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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May 15. 2020

병사가 들려주는, 삶과 죽음이 반복되는 전쟁 서사시

영화 <1917> 후기 (2019)

한 병사가 들려주는, 삶과 죽음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전쟁 서사시 

1차 세계대전 당시 서부전선의 참호전에 배치된 영국군 병사 스코필드는 전장의 어느 목초지 나무 그늘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었다. 전쟁이 막 시작되었을 당시만 해도 단기간의 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하고 영웅의 모습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확신했는데 벌써 3년이 지나고 전쟁은 교착상태에 빠져 버렸다. 연합군과 독일군을 합쳐 100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솜 전투에도 참전한 그는 훈장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그 훈장을 쇠붙이 정도로 여기며 와인 한 병과 바꾸었다.


그는 그날 낮잠을 자고 있다가 블레이크와 함께 임무를 부여받는다. 그것은 1,600명 병사들을 학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무모한 돌격을 중단하라는 작전명령서를, 통신망이 두절된 상황에서 최전선의 영국군에게 전달하라는 것이다. 사실 이 명령은 절박한 이유가 있는 블레이크에게 주어진 것이고 스코필드는 아주 우연히 그 임무에 동원되었을 뿐이다. 블레이크와 스코필드는 아군 참호에서 나와 무인지대를 지나고 독일군이 막 빠져나간 적군 참호를 지나는 등 전장을 가로질러 나간다. 도중에 블레이크는 전사하지만 스코필드는 최전선의 영국군 부대에 도착해 본격적인 돌격이 개시되기 바로 직전에 마침내 공격 중단 명령서를 전달하고 아군의 무모한 공격을 중단시킨다. 그리고 영화는 끝난다.


처음에는 두 명의 병사의 시선으로, 그리고 블레이크가 전사한 후 스코필드의 시선으로만 전개되는 이 영화는 매우 단선적인 서사구조 속에서 철저하게 병사의 경험담에 의존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전쟁 모험담이다. 영화는 1917년 4월 6일 한낮부터 다음날 새벽녘까지 스코필드가 벨기에 전선의 전장 약 16 km를 가로지르며 보고 느꼈던 일들을 사실적으로 때로는 매우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그리고 단선적인 서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삶과 죽음이 번갈아 가며 가면을 쓰고 나타나 관객들에게 얼굴을 내민다. 매우 부조리한 상황이며 때로는 신화적인 느낌마저 든다.


무인지대에 산재해 있는 철조망과 포격으로 파인 물웅덩이들, 도처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 그 시체를 먹고 고양이만큼 몸집이 커버린 들쥐들, 막 철수한 독일군 진지 속의 부비트랩과 참호 붕괴로 인한 함몰 위기, 간신히 독일군 진지를 빠져나오자 펼쳐진 목초지와 체리나무, 조금 전까지 사람이 있었던 것이 분명한 버려진 농가와 젖소 한 마리, 막 짠 듯 신선한 우유, 그리고 블레이크의 전사.


스코필드는 계속 나아간다. 이동하는 영국군의 군용 트럭을 얻어 타고, 끊어진 다리를 건너고, 저격병과 대치하고, 포격으로 무너진 건물 지하에 숨어 사는 여인과 갓난아기에게 보급품과 수통에 채워둔 우유를 건네고, 불타는 도시의 밤거리를 쫓기면서 미친 듯이 달리고, 강물에 뛰어들어 급류에 휘말려 폭포로 떨어지고, 그리고 완만해진 강물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흐드러진 체리꽃과 함께 떠내려간다.


새벽 무렵 스코필드가 얼굴을 하늘로 향하고 물에 반쯤 떠서 꽃들과 함께 강물에 떠내려가는 장면은 19세기 중반 영국 라파엘전파의 존 에버렛 밀레이의 그림 <오필리아>와 겹친다. 햄릿의 순수한 연인이며, 그녀의 아버지와 햄릿 그리고 왕과 왕비의 비극 속에서 강물에 몸을 던져 아름다운 꽃들에 둘러싸여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세상의 탐욕과 부조리함 그리고 온갖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난 오필리아, 셰익스피어는 그녀의 오빠의 대사를 통해 그녀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 애는 자신의 불행을 모르는 사람처럼, 아니면 본래 물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존재처럼, 옛 노래 몇 절을 불렀다는구나. 그러나 오래지 않아 물에 젖어 무거워진 옷은 그 가엾은 것을 아름다운 노래에서 진흙탕의 죽음으로 끌어들이고 말았다는구나.”


