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일, 글쓰기의 전략, 논리의기술, 고종석의문장1, 나는 왜 쓰는가
의도한 바를 거침없이 능란하게 글로 풀어내는 사람을 보면 존경심과 더불어 언제나 부러운 마음이 든다. 그러다 문득 우울함과 두려움의 감정에 휩싸이기도 한다. 조금 전에도 페이스북에서 글쓰기 고수의 글 한 편을 읽고 포복절도하다가 기운이 쇠할 뻔 했다. 그 글은 풍자 형식이었다.
풍자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의 악이나 아둔함을 반어나 조롱이나 기지로 공격하는 예술’이다. 미국의 문학비평가 스탠리 피시는 저서 <문장의 일>에서 ‘풍자는 잔인한 욕설과 온건한 냉소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며 ‘말할 바를 앞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내용은 대체로 궤멸적’이라고 설명하였다. 또한 풍자라는 글쓰기 형식은 긴 문장이나 단락 때로는 글 전체의 어조를 장악해 조율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풍자의 비결은 ‘무표정한 주장에서 출발하되 그 주장이 취할 고약한 전환에 대해서는 아무런 단서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풍자는 고수의 경지에 올라야 발휘할 수 있는 글쓰기 초식인 듯하다. 초심자가 함부로 흉내 내지 말아야 하겠다. 방금 읽은 그 글도 의미만 한번 가만히 생각하고 조용히 물러났다.
<문장의 일>에서 스탠리 피시는 앞에서 언급한 풍자 형식 외에 두 가지 종류의 문장 형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하나는 병렬 형식이다. ‘문장의 구조 요소들을 종속 관계로 이어놓지 않고 동등하게 배열’하는 것이 병렬 형식 문장이다. 절과 문장들은 ‘가장 경미하거나 약한 이음줄에 의해서만 연결’되며, 이어지는 ‘절과 문장들은 전체를 아우르는 논리가 아니라 자유로운 연상에 의해 생산’된다.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인상, 글의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느낌’, 즉 계획과 질서와 통제가 아니라 즉흥성과 무계획과 우연의 효과를 원한다면 병렬 형식으로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병렬 형식의 글을 쓰는 것은 물론이고 읽는 것조차 힘들고 어렵다. 체계적인 구조와 질서를 갖춘 고밀도 문장의 통제력이 주는 명료함과 안정감이 익숙한 나에게, ‘아무런 계획 없이 펜촉의 첫 움직임이 그대로 두 번째 움직임으로 이어지는’, 자유 분방해 보이는 글의 모호함과 비논리성 그리고 그 속에서 빠지게 되는 잦은 방향상실은 힘들고 지루하며 때로는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사실 ‘평범한 대화를 하면서 끝도 없이 이야기를 이어가며 논거를 대고 빈 곳을 채우고, 윤색하고 상술하고, 세부사항을 이야기하다가 또 딴 데로 새면서 결국엔 하던 이야기를 제대로 마치지도 못하는’ 글을 누가 참아주겠는가?
하지만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세계는, 연쇄가 아닌 연속적인 흐름이며 또한 예측 불가능한 곳 아닌가? 접속부사 ‘그래서, 그리고, 그러나’의 의미는 점점 쇠퇴하고, ‘갑자기, 그런 다음, 어쩌다’ 와 같은 표현의 사용빈도가 이미 높아진 세계이다. 모호하고 비균질적이고 비선형적이며 중심과 주변의 구분도 없이 점점 가속하는 흐름에 이미 몸을 맡기고 있다. 그렇다고 사건과 사물을 질서정연한 관계 구조에 끼워 넣으려고 그 흐름을 멈출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런 세계 속에서 체계적인 분할과 균질적인 분류, 일관성과 중심 찾기, 총괄적 파악과 개요 기술은 오히려 쉽지 않으며 때로는 무용한 결과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병렬 형식의 문장을 (읽지 않고) 보면서, 어쩌면 이것은 시간과 공간의 표현에 대한 탈근대적 모색 과정에서 생성된 문장 형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어떠한 결론으로도 이어지지 않는 문장, 논리성과 일관성을 거부하는 단어의 연속, 단순한 하나의 진술이 아니라 천 가지 가능성을 표현하는 단어, 쓸모에서 해방된 단어’, 이런 것들을 어떻게 읽어내고 쓸 수 있을까? ‘볼트와 너트를 끼워 넣듯 딱 맞춘 연결을 피할 것, 모든 것을 제자리에 배치하지 말 것, 일관된 시간틀을 유지하지 말 것, 화자의 목소리에 통일성을 기하지 말 것, 명료함을 추구하지 말 것’ 그리고 ‘자유롭게 떠돌고, 날개를 달아 날아다니고, 아무데도 묶이지 않은 듯한’ 경험, 어려운 일이다.
<문장의 일>이 제시하는 나머지 하나는 종속적 형식이다. 문장의 요소들이 ‘인과, 시간성, 우위’에 따라 정확하게 배열되는 글이다.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을 되는 대로 적어 놓은 것’이 아니라 ‘내가 주의 깊게 생각한 것들을 질서 정연한 열매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글의 모든 요소들이 구조화되어 중심 주제를 드러내는, 매우 목적지향적이고 체계화된 글이다. 글을 쓰는 이는 글의 내용이 ‘어디로 갈지 어떻게 갈지 애초부터 알고’ 있으며 또한 상황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전달해야 할 모든 내용을 미리 숙고하고 ‘통제와 조율’을 거친 완벽한 형식을 통해 완성되는 글이다.
