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바지, 니트 머리띠, 사슴 니트
세계여행을 출발한 우리 가방엔 ‘혹시 몰라’ 아이템이 넘쳤다. 우유니 투어 가면 엄청 춥대! 그래서 챙긴 핫팩, 매운 게 먹고 싶을 거야 하고 챙긴 불닭 소스, 기차로 이동할 때 가방 묶어야겠지? 하고 챙긴 자전거 자물쇠. 하지만 우유니를 가기도 전에 추워서 핫팩은 다 뜯어 썼고, 불닭소스는 한 번 먹고 가방 안에서 터져서 난리가 났었다. 자물쇠는 한 번도 안 쓰고, 버렸지.....
‘혹시몰라템’ 을 그렇게 챙긴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건 추위였다. 생각보다 4-5월의 남미는 굉장히 추웠고, 특히 난방 시스템이 우리나라와는 달라서 따듯함을 느끼려면 더 오래 걸렸다. 게다가 추위에 굉장히 약한 나는 숙소를 정할 때 난방을 제일 신경 쓰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이면 전기장판과 한 몸이 된 상태로 20년 넘게 산 항상 한국인은 추위에 떨었다. 잘 때도 보온내의와 레깅스를 2개씩 껴입고, 바람막이에 털모자까지 야무지게 입었지만, 택도 없었다. 살다 살다 추워서 깬 건 라파즈 숙소가 처음이었다.
결국 옷을 사야겠다 마음먹었다. 가방에 있는 여름옷들을 조금 버리고, 이동할 때 두꺼운 옷 위주로 입으면 문제없겠다는 계산이 나왔고, 그 길로 바로 옷을 사러 갔다. 조식을 먹고, 라파즈 마녀시장으로 달려갔다. 음... 이렇게 된 거 남미 바지로 불리는 무지개 바지를 장만해보기로 했다. 여행할 때 옷을 무난한 거 위주로 사지만, 이름이 무지개 바지인데 무난한 걸 찾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최대한 화려하면서도 예쁜 걸 찾기 위해 눈이 돌아갔다. 꼭 마음에 드는 건 사이즈가 없고, 사이즈가 있는 건 마음에 안 든다. 여행 일정 중 처음으로 옷을 사는 거라 그런지 신중을 기했다. 결국 라파즈에서는 마음에 드는 걸 못 사고, 그날 밤도 추위와 싸우며 잠들었다.
다음 도시인 우유니에서 초록색과 노란색 바지를 하나씩 장만했고, 그 이후로 이동할 때나 잠옷을 빨았을 때 항상 남미 바지와 함께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차피 남미 바지는 보온과는 무관한 옷이었다. 두께감도, 보온성도 없는데 왜 샀나 싶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바지가 섭섭해할 거다. 너무, 아주 자주, 잘 입고 다녔으니까.
바지를 하나 사기 시작하니까 다른 것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패턴이 똑같아서 별로라고 생각했던 니트들, 여행객들이 머리에 하고 있는 니트 머리띠. 결국 우유니 투어 중에 잠시 내려주는 시장에서 니트도, 머리띠도 장만했다. 상의, 하의, 액세서리까지 풀착장 한 배낭여행객이 되었다. 아, 사진을 첨부하면서 알았는데, 그 시장에서 저 모자도 샀다. 마치 다이어트 중 입이 터진다고 하듯 우리의 물욕도 터졌었나 보다.
한국까지 가져왔다. 그것들을. 사실 한국에서 이걸 입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입기엔 너무 화려하고, 화려하다. 그럼에도 옷장 한편에 잘 넣어놨다. 생존하기 위해 샀던 옷들이, 더불어 욕심내서 샀던 옷들이 지금은 옷장을 열 때마다 웃게 만들어주고 있다. 이런 기념품들이 늘어나 내 방을 가득 채울 수 있게 어서 여행을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