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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Aug 20. 2020

북아트 <풀다>

북아트 작품과 관련 에세이

북아트의 출발


책이 왜 꼭 네모져야하나.

책에는 왜 활자가 있어야 하나? 그림만 있으면 안 되나?

책은 그 형식이 파괴되어도, 활자이든 그림이든 어떤 것을 담아도 상관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 이것이 꼭 있어야 <책>이라고 명명할 수 있지 않을까? 콘텐츠!

콘텐츠라고해서 뭐가 꼭 쓰여 있고 그려져 있고 꽉 차있어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 비록 여백으로 남겨두었어도 그 작품 전체가 주는 <메시지>를 독자가 알아차리고 느끼고 공감하면 그것은 얼마든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메시지 전달은 책이 지닌 생명이라고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




수제책을 왜 만드는가?


디지털시대,

교과서도 e-book으로 대체될 수 있고, 종이 노트에 필기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 왜 손으로 책을 만드는가. 쓸데없는 노력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은 아닌가.

수작업은 아날로그 시대로의 회귀나 퇴보가 아니라, 디지털 시대에 오히려 그 가치가 더욱 돋보이는 희소성도 있고, 모두가 다 기계화되고 상품이 넘쳐나는 시대에 내 손으로 직접 만들었다는 것은 수공업에 의존하던 시대보다 오히려 더 귀한 의미를 지닌다.

컴퓨터와 그 주변 기기의 발달로 책을 출판사나 인쇄소에 맡기지 않아도 스스로 프린트할 수 있는 시대에, 디지털 작업으로 만든 자료 파일을 출력하여 아날로그 방식으로 엮어 한 권의 책을 직접 만들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의뢰하지 않고 필요한 책을 본인의 마음에 맞는 디자인으로 스스로 만들  있다는 것이 바로 북아트나  바인딩의 매력이다.




나의 북아트 작업 <풀다>


책을 만든다는 것은 가슴 안에 고여있던 감정들, 머리 속에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들, 지적 욕구에 긁어 모은 탐구들을 모아서 묶는 일이다. 흩어져있는 것들을 모아서 한데 엮는 작업이다. 그런 과정의 북아트 작업 결과물들을 묶으면서 나는 묶고, 엮고, 짓는 과정을 그 언어와는 전혀 다른 <풀다>로 해석했다. 미술, 탐구, 관계, 문학, 상처, 바느질,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오색물감을 풀다 - 미술>은 취미로 그린 그림이나 공예품들을 모았다. 글보다더 강렬한 것은 이미지다. 모든 이야기들은 이미지를 추구한다. 읽는 독자가 눈앞에 펼쳐지는 그림을 감상하는 것.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표현했고, 늘 나를 사로잡고 있는 나무들 꽃들을 한 뼘 화폭에 담아보았다.  


<궁금증을 풀다 - 탐구>는 평소 관심있던 문제들에 대한 탐구생활 노트이다. 사건, 사물, 인물, 학문 등등 늘 궁금하던 부분들을 정리하였다. 그런 과정이 가벼운 지적(知的) 허영심이어도 좋고, 깊이있는 연구여도 좋다. 결과를 검증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는 없고, 미지의 세계에 눈을 뜨는 기쁨은 무척 크다.


 <빗장을 풀다 – 관계>는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운명적으로 맺어진 관계, 내가 선택해서 맺어진 관계, 그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숨쉬며 살고있다. 수직선의 어느 지점에 내가 있든, 수평으로 나란히 있든 나는 홀로 있지 않다. 때로는 버거운 무게를 내려놓고 싶기도 하고, 벗어나면 곧바로 그리워져서 다시 옆으로 찰싹 달라붙게 되는 그런 사랑을 확인한다.


 <글뭉치를 풀다 - 문학>에서는 제대로 풀어놓을 재주 없어서 그저 단단히 똬리를 틀고있던 잡념들을 어설프게나마 풀어놓은 나의 글들을 모았다.  소설은 부끄러운 습작품일 뿐이다. 기도문은 싸늘해진 나의 열정을 다시 달구기 위한 자구책이다. 관심있는 문학가들의 작품을 나 나름대로 북아트로 해석하여 꾸민 작품들을 곁들인다.


<응어리를 풀다 – 상처>는 공동체의 아픔과 끙끙 앓는 자연의 아픔을 생각했다. 상처는흔적으로 남는다.

그것을 바라보고 느낄 때의 시점에 따라 조금 변하기도 하고 아주 확 달라지기도 한다. 상처를 덧내기도 하고 아물게도 해주는 것은 시간도 공간도 아닌 아주 좁디 좁은 내 마음이다.


<실타래를 풀다 – 바느질>은 실로 꿰매서 엮는 Book Binding 작품들을 모았다. 동서양의 지역에 따라 그 방법은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다양하다.

아름다운 자수에 몰입하는 시간은 분명 치유의 시간인데, 도안에 따라 색실로 수를 놓는 과정은 기도하는 시간과 다르지 않다.


 <기억의 회포를 풀다 – 여행>, 이 작품들을 만들면서 정말 행복했다. 표현된 것들은 아주 작은 일부분이지만 나의 추억이 그 작은 작품 속에 넘치도록 들어있다. 시속 180Km 정도로 질주하던 고속도로, 시속 30Km 제한 속도 덕분에 즐겼던 창밖 풍경들, 뚱뚱하면 못 지나갈 것 같은 골목까지 비집고 다녔던 모든 기억들이 서로 손 내밀며 덤벼든다.


내가 책을 만드는 과정은 흩어져있는 것들을 물리적으로 엮고 묶는 과정이지만, 심리적으로는 뭉쳐있는 것들을 푸는 과정이다. 이렇게 나의 북아트작품집 <풀다>가 틈틈이 풀어낸 수줍은 글들과 함께 한 권의 책으로 태어난다.

(다음에는 <풀다>의 각 섹션별로 북아트 작품과 관련 글들을 연재합니다.)


2012년 북아트 개인전 <행복해지는 약>  좋은 일이 있을 때 캡슐속에 메모를 저장해 둔다. 아플 때면 캡슐 속의 약을 꺼내 먹는다.


2018년 북아트 개인전 <풀다> 포스터.  글뭉치에서 글이 풀어져 나오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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