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아, 아기상어 보자.' 가끔 우리 집에 놀러 오시는 시부모님. 드문 드문 오시다 보니 아무래도 춘이와의 래포 형성이 덜 되어있다. 시아버지는 그 공백을 단숨에 매우고자 핑크퐁 아기상어 영상으로 흥미를 끈다. 볼륨도 업, 화면 밝기도 업. 춘이는 무엇엔가 홀린 듯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상어영상을 본다. 1분, 2분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이 좋지 않다. 그만 보여줄 것을 부탁드리면 흔쾌히 휴대전화를 꺼주신다. 그러면서도 덧붙이신다. '춘이만 몰라서 친구들 대화에 못 끼면 우짜노?'
미디어 특성
거칠게 말하자면 유아에게 보여주는 미디어가 설령 교육내용 담고 있더라도 교육적이지 못하다. 미디어가 갖는 일방향 소통 방식 때문이다. 미디어를 볼 때 춘이는 그림과 소리 등의 자극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 반면, 대면 상호작용은 양방향 소통 방식이다. 서로의 표정, 목소리, 몸짓 등 비언어적인 요소를 포함해 언어와 의미에 대한 정보를 끊임없이 주고받는다. 유아의 언어 발달, 정서 발달, 사회성 발달은 일방향 소통이 아니라 쌍방향 소통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양육자가 먼저 미디어를 제공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미디어에 새로운 정보(가르칠 내용)가 담겨 있다고 해도 도움이 안 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장면 전환 속도다.
처음 접하는 정보를 익히는 데는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 이전에 본 것과 대조하며 이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새로운 정보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빠른 장면의 전환은 새로운 정보 습득 자체를 어렵게 한다.
아동발달 특성
피아제의 인지발달이론에 따르면 영유아는 아동발달단계 중 '감각운동기'에 해당한다. 오감을 통해 배우는 시기이다. 중요한 것은 다섯 가지 감각의 전체적인 통합과 협응을 바탕으로 사고 발달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미디어에는 오감 중 시각에 편중되어 있기 때문에 아동발달을 돕는 좋은 자료로 볼 수 없다. 좋은 예시로는 '식재료 탐색' 또는 '요리 활동'이 있다. 오감의 통합을 경험할 수 있는 만지고(촉각/청각), 맛보고(미각/후각), 보는(시각) 활동이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가 수준 표준보육과정은 '기본 생활, 신체 운동, 의사소통, 사회관계, 예술 경험, 자연탐구' 6가지 내용 범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바탕으로 어린이집 교육 프로그램임 만들어진다. 표준보육과정 전문을 살펴보면 미디어 관련 성취기준 자체가 없다. '미디어에 대한' 또는 '미디어를 통한' 교육은 초등학교 국어교육과정에서 다루기 시작하는 내용이다.
발달 장애
미디어에 과다 노출이 되었을 경우 자폐 스펙트럼 장애, ADHD 장애뿐만 아니라 강한 자극에만 반응하고 약한 자극에는 반응을 하지 않게 되는 '팝콘 브레인'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심각한 수준의 미디어 노출은 특히 언어, 인지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전문가들이 공통된 의견이다.
뇌 발달
만 3세 이전은 뇌가 급격하게 발달하는 시기이다. 무엇을 제공하고 제한해야 할지 더욱 엄격해야 하는 이유다. 미디어는 뇌의 특정 부분에만 자극을 주기 때문에 뇌의 전체적인 발달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겉모습은 비슷해 보여도 뇌를 들여다보면 다르다. 후두엽(시각)만 자극되고 전두엽(사고/인지/언어)에 자극을 주지 않아 뇌의 1/3이 사라져 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한다. 또한, 빠른 화면 속도는 뇌의 정상적 발달을 방해한다. 실제로 미디어를 보는 아이의 뇌파는 수면 상태와 동일한 뇌파의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멍- 해보이는 이유다.
전문가 주의 권고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되지 않을까? 세계보건기구(WHO), 미국 소아과학회 모두 영유아의 미디어 노출에 주의 권고를 주었다.
고백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돌이 된 춘이에게 미디어를 보여줄 때가 있다. 손톱 깎을 때, 치실을 할 때이다. 손톱을 자를 때 움직이면 다칠 수 있으니 시선을 고정시키는 용도로 영상을 보여주고, 양치질을 할 땐 치실과 함께 구석구석 이를 닦아주기 위해 영상을 보여준다.(소아치과에서 머리는 아이가 스스로 감아도 양치질은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부모가 닦아주는 것이 좋고 조언해 주셨다.) 나름의 원칙을 세우고 꼭 필요한 상황에서만 보여준다.
물론, 힘들지만 나의 편안함을 위한 것인지? 춘이의 건강과 발달을 위한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으며 다시 중심을 잡는다. 비싼 영양제를 먹는 것보다 술담배를 하지 않는 게 건강을 지키는 방법이다. 교사 생활 10년을 하면서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를 만나온 나. 좋은 것을 주는 것보다 나쁜 것을 주지 않는 게 훨씬 중요하다는 간접 경험이 켜켜이 쌓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