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장 예약을 하려고요. 사망진단서가 필요합니다. 사망진단서를 보는 순간 퇴연해졌다. 딸을 낳은 다음날, 반가움과 설렘으로 받아보았던 출생신고서와 문서의 형식이 상당히 비슷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왔다가 가는 것. 아귀가 맞는 일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망진단서를 빈틈없이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상단에는 사망 시간이 분단위까지 적혀있었다. 이로써 할아버지의 생몰연대가 완성되었다. 한 문장이 끝났음을 알려주는 온점 같았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담긴 책의 맺음말이었다.
사망진단서에는 출생신고서와는 달리 신체계측 정보가 없었다. 고인이 된 사람의 키와 몸무게는 무의미하다. 아기는 몇 kg, 몇 cm에 태어났는지가 감동스러운 화두라 문서의 상단에 적힌 후 때마다 회자되지만, 고인은 곧 열 줌의 모래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갈 몸인 것이다. 중하단에는 사망진단서답게 사인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었다. 연결고리를 정확히 밝혔다.
(가)의 원인
(가)로 인한 (나)의 원인
(나)로 인한 (다)의 원인으로 인한 최종 사망.
급성 심근경색은 심부전증을, 심부전증은 사지마비로이어 졌고 이내 사망이었다. 심장이 멈추면 사람은 죽는구나. '심장이 멈추면 사람은 죽는다.'라는 진부하고 평범했던 회색 문장이 벌겋게 살아 움직이며 내 마음에 확 달라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