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입학원서를 다 쓰고 한 참을 들여다본다. 세상에 하나뿐인 내 딸이 제도권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다. 증명사진을 규격에 맞게 찍고, 인화해서 붙였더니 '사람 1' 느낌이 난다. 오늘, 나만의 춘이는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넘버링이 되고 소트가 되기 위해선 기호가 필요하다. 학급명렬표를 다운로드해 엑셀에서 학급 번호를 기준으로 '오름차순으로 정렬', 이름을 기준으로는 'ㄱㄴㄷ순서로 정렬'하던 때가 떠올랐다. 원아식별을 위한 여러 장치들이 눈에 들어오며 춘이가 정렬 가능한 '학생 1'의 위상을 갖게 되었음이 실감 났기 때문이다. 관리 주체가 관리 대상에게 부여하는 당연한 기호임을 알고 있지만, 기분이 묘했다. 동시에 10년 동안 나를 거쳐 간 수많은 학생들과 학부모 얼굴들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입학식. 강당 뒤쪽에 가득 메워 선 학부모들이 종종 눈물을 흘린다. 나는 의아했다. 졸업식도 아니고 입학식인데? 경험의 한계로 '키우느라 많이 힘드셨나 보다.' 정도로 해석했다. 시간이 흘러 춘이가 자기 몸 만한 가방을 메고 초등학교 강당 의자에 앉아 있는 뒷모습을 떠올려본다. 나도 똑같이 눈물이 날 것 같다. 키우느라 고생한 세월이 떠오르기도 하고, 시간의 흐름이 새삼스럽기도 하다. 열 맞춰 한 줄씩 늘어선 학교 강당 의자에 앉아 있는 뒷모습을 보니 시큰하기도 하다. 무엇보다 안특별한 자리에 특별한 내 자식이 앉아 있다. 사실은 속상한 마음이다. 만만치 않을 초등학교 생활의 우여곡절을 헤쳐나가야 할 당사자, 걱정되고 떨리는 마음도 함께 거든다.
춘아, 이 사회를 구성하는 작은 9.5kg짜리 사람으로 역할하게 된 것을 축하해. 어린이집은, 유치원은, 학교는 사려 깊은 어른들이 너에게 만들어 주는 안전한 울타리야. 그 안에서 마음껏 실수하고 실패하고 울어볼 수 있어. 그리고 기억해. 엄마는 항상 너에게 기댈, 비빌, 누울 언덕이라는 걸.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