁘게 해줘야 하는 존재도 아니다. 머리카락이 쭈뼛서게도, 자식을 향한 내 마음엔 사랑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