강물에 떠내려가는 스코필드의 표정은 평온했다. 곧 진흙탕의 죽음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하지만 스코필드는 강변에 겹겹이 부유하고 있는 시체들을 헤치고 강둑으로 올라온다. 그곳에서 스코필드는 이제 곧 먼동이 트면 시작될 돌격을 앞둔 최전선의 영국군 병사들이 숲 속에서 부르는 노랫소리를 듣게 된다. 어쩌면 오필리아가 불렀을지도 모르는 옛 노래 몇 절이다.


“I am a poor wayfaring stranger, wandering through this world of woe. And there's no sickness, no toil or danger in that bright land to which I go. 나는 가여운 여행자, 비애의 세상을 떠도네. 아픔, 고역 그리고 위험이 없는 곳, 그곳을 향해 여행하네.”


이제 스코필드의 모험담은 곧 끝나려고 한다. 최전선 참호에 있는 지휘관을 만나야 한다. 그에게 명령서를 전달하고 돌격을 중단시켜야 한다. 시간이 없다. 양측의 포격은 이미 시작되었고 이제 영국군의 본격적인 돌격 개시만 남아 있다. 스코필드는 참호를 나와 달린다. 이미 적진을 향해 돌격하고 있는 선발대와 부딪치며 쏟아지는 포격 속에서 참호 끝으로 달려간다. 간신히 아군의 공격을 중단시킨다.


그리고 공격 중단 명령을 전해 들은 최전선의 지휘관이 스코필드에게 보인 반응 ; “Hope is a dangerous thing. Then next week, Command will send a different message. Attack at dawn. There is only one way this war ends. Last man standing.” 그렇게 스코필드의 모험담은 허무와 부조리로 얼룩진 전쟁 서사가 되어버린다. 그는 야전병원 텐트에서 블레이크의 형을 만나 동생의 사망 소식을 전하고, 다시 목초지의 나무 그늘에 앉아  장의 사진을 꺼내 본다. 아내와 , 사진 뒷면에는 아내가  글귀가 보인다. ‘Come back to us.’


'이상 없는 서부전선'의 참호전이 남긴 트라우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1917년 4월 6일 한낮의 목초지 나무 그늘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스코필드는 우연히 블레이크와 함께 모험에 나서게 된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무렵 모험을 마치고 돌아온 스코필드는 다시 목초지의 나무 그늘에 혼자 앉아, 전쟁으로 인한 합리적 사고에 대한 불신, 모럴이 붕괴된 세계와 실패한 인간상, 전쟁을 수행한 자신의 삶의 모습에 대한 혐오, 고독과 불안을 안고 그리움 속에서 가족사진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참호전(Trench War)은 ‘세기의 근원적 파국’이라는 1차 세계대전 당시 교착상태에 빠진 서부전선의 지상전 양상이었다. 단기간의 전쟁에서 승리를 확신하며 전쟁터로 나간 수백만 명의 젊은이들이, 북해에서 스위스 국경까지 이어져 있다는 서부전선의 참호 속에서 철조망과 기관총 그리고 저격병으로 대치한 가운데, 돌격과 방어를 무한 반복하면서 죽음의 경험, 떼죽음에 내맡겨진 경험, 모든 즐거운 모습들이 산산조각 나버린 경험을 4년간 겪게 된다. 한 번의 돌격으로 빼앗은 땅의 면적은, 그 공방으로 죽은 병사들을 묻을 수도 없을 만큼 좁은 것이었다고 한다. 당시 참호 속의 병사들이 감당한 고통-절단-공포-죽음의 물리적 경험과 정신적 공황상태의 참혹상이 한 통의 야전 편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멀리서부터 휘파람 소리가 들리면, 폭발의 파장에서 오는 과도한 폭력을 견뎌내기 위해서 온몸이 움츠러들었다. 모든 반복은 새로운 공격, 새로운 탈진, 새로운 고통이었다. 가장 강한 신경들도 이러한 부담을 장기간 견뎌낼 수는 없다. …… 총탄을 맞아 죽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닌 듯하다. 그때 우리 존재의 일부는 무사하다. 하지만 찢어지고 조각으로 동강 나며 죽처럼 으깨지는 것은 육신이 견뎌낼 수 없는 공포다.’ (1차 세계대전 중 어느 야전 편지)


마지막으로 영화 <1917>의 시나리오 표지에 적혀 있는 시 한 구절을 읽으면서 글을 마친다.


‘Life, to be sure,
 Is nothing much to lose,
 But young men think it is,
 And we were young.’

<A.E. Housman>


오필리아 (Ophelia)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캔버스에 유채 / 76.2x111.8cm / 1851~1852년
런던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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