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친구들은 하나같이 대학에 갔다.
나는 가지 않았다.
대학을 꼭 가야 하는 이유를 몰랐고, 공부는 싫었고, 무엇보다 남들과 똑같은 평범한 길을 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딱히, 하고 싶은 것도 뚜렷하지 않았다.
막연히 말했다.
“막내 이모가 계신 미국에 갈 거야.”
엄마가 물었다.
“학비는? 생활비는?”
말문이 막혔다.
내가 고작 생각해낸 건,
홍대의 작은 샌드위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와 학비를 마련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시급이 얼마였더라... 4,000원 남짓이었던 것 같다.
평일 아침 8시, 카페 문을 열고, 오후 6시까지 일했다.
그렇게, 햄스터 챗바퀴처럼 하루하루를 돌고 있던 어느 날.
엄마가 말했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만 해서 뭐 하려고?”
“음... 내가 말했잖아. 나 미국 가려고.”
“가서는 뭐 할 건데?”
“…몰라.”
그리고 이어진,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는 엄마의 말.
“난 네가 뭘 하든 응원해. 다만, 그건 알아둬야 해.
남들이 가는 평범한 길을 가지 않으면, 그 이상으로 더 힘들 거야.
2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해. 그렇게 할 수 있겠어?”
(그때, 내 세계에서 ‘평범한 길’이란 대학에 가고, 취업하고, 결혼하는 삶이었다.)
“아니.”
그 주말부터 나는 독립 도서관에 나가기 시작했고, 노량진 재수 단과학원에 등록했다.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른 채로.
하지만 적어도 ‘남들보다 2배 이상 노력할 자신이 없다’는 것만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매일 아침, 첫 전철을 타고 노량진으로 향했다.
그리고 반년 동안 공부를 했다.
그 결과, 대학에 갔다.
남들보다 1년 늦게,
평범한 길이라고 불리는 트랙에 발을 올렸다.
하지만 그 길 위에서 알게 됐다.
‘이게 다가 아니구나.’
이건 내 인생의 정답도, 결승선도 아닌
그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걸.
겨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