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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Feb 19. 2020

기획은 상상력의 산물이다

2x2 matrix의 추억, 기획과 상상력

기획자로 일을 막 시작한 초기에 기획의 핵심은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루키 시절에는 고난의 대량 엑셀 작업으로 정량-정성 데이터를 분석해서 그럴듯한 그래프나 표를 만들어 가설을 검증하기도 하고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PPT 작업을 하면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긴장감과 즐거움을 만끽하기도 하였다. 논리적 사고에 몰입하며 솔루션을 찾았던, 참으로 즐거운 시기였다.


논리적 기획자로 가장 애용했던 세 개의 도구는 Issue-tree 만들기, MECE한 사고, 2x2 matrix였다. 세 가지 모두 기획의 강력한 도구들이지만 특히 2x2 matrix는 문제 이해와 솔루션 발굴이라는 기획의 본질에 대한 생각의 지평을 넓혀 준 방법론이었다. 내 인생에서 2x2 matrix를 처음으로 사용했던 대상은 나의 고등학교 시절에 관한 것이다. 8학군에 소재한 나의 모교는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학부모를 둔 대단한 학생들 – 절대로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 이 다닌 곳이었다. 대학에 진학한 후 나는, X축은 부모의 재력 그리고 Y축은 학생의 학습능력으로 설정하여 고교시절 당시 나는 어느 분면에 위치했는지, 내가 아는 친구들은 어느 분면에 위치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꽤 오랫동안 기업에서 기획자로 일하면서 2x2 matrix는 언제나 친숙하고 중요한 기획 도구였다.


2x2 matrix의 핵심은 단순화이다. 먼저 문제와 관련된 세부적인 인과관계 규명보다는 미션 그리고 도달해야 하는 output image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문제의 쟁점을 맥락 속에서 파악하는 관계지향적이고 개방적인 사고를 통해 문제를 단순화하여 초점을 선명하게 부각하는 것이 2x2 matrix의 핵심이다. 이 과정에서 오감을 사용해서 구체적인 현실 그리고 사실과 사건에 집중하는 감각적 사고(Sensing) 못지않게, 직감을 통한 가능성 그리고 사실과 사건의 이면 관계나 패턴 파악에 집중하는 직관적 사고(iNtuition)가 중요하게 작동한다. 직관적 사고는 파스칼이 말한 ‘섬세의 정신’이다. 이는 일상적으로 대하는 복잡한 사물들을 추리에 의하지 않고 한번 보는 것으로 총괄적으로 알아차리는 감정적인 인식 능력이다. 우리는 직관적 사고를 통해 도식과 수의 세계에서 시적 세계 즉 상상력의 세계로 넘어간다.


상상력은 감각과 이해를 중개하는 지각의 필수 요소이다. 칸트는 모든 지식의 형성에 상상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강조하면서 상상력을 적극적인 종합력으로 정의하였다. 칸트의 정의에 따르면 상상력은 감각에 의해 지각되는 여러 자료들을 결합하고 통일시키는 선험적인 능력이다. 상상력이 없다면 우리는 객관적인 세계에 대한 어떠한 객관적 지식도 획득할 수 없고 주관적 지식도 가질 수 없게 된다.


요약하면 이렇다. ‘의미 있는 문제 이해와 전략적 솔루션 발굴’이라는 기획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선 논리적-분석적 사고를 통해 문제에 체계적으로 접근한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미션과 output-image에 집중하는 직관력을 통해 문제는 단순화되고 총괄적이고 언어적으로 규명 혹은 규정된다. 이렇게 개인과 조직 안에 체화된 문제는 일상 속에서 축적되고 숙성되면서 상상력을 통해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된다.


사실 상상력의 본질에 대한 칸트의 견해는 감각과 이해의 종합이라는 자신의 사유를 넘어선다. 이와 관련하여 이승훈 시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현상은 필연성의 세계이며 이는 감각과 이해의 범주이다. 반면 도달하여야 하는 도덕 혹은 미적 판단은 자유의 세계이며 이는 상상력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상상력은 이해와 대립하며 이때의 상상력이란 연상의 법칙을 따르는 재생 작용이 아니라, 그 자체의 활동을 실현하는 생산적인 양상을 띠는 자유로운 정신 행위이다.


물론 이것은 예술 일반의 특성과 관련하여 칸트가 상상력에 대해 사유한 것이다. 하지만 기획을 ‘의미 있는 문제 이해와 전략적 솔루션 발굴’이라고 정의한다면 칸트의 상상력은 기획의 영역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기획은 먼저 논리적-분석적 사고와 직관력을 통해 현상을 의미 있게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행동을 유발할 수 있는 생산적인 상상력을 통해, 도달해야 하는 output-image와 솔루션을 창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상상력은 문제 이해 과정에도 기여해야 하고 문제 이해는 상상력에 기여해야 한다.


그래서 기획은 상상력의 산물이다.

그리고 최악의 기획은 기억력에 의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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