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ghoo Kim Jan 12. 2020

허무주의, 반지성주의, 그리고 파시즘

Intermission : 현대 사회를 지배해 온 냉소주의cynicism

들어가며


3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근현대의 정신사에서 묵과할 수 없는 냉소주의의 흐름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려고 한다. 브런치 플랫폼에 작가 신청을 할 때 샘플로 냈던 글인데, 읽고 나면 좀 더 3장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그림은 장 레옹 제롬이 1860년에 그린 <디오게네스> 이다. 키니코스 학파의 창시자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안티스테네스이며, 디오게네스는 그 제자이다. 어원인 키니코스가 개에서 유래했기에 견유학파라고도 한다. 디오게네스는 저렇게 평생 문명을 거부하고 길거리 나무통에서 살며 무소유를 실천했다고 한다. 키니코스Cynics의 어원은 오늘 주제인 냉소주의Cynicism와 같다.  



            




냉소주의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하기 전에 19세기 독일 철학자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해야 한다. 헤겔 철학에서는 "'인간'은 우선 자기의식을 갖는 존재이며 마찬가지로 자기의식을 갖는 '타자' 와의 투쟁에 의해 절대지絶對知나 자유나 시민사회를 향해 가는 존재" 라고 규정한다. 이 투쟁의 과정을 헤겔은 '역사' 라 불렀다. 

그리고 헤겔은 이런 의미에서의 역사는 19세기 초 유럽에서 끝났다고 주장한다. 그는 근대사회의 탄생이야말로 '역사의 종언' 이라 선언하는데, 이후 2세기 동안 근대적 가치관이 전 세계를 뒤덮는 가운데 '역사의 종언' 에 대한 저마다의 해석이 나타나게 된다. 

단 헤겔의 이와 같은 발언에 대해서는 첨삭할 부분이 있다. 마르크스 사상의 저술가 게오르그 루카치Gyorgy Lukacs는 자신의 저서에서 청년 시절 혁명적-공화주의적이던 사유를 담지하던 헤겔은 프랑스 혁명의 자유주의에 의해 독일의 후진성을 극복하고자 했지만 점차 보수주의적으로 변했는데, 그 경과로 예나를 침공하여 시가지를 걷는 나폴레옹을 보고 새시대의 정신을 담지하고 있는 '세계영혼' 이라 부르고, 만년에는 프로이센을 최고의 국가형태로 간주하며 군주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에 긍정적 의미를 부여했음을 밝힌다. 후대 학자들은 그의 이같은 발언을 '민족중심주의' 라 비판한다.              







『헤겔 독해 입문』을 저술한 알렉상드르 코제브Alexandre Kojeve는 러시아 태생의 프랑스 철학자이다. 『헤겔 독해 입문』 1장에서 코제브는 헤겔적인 역사가 끝난 뒤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생존양식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첫째, 미국적 생활양식의 추구 즉 '동물로의 회귀', 둘째, 일본적인 스노비즘이다. 


<...이로부터 나는 이런 결론을 끌어냈다. 즉, '미국식 생활양식' 은 포스트역사 시대의 고유한 생활양식이라는 것, 미국이 현실로서 세계에 현전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인류 전체의 '영원히 현존하는' 미래를 예시하는 것이라는 결론. 따라서 인간이 동물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직은 도래하지 않은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현전하는 확실성으로서 나타났다.(중략) 


