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팥쥐아재 Jan 05. 2021

방귀대장 스컹크

첫 동화를 쓰다

아이는 생리현상에 호기심이 많다. 그리고 좋아한다. 처음 스컹크라는 동물을 알려줄 때도 그랬다. 지독한 방귀로 무서운 맹수를 쫓아낸다고 알려줬을 때 마치 스컹크가 위대한 영웅이라도 되는 것 마냥 좋아했다. 그 후로 동물놀이를 할 때마다 아이는 스컹크 역할을 했고 나는 호랑이나 표범과 같은 맹수가 되었다. 내가 쫓아가 잡아먹을라치면 방귀소리를 내었고, 독 방귀에 매소드급으로 쓰러지는 연기를 하는 나를 보며 천진난만한 웃음을 자아냈다. 아이의 미소를 보는 것 말고도 좋은 점이 더 있었다. 스컹크 덕분에 얼룩말이 되어 아이를 등에 태우고 방안을 질주하는 노역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내 무릎과 허리는 생명연장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둘째가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 전까지는......ㅠㅠ). 


그 시기에 아이는 잠투정이 잦았다. 희미한 어둠이 방안을 가득 채워도 아이 눈빛은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그 맑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라대면 잠든 척하기가 어려웠다. 처음에는 내가 알고 있는 전래동화나 세계명작을 이야기해주었다. 소재가 고갈되기 전에는 미리 동화책을 읽어 두었는데, 찾아보니 처음 읽어보는 동화가 많아 나름 재미있었다. 그러나 세대차이 때문인지 아니면 권선징악으로 끝나는 지루한 패턴 때문인지 아이는 금방 싫증을 내었고 나에게 새로운 미션을 주었다. 자신이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물을 언급하면서 그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참 어려웠다. 내가 무슨 이야기 만드는 기계도 아니고 어떻게 하라는 건지! 하지만 아빠의 숙명이란 어쩔 수 없었다. 이야기의 문맥이나 등장인물들의 개연성을 모두 무시하는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엉망진창 같은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좋아했다. 내가 자신 있게 '아이가 좋아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며칠 후 아이는 같은 이야기를 또 해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물론 모든 이야기가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세보진 않았지만 사장되는 이야기가 5등도 당첨되지 못한 채 버려지는 로또와 비슷할 것이다).


아이의 요청으로 반복했던 이야기는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간혹 기억나지 않는 부분은 기가 막히게 아이가 바로 잡아주었고 살을 더하고 빼다 보니 이야기가 더 매끄러워졌다. 아무리 머릿속에 있어도 오래 두면 잊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조금씩 글로 옮겨 적었다. 여러 번 되뇌고 말로 뱉은 것이라서 그런지 글쓰기가 수월했다. 여기에 아내님 그림으로 화룡점정을 찍으니 꽤나 그럴싸한 동화가 만들어졌다. 한 번은 동화 쓰기 강좌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홍보글을 써주면 소장용 동화책을 제작해 준다길래 냅다 글을 올렸다. 그리고 세상에 단 4권밖에 없는 "방귀대장 스컹크" 동화책을 만들게 되었다. 



https://youtu.be/w4avDvRNdl4


이 동화를 보고 있으면 아이의 웃음소리가 생생하게 들린다. 그 해맑은 미소를 상상하며 오늘도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한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도 쉽게 이해하는 그린 뉴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