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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Aug 16. 2020

초상(肖像) 박 춘자 10

10화 / 수채화 5

수채화 5


여자는 알프스 산 아래 작은 마을에서 붓을 든다. 잘 빚은 송편 같다고 사랑 받아온 귀를 선명하게 그린다. 고집스러워 보이는 짙은 눈썹을 그린다. 단정한 코와 턱을 그린다. 여자는 색채의 마술을 모른다. 다만, 그 속에 푸른 핏줄도 붉은 핏줄도 들어 있는 따뜻한 빛깔로 얼굴을 칠한다. 그림 속에서 검은 빛이 도는 갈색 눈동자가 여자를 빤히 내다보고 있다. 여자는 외롭지 않은 오렌지 빛으로 그림 속 얼굴에 입술을 그려 넣는다. 그리고 여자는 생각한다. 이 여자의 목을 길게 그려야 하나, 짧게 그려야 하나를. 여자는 붓을 든 손을 공중에서 잠시 살짝 아래로 떨구었다 다시 약간 위로 올렸다 그런 자세를 두세 번 반복한다. 티스푼으로 인생을 저울질한다는 옛날 남자 친구의 시구를 생각하며 여자는 붓으로 그림속 여자의 목길이를 가늠한다.  여자는 목을 그린다. 더 이상 길게 늘이고 있을 필요가 없는, 슬프지 않은 목을 그린다. 적당히 통통하고 안정된 목을 그린다.


여자는 옛날 남자친구를 생각한다. 예쁜 귀를 왜 가리고 다니니, 자 이렇게 머리를 넘겨봐, 하면서 머리를 귀 뒤로 쓸어 넘겨 주던 옛날의 남자친구에게 이 그림을 주리라고 생각하며 붓을 놓는다. 여자는 머그 컵 가득히 넘실대는 인스턴트 카푸치노에 설탕을 한 숟가락 풍덩 집어넣는다. 카푸치노의 거품이 컵 테두리를 넘는다. 여자는 설탕을 휘휘 저어 컵을 들고 창가로 간다. 달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카푸치노를 마신다.  창밖에는 탐스러운 함박눈이 유희하듯 나풀거린다. 여자는 여기서 겨울을 날 수 없다는 걸 안다.


아내가 없는 동안 남자의 귀가 시간은 빨라졌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집앞에 서기도 전에 벌써 톡톡톡이 짖어댄다. 현관에 들어서면 톡톡톡은 정신없이 꼬리를 흔들며 펄쩍펄쩍 뛰며 기어오른다. 파출부에게 일 끝내고 돌아갈 때 전등 하나는 켜 놓고 가도록 일러두었다. 톡톡톡을 위해서였다.


로브가운으로 갈아입고 식당으로간 남자는 파출부가 차려놓고 간 저녁을 혼자 먹으며 거실쪽을 바라본다. 아내는 거기 없다. 남자는 생각한다. 아내의 그 작은 몸집이 어떻게 이 큰 집을 꽉차게 차지하고 있었던가를. 아내는 부엌에 있어도, 식당에 있어도, 침실에 있어도, 어디에 있으나 아내가 집 어느 한켠에 있어도 온 집안이 아내의 체온으로 훈훈했고, 아내의 향기로 상큼했다. 아내의 목소리로 생동감이 출렁거렸다. 그러나 오늘 아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빈 거실을 가로질러 베란다 창가로 갔다. 유리창엔 아내의 그림자가 아직도 남아 있다. 이 시간쯤 어두워진 창밖을 내다보며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을 아내의 숨소리가 차가운 유리창에 달라붙어 있다. 아내는 손에 잡히지 않는 그림자로서만 집안 곳곳에 남아 있다.


준호의 서울 생활은 고달펐다. 일주일에 세 번씩 가르치는 과외 아르바이트를 세 군데나 맡아서 하기엔 시간이 빠듯했다. 입학하자마자 시작한 과외는 준호에게 교정의 새로 돋는 나뭇잎 하나 제대로 바라볼 틈도 주지 않았다. 교정에 푸르게 떠오르는 웃음소리도 준호의 것은 아니었고, 애국의 열정에 끓어오르는 젊은 피도 준호의 몸에 도는 피는 아니었다. 민주를 위해 투신하는 교우들에게 준호는 제 밥벌이 밖에 모르는 비겁자였을 뿐이었다. 자유와 정의를 위해 학업을 뒤로 팽개친 교우들에게 준호는제 앞길만 챙기는 이기주의자일 뿐이었다. 대학생활 내내 준호의 가슴 속에는 수분이 증발해 버린 땀과 눈물의 소금덩이가 눈사람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돈벌고 공부하고, 그 외엔 한눈 한번 팔지 않은 준호였다.  제법 많이 받는 과외비는 받는 그 이튿날로 즉시 어머니에게 송금을 하는 준호였다. 송금을 하러 우체국에 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춘자의 모습이 떠오르곤 했다. 고향의 주소와 춘자는 늘 붙어다녔다. 그리움인가, 하는 생각이 아련히 피어오르곤 했다.   춘자는 지금 서울에 있다는 생각이 그를 유혹했다. 준호에게 휘감겨오는 모든 유혹은 고향의 동생들이 다 벗겨 주곤 했다. 춘자를 보고 싶다는 유혹도 동생들이 낚아챘다. 준호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에 고등학교 진학을 미뤄 둔 동생이 준호의 한눈 팔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가난한 집의 장남, 학교를 마치면 초등학교 교사 자리가 기다리는 2년제 교육대학을 포기하고 서울의 종합대학에 진학한 준호의 어깨는 무거웠다. 어머니는 한숨을 쉬었고, 아버지는 이해하시는 듯했다. 준호가 아무 변명도 하지 않아도 아버지는다 아실 것 같았다.   ‘선생으로는안 돼요. 어머니. 이 애들, 선생 월급으로는 다 못 가르쳐요. 제게 몇 년만 시간을 더 주세요. 선생으론 안 돼요.’  준호는 끝내 이 말을 꺼내지 않은 채 집안 생각하지 않고 혼자만 공부욕심 채우는 장남이 되어 서울에 있는 4년제 종합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거의 본업이다시피 과외 선생으로 뛰어다닌 결과 준호는 다음 학기의 장학금을 탈 수 없게 되었다. 막막했다. 꾸욱 참으며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던 몸살이 갑자기 준호를 습격했다. 따뜻한 곳에 기대고 싶었다. 어머니, 어머니의 품에 기대본 적이 언제였는지 더듬어본다. 그가 열 여섯이 되면서부터 준호는 어머니를 안아주는 아들이 되어 있었다. 그가 어머니에게 안긴 기억은 열 여섯살 이전에 머물러 있다.