'포스트역사의' 일본 문명은 '미국식 생활양식' 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일본에는 더 이상 '유럽적' 혹은 '역사적' 인 의미에서의 종교도 도덕도 정치도 없었다. 하지만 그 순수 형태에서의 속물들(스노비즘)은 '자연적' 이거나 '동물적' 인 소여(주어진 바)를 부정하는 규율을 창출했다. 이것은 효과라는 면에 있어서 일본이나 다른 곳에서 '역사적' 행동을 통해 생겨났던 것, 즉 전쟁과 혁명적 투쟁 또는 강제 노동에서 생겨났던 것을 훨씬 능가했다. 확실히 노가쿠能楽나 다도나 꽃꽂이 등과 같은 일본 특유의 스노비즘의 정점(이에 필적할 것은 어디에도 없다)은 귀족과 부유층의 배타적 전유물이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그러나 지속적인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본인들은 예외 없이 완전히 형식화된 가치에 기초하여, 즉 '역사적' 이라는 의미에서 '인간적' 인 내용을 모두 상실한 가치에 기초하여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극단적(궁극적)으로 보면 모든 일본인은 순수한 스노비즘에 의해 원리적으로는 완전히 '아무 대가도 없는' 자살을 행할 수 있다.(사무라이의 고전적 칼은 비행기나 어뢰로 바뀔 수 있다) (중략)  


오늘날 그 어떤 동물도 스놉일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일본인화된' 포스트-역사적 시대는 분명히 인간적일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서 인간적인 것의 '자연스런' 뒷받침 역할을 했던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이라는 동물들이 있는 한, "고유하게 그렇게 불리는 인간의 경쟁적인 무화" 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위의 주석에서 말했듯이, "자연이나 주어진 존재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동물" 은 살아 있는 존재이되 결코 인간적이지는 않다. 인간적인 채로 머물러 있으려면, 인간은 설령 "소여(주어진 것)를 부정하는 행동과 오류" 가 사라졌다고 하더라도, "대상과 대립된 주체" 로서 남아 있어야만 한다.(후략)> - 『헤겔 독해 입문』(1968) P.160~161 


스노비즘은 주어진 환경을 부정할 실질적인 이유가 아무 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형식화된 가치에 입각해' 그것을 부정하는 행동양식이다. 스놉은 환경과 조화하지 않는다. 비록 거기에 부정의 계기가 전혀 없다고 해도 스놉은 그것을 굳이 부정하고 형식적인 대립을 만들어내어 그 대립을 즐기고 애호한다. 이와 같은 삶의 방식은 부정의 계기가 있다는 점에서 결코 '동물적' 이지는 않다. 그러나 그것은 또 역사시대의 인간적인 삶의 방식과는 다르다. 스놉들의 자연과의 대립은 이미 어떤 의미에서도 역사를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포스트 역사의 인간은 그 형식을 내용에서 계속 분리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것은 내용을 행동에 의해 변질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한 형식으로서의 자기를 어떠한 내용으로서 파악된 자기 및 타자에 대립시키기 위함이다.> - 『헤겔 독해 입문』(1968) P.247              






슬로베니아 출신의 정신분석학자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은 '스노비즘' 을 자세히 이론화하여 '냉소주의cynicism' 라 불렀다. 그는 1989년에 저서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스탈린의 강박관념이란 이렇다. 우리는 모두 무대 뒤에서 거친 당파투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의 통일이라는 겉모습은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유지되어야 한다. 사실은 누구도 지배적인 이데올로기 따위를 믿지 않는다. 누구나 거기에서 냉소적인 거리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 이데올로기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또한 인민이 정열적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당을 지지한다는 등의 겉모습은 뭐가 어떻다 해도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다.(중략) 그러므로 스탈린주의는 대문자 타자의 존재를 나타내는 존재론적인 증거로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P.298-299 


스탈린주의 지지자는 그것이 '거짓' 임을 알면서도 그래서 더더욱 믿는 척하기를 그만두지 못한다. 실질과 형식의 이 뒤틀린 관계는 코제브가 스노비즘이라 부른 태도와 같은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코제브가 '그렇기 때문에 형식적 가치를 믿는 척하는 것' 을 주체의 능동성으로 파악한 반면 지젝은 '그러한 전도가 오히려 주체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강제적인 메커니즘' 이라 역설한다. 

