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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애 Apr 11. 2024

나는 체면엄마입니다.

엄마 욕심 뒤에 숨은 4가지 욕망

말은 잘하죠?


어린이집 선생님이 나에게 물어보신다. 춘이는 만 1세 반 신입원아로 3월 3일 입학을 했다. 25개월이 된 춘이. 안 그래도 진척이 없어 답답한 마음이 겹겹이 뭉개져있던 나의 화두다.


나의 역린, '언어발달'을 콕 짚으신다. 신입원아는 4주 간의 적응기간을 거치는데 어린이집에서 엄마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춘이보다 2-3개월 늦게 태어났는데도 춘이보다 월등하게 말을 잘하는 같은 반 친구 몇몇을 목격하자 대롱대롱 내려올까 말까 천장에 걸쳐져 있던 좌절감이 드디어 내 가슴에 똑하고 떨어졌다.


아, 이것은 임용시험 준비를 위해 컴퓨터활용능력 1급 실기 시험을 연거푸 5번 떨어졌을 때 느껴보았던 좌절감이다. 춘이는 엄마가 선생님인데, 심지어 초등국어교육을 전공했는데, 남편도 육아시간을 쓰며 춘이 육아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적기 교육을 하며 다양한 발달 자극을 주고 있다고 은근 자신했는데 어째 그들과 비슷하지도 못하고 늦는 걸까.


말을 하긴 하는데 빠르지는 않은 것 같아요


약간은 울상이었다. 나는 춘이의 언어발달이 빠르지 않다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늦다'라는 선고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민망함을 미리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린이집을 나서며 나는 기가 죽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토끼 인형을 가리키면서 '춘아, 이거 뭐예요?' 하신다. 춘이가 머뭇거리자 주변 아이들이 대신 '토끼'라고 대답하는데 가슴이 시큰했다. 내가 말해버렸다.


토, 끼.


부끄럽지만 토끼 사건 이후로 나는 놀이터에서 그네를 태워주며 계속 '토끼'를 연습시켰다. 열 번은 더 한 것 같다.


평소 내 발음이 뭉개져서 그런 걸까?

우리 엄마 말대로 춘이가 표현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챙겨줘서 말이 늦는 걸까?

지능은 엄마 쪽 영향을 받는다는데, 원래 공부 못했던 나를 닮아 그런 건 아닐까?

못난 생각들이 이어졌다.


나는 왜 울적할까? 뭉뚱그려있는 그 습한 감정을 펼치고 샅샅이 살펴봐야 한다는 강한 경고음이 들렸다. 다행히 독서메모 덕분에 그 감정의 뿌리를 더듬어볼 수 있었다.




독서메모기록 :「엄마 심리 수업」 윤우상(2019)

①엄마 욕심 뒤에 숨은 4가지 욕망 : 콤플렉스, 부모의 못 이룬 꿈, 경쟁심, 엄마의 존재 증명 

②체면 엄마(남들이 어떻게 보겠어?) : 초자아가 불안한 엄마. 자기 아이도 엄마 체면의 하나다. 아이에게 문제가 있으면 나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뜨끔. 나는 춘이를 나의 체면 중 하나로 여기고 있었다. 잘 크는 모습을 보여주며 사람들에게 나의 존재 증명을 하려고 했다. 나의 육아 방식이 옳았다는 자부심, 교사라는 나의 직업에 대한 자존심, 돌봄 노동에 대한 보상의 일종으로 춘이의 발달을 보고 지켜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더불어 춘이는 돌이 지나자마자 씽씽이를 탔는데, 그때 나의 경쟁심이 발동됐던 것 같다. '대개 두 돌이 되어서야 시도하는 씽씽이를 춘이는 벌써 하네?' 기타 모든 영역들도 대근육 발달처럼 또래 보다 한참 앞서나가길 바랐던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이어야 하는' 춘이에 꽂혀 현실의 내 아이를 편안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앞서나가야지, 이겨야지, 뛰어나야지, 잘해야지 뭐든. 


춘이는 나 대신 경기에서 뛰어주는 운동선수가 아니다. 나의 열등감을 해소시켜 주는 사람도 아니고,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 살아갈 사람도 아니다. 경기에서 이기고 싶으면 내가 필드에 서서 선수로 일이고, 남보다 뛰어나고 싶으면 내가 열심히 공부할 일이다. 경쟁심에 두 살배기 춘이를 끌어들였다는 생각이 들자 코끝이 시큰거렸다. 


머리카락이 쭈뼛서게도, 자식을 향한 내 마음엔 사랑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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