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시작할 수 있을까?
가까워지고싶지만 숨기고싶은 이야기
연애를 안 한지 꽤 오래 된 것 같다. 아니 못 한다고 해야 하나? 자신이 없다고 해야 할까? 당뇨 진단을 받은 뒤로 누군가와 연애를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내가 당뇨인이라는 걸 이야기하면 떠나갈 수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누군가와 새로 시작하는 것이 너무 두렵다.
누군가와 연애를 할 뻔 한 적이 있었다. 소개팅 어플로 동갑내기 친구를 알게 됐는데 서로 호감을 가지고 만나다가 어느 날 스킨십으로 이어지게 됐다. 그 때 불현듯 내가 당뇨가 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약을 먹는 건 아니고 인슐린이 거의 몸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에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내 얘기를 듣던 그 남자의 반응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너무 놀랐는지 더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더이상의 스킨십도 하지 않았다.
그 뒤로는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어도 내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게 되었다. 연애라는 걸 하려면 그 사람도 나도 서로의 진심을 나누고, 서로의 고민이나 살아온 이야기들을 조금씩 할 수 있어야하는데 과연 나는 얼만큼 나를 잘 보여줄 수 있을까? 두려워서 숨기고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그걸 언제쯤 이야기하나 전전긍긍하면서 연애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
새로운 사람들과 친해질 때 나는 내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편이다. 당뇨인이 되기 전엔 어땠는지 잘 모르겠지만 당뇨인이 되고 난 이후로는 더더욱 나를 숨기게 되고 그저 다른 사람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공감해 줄 뿐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냥 스쳐지나가는 이성이 많을 뿐 진지하게 진행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만약 누군가가 진심으로 나에게 고백을 한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혹은 내가 고백을 했을 때 누군가가 내 마음을 받아준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타이밍의 문제일까? 아니면 그 사람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해야하는 문제일까?
내가 당뇨가 있다는 사실을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내 지인은 나를 적절히 방어하면서 아슬아슬한 연애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나를 위해 그냥 그렇게 말하는 것일까?
상처받을까봐 두렵다면 연애를 할 수 없다. 내가 내린 결론은 그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든 지금 처해있는 상황이 어떻든 내가 내 자신을 당당히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데 나는 당당하지 못하다. 내가 당뇨인이라는 게 아직까지도 부끄럽고 숨기고만 싶은 치부다.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 할 수도 있는 문제지만 막상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난 작아질 것이다. 그 사람이 날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까. 그 사람이 내린 결정까지도 감당할 수 있을만큼 그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고백해야 한다. 그와 조금더 가까워지기 위해서 끝내 해야만 한다. 숨기고싶은 이야기를.
나에게 자신이 없을 때마다 연애니 뭐니 쓸데없는 생각은 집어치우고 난 내 스스로를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쪽을 택한다. 수 년째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있는 중이지만 내가 더 나아졌는지는 의문이다. 시간은 흘렀지만 여전히 나는 제자리. 이뤄놓은 게 없고 누군가가 내 능력을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보통 인간으로 별다른 성과 없이 특별한 무언가에 딱히 도전한 것도 없이 평범하게 하루하루 살아온 것 같다.
나처럼 상처가 많아서 연애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연애를 하면 상대방과 다툼이 생길거고 감정 싸움으로 시간을 낭비하기 싫다는 사람도 있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연애에 시간을 투자하느니 차라리 나에게 시간을 투자하는 게 낫다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한편으론 짠한 감정이 든다. 그들에게도 분명 말할 수 없는 상처들이 있을테니까. 말하고싶지만 숨기고싶은 것들이 많아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연애를 놓아버렸다고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주변 사람들에겐 연애를 놓아버렸다고 이야기하지만 아직도 마음 한구석엔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고 누군가와 좋은 것을 함께 나누고 함께 웃고 따스한 온기를 나누고픈 욕구가 존재한다. 사랑을 받아봤기 때문에 사랑을 주는 것 또한 얼마나 기쁜 일인지 충분히 알고 있다. 연애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걸 모르는 게 아니다. 알면서도 스스로 모르는척 나 자신을 애써 방어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받았을 때 얼마나 삶이 황폐해지는지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연애를 시작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