몸살을 털고 후줄근한 모습으로 출판사를 운영하는 가람 문학회 선배를 찾아갔다. 여름방학 때 월부 책장사라도 해야 할 처지였기 때문이다. 거기서 준호는 운명처럼 춘자를 다시 만난 것이다. 신이 준비한 시나리오였다. 숙명이었다. 춘자를 거기서 보게 된 것은. 어느새 등허리 중간쯤까지 길어내린 머리채를 나풀거리며 춘자는 변함 없는 표정으로 준호에게 다가왔다. 송별회의 밤에도, 다시 만난 그 날도 춘자의 표정은 똑같았다.


“어 어~, 춘자가!”  

준호는 외마디 소리를 비명처럼질렀다.

“너 왜 여기 있다는 말 안했어?  이렇게 다 아는 곳에 있으면서도 아무 말도 안 하다니, 이럴 수가?”

대학에서 학과 여학생들과 가끔씩오가는 대화에 익숙해졌음인지 준호는 춘자에게 ‘너’라고 부르고 오랫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반말을 했다. 둘이는 더 이상 ‘거기’ ‘그쪽’ 그런 호칭은 쓰지 않았다.

“내가 왜 너에게 말해야 하는데? 애인이라도 되니? 일일이 다 말해야 하는 애인이라도 돼?”  

애인이라도 되느냐는 춘자의 말이 또다시 잔인하게 준호의 가슴을 후벼팠다. 바로 몸살에서 일어난 준호의 다리는 휘청거렸다.

“그런데 꼴이 왜 그래? 어디아픈 거야?”  

“으응, 몸살을 앓았어. 그런데 김 선배님은 안 계신가 봐.”  

“벌써 퇴근하셨어. 원고 청탁하러 가시는 길에 아예 퇴근하신다고.”  


C출판사 근처의 분식집에 춘자와 자연스럽게 마주 앉아 늘 그래왔던 사이처럼 냄비 우동을 하나씩 시켜 먹었다.

“더 먹을래?  나에겐 좀 많은데.”  

“아니, 나도 이거면 됐어.”  

그러나 준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춘자는 국수가락을 건져올려 준호의 냄비로 옮기고 있었다.

“난 다 못 먹는단 말야. 남겨서 버리면 아깝잖아.”  

나오는 길엔 춘자가 재빨리 음식값을 치렀다.

“넌 학생이고 난 돈 버는 사람이니까 내가 낸다. 알았지?”

자리에서부터 미리 자신이 지불하겠다고 말을 하는 춘자였다. 여름방학을 앞둔 계절이었는데도 몸살 뒤끝의 준호는 오슬오슬  한기를 느꼈다. 시간에 마주서서, 노동에 마주서서, 돈에 마주서서, 거세게 버티고 지탱해 오던 몸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몸보다 먼저 가슴 속에 채워뒀던 빗장이 스르르 풀리고 있었다. 가둬두었던 춘자를 향한 그리움과 사랑은 주체할 수 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걸 감당할 수 없는 몸은 춘자에게 기대며 비척거렸다.


“이거봐, 왜 이래?  정말 너무 아픈거야?  어어 준호씨, 준호씨!”

춘자가 엉겁결에 준호를 부축하며 끌어안았다. 거리의 사람들은 무심히 지나쳐 갔다. 춘자에게 오기까지 참으로 멀고도 긴 길을 돌아왔다.


혼수상태에서 자기가 중얼거린 말이 무엇인지 준호는 다 기억하지 못한다. 춘자가 혼수상태의 자기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준호는 생각해 낼 수가 없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후부터는 준호는 더 이상 마음의 문에 빗장 같은 건 채워 두지 않았고, 춘자는 내가 네 애인이라도 되느냐는 말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과외선생으로 여러 집을 뛰어다니는 대신 준호는 C출판사에서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렇게 여러 해를 춘자와 함께 보냈다. 춘자의 기억 속에는, 그 시절이 준호에게 있어서 참 아름다운 시인의 계절이었다고 새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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