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ience never gets old.
올해 진로안전부장을 맡으면서 한 일 중 가장 큰일이 아니었나 싶다. 학교보안관을 새로 뽑는 일이다. 모집인원은 1명. 백여 명이 지원했다. 지원자들의 스펙은 정말 다양했다. 경비원, 요양지도사, 은퇴한 교감, 전역한 대령, 퇴임한 경찰서장까지. 노후라는 말로 뭉뚱그려진 긴 세월을 쉬엄쉬엄 보내기엔 몸과 마음이 건강하시고 경험과 지혜를 갖춘 분들이셨다.
최종 5인을 선발해 면접 보았다. 진로안전부장인 나를 포함해 교감선생님, 학부모 위원, 학교운영위원회 위원이 면접관이 되었다. 경찰로 근무를 하셨다는 어느 분은 어딘가 모르게 경직되어 있고, 날카롭고, 차가웠다. 학생들에게 어떤 이미지의 학교보안관으로 보이고 싶으시냐고 물었을 때 '따뜻한 할아버지'라고 대답하셨만 눈매가 날카롭고 건조해서 무서운 할아버지 같았다.
한 분이 압도적으로 단연 돋보였다. 육군에서 장교로 10여 년 일하시고, 감사원에서 청사방호로 10여 년 일하시고, 최근에는 서울의 한 구청에서 조경일을 맡아오셨다고 했다. 사실 조경 경력은 학교보안관 관련 근무경력으로 보기 어려운 것이었으나 오히려 그는 구청에서 조경 업무를 맡았던 경력을 가장 강조했다.
고민했습니다.
이전 직장에서의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그냥 아저씨'로 조경을 담당하면서
나는 이제 스스로 자존감을 지킬 수 있겠다.
누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 가에 크게 개의치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확신이 들어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장교로, 청사방호 팀장으로 리더의 위치에서 20년간 일한 분이셨다. 본인 스스로도 구청의 조경업무 담당자 역할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가 우려스러웠다고. 마침내 심리적 장벽을 뛰어넘었다는 그의 얼굴을 보며 영화 <인턴>을 떠올랐다. 내 미래의 모습이 그와 비슷할 수 있길 순간 염원했다.
K-POP 오디션의 한 장면처럼 면접관들은 일제히 펜을 내려놓았다. 면접자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스토리텔링은 압권이었고 긍정적이고 밝은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5명 중 유일하게 웃는 얼굴 주름이었으며, 보라색 입술이 아니었다. 학교 보안관은 아무나 못한다.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단계로 설명하자면 자아통합을 이룬 자만이 뽑힐 수 있고 지속해서 근무할 수 있는 직무다.
개인적으론 교장선생님 자리보다 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매일같이 다양한 인성 수준의 학부모와 학생들을 대하는 것이 주 업무인데 딸아들, 손자손녀 뻘이다. 연가나 외출을 사용하려면 진로안전부장과 교감, 교장의 결제를 받아야 하는데 모두 자신보다 어리다. 여기서 '너 몇 살이야?', '내가 누군지 알아?' 하는 순간 모두가 곤경에 빠진다.
면접 상황에서는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늘 피면접자의 입장에만 섰으므로. 면접관 입장에 서보니 다 보였다. 평소에 어떤 성격일 것 같은지도 보였고, 학생들과 학부모에게 어떻게 대할지 예상도 되었다. 말하는 표정이나 눈빛, 어휘 선택에서도 살아온 흔적이 묻어났고 가치관이 담겨있었다. 심지어 진정성이라고 부를만한 것 까지도 느껴졌다.
보안관 채용을 하면서 여러 가지로 신경 쓸 일이 많았는데, 이렇게 훌륭하신 분을 맞이하게 되니 업무담당자로서 더없이 뿌듯했다. 좋은 분을 뽑았다는 확신에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교장실 문을 두드린다. '교장선생님, 진로부장입니다. 채용 결과 보고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