지젝은 '냉소주의' 를 두고 인간의 보편적 원리라 주장한다. 그러나 일본 철학자 아즈마 히로키는 지젝의 '냉소주의'를 '1차대전의 결과로 일어난 '20세기의 정신' 의 분석으로서 정교하게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를 아즈마는, 지젝이 빈번히 참조하는 라캉의 이론이 세계대전의 경험에서 도출되었고, 라캉이 주목한 프로이트 만년의 연구(죽음 충동과 반복강박)가 1차대전 당시부터 전후에 걸쳐 생겨났으며, 그 외에 라캉에게 영향을 준 하이데거 철학이나 초현실주의 운동도 같은 시대에 생겨났기 때문이라고 기술한다.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의 냉소주의론은 독일의 비평가 페터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가 1983년에 출간한 『냉소적 이성 비판』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아즈마가 지젝의 냉소주의론을 두고 '1차대전의 결과로 일어난 20세기의 분석' 이라 정의하는 이유는 슬로터다이크가 검토한 냉소주의는 어디까지나 20세기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슬로터다이크는 바이마르기의 정신, 바이마르의 사조를 시니시즘 혹은 시니컬 이성으로 특징짓는다. 그리고 이러한 시니시즘 가운데서 히틀러도 나올 수 있었다고 시사하고 있다. 슬로터다이크는 4가지의 허위의식, 즉 거짓말, 미망, 이데올로기, 시니시즘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데올로기는 허위이지만 진실로 간주되는 허위이다. 단, 거기에는 원인이 있다. 즉 이데올로기의 담당자의 사회구조상의 위치, 계급적인 위치로 인해 그것이 진실로 여겨지게 된다. 이데올로기를 비판할 때에는 그 허위성을 폭로하고 그것이 당사자에게는 진실로 보이는 사회적인 원인을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즉 거짓말, 미망, 고전적인 이데올로기까지의 세 가지 허위의식에 대해서는 계몽의 전략에 입각한 비판이 유효하다. 

이에 대해 시니시즘은 한 단계 진전된 이데올로기로 메타적인 시점의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다. 시니시즘은 자기 자신의 허위성을 자각한 허위의식으로 계몽된 허위의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그런 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일부러 이러고 있는 거야" 와 같은 태도를 취한다. 이러한 태도에 계몽의 전략에 입각한 비판은 효과가 없다. 계몽하려 해도 처음부터 허위임을 알기에 의미가 없다.  

이러한 허위의식의 대표적 사례로 상업광고를 들 수 있다. 광고는 대개 문구에 장난을 치고 있지만 일정의 효과를 올리며, 내보내는 사람과 받아들이는 사람 양자가 거짓임을 알면서도 진실인 듯한 행동을 환기시킨다.              





히틀러는 뮌헨 폭동에서 정권을 장악하는 데 실패한 후 『나의 투쟁Mein Kampf』을 옥중 집필한다. 여기에는 어떻게 해서 대중을 속일까 하는 내용이 모두 적혀 있었다. 대중을 기만하는 테크닉을 대놓고 처음부터 공표한 셈이다. 그러나 히틀러와 나치당은 이후 유유히 국민의 지지를 받아 정권을 장악하고 반대파를 숙청하고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다.  

대중이 단순하게 속고 있었다고 할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거짓이라는 것을 사실은 알고 있으면서도 받아들인 것이다. 이렇듯 1930년대 독일의 정신적 상황이 현재의 포스트모더니즘 상황과 상당히 닮아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참고 문헌 


G.W.F. 헤겔 / 권기철 譯 <역사철학강의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te>

G. 루카치 / 권순홍, 이종철, 정대성 譯 <사회적 존재의 존재론Zur Ontologie des gesellschaftlichen Seins>

A. 코제브 <Introduction to the Reading of Hegel>

S. 지젝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

P. 슬로터다이크 <Critique of Cynical Reason>

오오사와 마사치大澤真幸 <戦後の思想空間>

아즈마 히로키東浩紀 <動物化するポストモダン―オタクから見た日本社会> 

이전 02화 허무주의, 반지성주의, 그리고 파시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