종속 형식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힘과 통제가 팽팽하게 느껴지는’ 구성력이 필요하다. 정희모 연세대 교수와 이재성 연세대 교수는 공저인 <글쓰기의 전략>에서 구성은 단순한 구조가 아닌 구심력이며 논리적 흐름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의 작가 로널드 B. 토비아스에 의하면, 플롯은 단순한 뼈대 혹은 구조가 아니라 글의 추진력 또는 글을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건이나 이미지, 등장인물을 연결하여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추동력에 가까운 플롯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어떤 한 곳으로 작품의 모든 요소를 끌고 가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구심력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토비아스의 플롯에 관한 개념을 글의 구성에 적용해보면, 구성도 단순한 구조가 아니라 구심력 혹은 전기장력과 흡사하고 또한 모든 글에는 주제를 향한 일정한 흐름이 있는데, 주제를 구현하기 위해 일정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힘이 구성력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 흐름 즉 구성이 만들어 내는 흐름은 전체를 아우르는 논리에 의해 생산되어야 한다.
논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반드시 생각나는 책이 있다. 맥킨지의 바바라 민토 여사가 쓴 <논리의 기술>이다. 주로 비즈니스 문제와 관련하여 ‘피라미드 형태의 글쓰기 구조’에 대한 설명과 훈련에 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논리적으로 생각하기와 문제해결하기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글쓰기와 표현하기를 위한 실전교본과도 같은 책이다. 벌써 십 년도 넘게 가지고 있는 책인데 지금도 때때로 꺼내 보곤 한다. 더없이 건조한 내용이지만 읽고 또 읽으면 어딘가로 인도하는 책이다.
종속 형식의 글은 사실 쓰기 쉽지 않다. 구조적 완결성과 논리적 탄탄함 그리고 명확한 문장과 적확한 단어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엄밀한 요구사항이 까다로운 제약조건이기도 하지만 명확한 지침이기도 하다. <문장의 일>에서 스탠리 피시는 윌리엄 워즈워드의 시 한 구절을 소개한다. “수도자는 비좁은 수도원 방을 싫다 하지 않는다.” 수도원의 비좁은 방으로 비유되는 제약조건이 ‘지나치게 큰 자유의 짐’을 덜어 주어, 까다롭고 힘든 수도 생활을 하는 수도자에게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좁은 방에 사는데도 잘 지내는 것이 아니라, 좁은 방에 살기 때문에 잘 지낸다는 것이다. 나는 종속 형식의 글이 좋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즉시 서가에서 꺼내 다시 읽은 책이 있다. 내 손에 들어 온지 십여 년이 훨씬 지난 <고종석의 문장1>이라는 책이다. 글쓰기와 관련하여 무언가를 말해야 하는 상황이면, 아는 척하며 자주 인용하곤 했던 책이다. 이 책은 여섯 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고 개별 챕터는 본문에 해당하는 글쓰기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들 그리고 글쓰기 이론, 글쓰기 실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글쓰기 실전, 사실 나는 이 책의 정수은 글쓰기 실전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챕터마다 적게는 한두 개에서 많게는 스무 개가 넘는 예문 – 예문은 모두 저자의 다른 저작에서 뽑았다 - 을 제시하면서 조사 사용법, 표현의 적절성, 단어의 적절성, 인용의 적절성, 어법의 적절성 등 제시된 문장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철저하게 지적하면서 ‘첨삭 지도’한다. 완전히 빨간펜 선생님이다. 나는 글쓰기 실전에 실린 예문 하나하나를 반복해서 읽고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자가 추구하는 명료한 문장, 간결한 문장에 대한 모습을 어렴풋이라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접한 후 작문을 하면 반드시 내가 쓴 문장을 다시 읽으면서 하나하나 따져보려고 노력한다. 참 고마운 책이다.
글쓰기 관련 주제들과 글쓰기 이론에 나오는 내용들도 모두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유용하다. 특히 언어, 역사, 문법에 대한 저자의 해박하고 깊은 지식 그리고 무엇보다 쉽고 편안한 전달은 그 자체로 지성의 향연이다. 읽을수록 깊이 빠져든다. 논리와 수사와 지성이 만들어내는 변주의 아름다움이 가득한 책이다. 아마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논리적 명료함이고, 변주가 표현하려는 주제는 ‘한국어로 쓴 아름다운 문장’이리라
<문장의 일> 첫 머리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문장을 좋아하는 일이야 말로 작가 생활의 출발점이며 물감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이 화가가 된다. 많은 경우 작가나 화가로서의 출발점은 위대한 작품에 대한 열정보다 오히려 글과 그림의 도구에 대한 느낌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나는 왜 쓰는가, Why I Write>에서 조지 오웰도 자신은 어려서부터 자신에게 낱말을 다루는 재주가 있다는 걸 - 물론 그는 ‘불쾌한 사실을 직시하는 능력’도 언급했다 - 알았고, 그래서 그는 대여섯 살 때부터 자신이 작가가 되리란 걸 알고 있었다고 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문장을 쓰고 가다듬으면서, 논리적으로 명료한 글 그리고 딱 필요한 만큼 간결하게 쓰여진 글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이다. 물론 ‘글쓰기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노동’이다. 그것도 ‘고통스러운 노력’이 필요한 외로운 지적 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