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와 큰 며느리

관계와 인연에 대한 탐구 21

by morgen

손녀와 큰 며느리


코로나 덕분인지 때문인지 나의 생활이 많이 바뀌었다. 겨울방학 시작 전까지는 오후 2시 30분에 유치원 차에서 내리는 손녀를 맞이했는데, 이제는 아들이 출근할때 손녀를 나에게 데려오고, 퇴근할 때 데려간다. 하루 종일초등4학년과 유치원생 손녀가 우리집에서 함께 지낸다.

가벼운 아침을 먹인 후 온라인 출석과 교육방송 시청을 하면, 12시 반에는 점심을, 3시 반부터 4시 사이에는 간식을 먹고 밖에 나가 햇볕과 바람을 쐬고, 6시에는 저녁을 먹이면 아들이 퇴근길에 데려간다. 큰 손녀는 온라인 출석을 혼자서 잘하기 때문에 나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작은손녀의 EBS프로그램 <우리집 유치원>을 보도록 해주면 된다.


아이들과 하루종일 함께 하는 시간, 코로나19가 아니면 그 귀한 시간의 즐거움을 모를 뻔했다. 블록놀이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운동장에서 괜히 이리뛰고 저리뛰는제목도 없는 놀이도 하고, 식물도 키우면서 하루 해를 보낸다. 놀이터에는 좋은 놀이 기구들이 많지만 손으로 만져야 되니까 빈 운동장에서 공을 쫓아다니며 놀도록 한다. 그 동안도 당연히 예뻐하던 손녀였다. 외손 친손 다해서 손녀 다섯, 손자 하나인 나는 그 여섯 손주들이 모두 똑같이 사랑스럽고 예쁘기만 했다. 그런데 이번에 함께 오랜 시간을 지내고 있는 손녀에게 마음이 바짝 더 달라붙는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부모가 배냇짓부터 엎어지고 뒤집고 앉고 일어서고 첫 발을 떼고 ‘엄마’라는 발음이 또렷해지는 그 순간 순간들의 감격을 혼자 참지 못하고 자꾸만 누군가에게 말하고 또 말하고 그렇게 지내는 것처럼, 나는 손녀와 있었던 일을 남편에게 아들에게 자꾸만 말하고 또 말한다.

그 아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들이 너무너무 신기하고 예뻐서 혼자 담아두기엔 가슴에 벅차기 때문이다.


우리집 베란다에는 제법 많은 식물들이 있다.

이번 봄에 함께 화원에 갔는데 큰 손녀는 다육이를, 작은 손녀는꽃이 핀 설란을 골라왔다. 이제 4학년이 된 손녀는 스스로 공부를 할 수 있고, 혼자있는 시간도 많이 확보해줄 겸 주로 작은 손녀를 데리고 베란다에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자기 꽃에게 물주는 컵은 핑크색 공주컵이고, 물주면서 도란도란 좋은 이야기를 꽃에게 들려준다. 화원에서 오던 날 큰 손녀가 가르쳐줬다. 식물들에게 좋은 말을 많이 해주면 잘크고 예쁜 꽃이 핀다고. 언니의 말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작은 손녀는 오월 초 주말에 외가에 다녀오면서 나에게 자기 꽃을 잘 지켜달라고 부탁을 했다. 예쁘던 꽃은 시들어서 떨어졌는데, 나에게 왜 꽃을 안 지켰느냐고 울고불고 난리를 낸다. 어쩌나… 베란다에 있는 모든 꽃 화분들을 하나씩 예를 들어가며 꽃은 피면 시들고, 새 꽃대가 나와서 또 피고 그런다고 이해를 시키느라 진땀을 뺐다. 그동안 그림책에서, 유치원에서 배운 것이 있으니 곧 이해는 했지만 울음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사랑하는 것을 잃은 눈물이다. 눈물은 슬픔과 아픔에서 저절로 돋아났지만 그것을 멈추는 것은 인위적인 마음 다스림이 필요하다. 그런 경험들이 하나씩 둘씩 쌓여가면 나중에 아이가 걸핏하면 쏟아내던 눈물이 줄어들겠지. 그러나 제발 눈물을 잊지는 않기를!


언젠가 손녀들의 어록집을 만들어 보아야겠다. “엄마” “아빠”에서 시작하여 “시계 “ “꽃” 이런 단어들을 거치며 “그러게요” “그나저나” “~뿐이거든” 요런 말까지 자유롭게 사용하는 과정을 기록해봐야겠다.


큰 손녀는 아빠(나의 큰아들) 모습을 닮고, 작은 손녀는 엄마(나의 큰며느리)를 그대로 축소 복사한 모습이다. 요즘 작은 손녀에게 흠뻑 빠진 나는 저의 엄마를 쏙 빼닮은 아이를 볼 때마다 며느리를 생각하게 된다.

작은 손녀와 똑같이 생긴 며느리. 나는 손녀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며느리의 어린 시절을 상기한다. 며느리도 얘처럼 이렇게 예뻤었겠지, 우리 며느리가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사돈 내외는 그 말이 얼마나 신기했을까. 우리 며느리가 어른들이 예상치도 못하던 영리함을 보였을 때 사돈 내외는 ‘와, 얘는 천재네 천재야!’하면서 얼마나 감탄했었을까. 키가 쑥쑥 크고 마음씨도 착하고 몸노동에도 몸사리지 않고 공부도 잘하는 우리 며느리의 성장기를 지켜준 사돈 내외는 그 아이가 얼마나 자랑스러웠었을까.

예쁘디 예쁜 작은 손녀를 통해서 나는 볼 수도 없었고 알 수도 없었던 며느리의 어린 시절을 재상영 영화 보듯이 들여다본다. 새삼 큰 며느리가 사돈댁의 귀한 딸이라는 생각이 자주 드는 요즈음이다. 지금 내가 손녀를 예뻐하는 이 마음 그대로, 어쩜 그 이상으로 사돈 내외는 내 며느리를 예뻐하고 귀히 여겼겠지. 요즘은 내가 손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손녀가 내게 참 큰 인생 수업을 시키고 있는 중이다.


이제 유치원이 개학을 하면 1년넘게 기다리던 종일반에 편입되어서 손녀는 내게 오지 않는다. 며느리가 5시에 퇴근하면서 유치원 차에서 내리는 손녀를 데려간단다. 손녀는 엄마가 데리러 나오니 신날 것이고, 나는 이제 아이 돌봄에서 벗어나니 편해질 것이다. 큰 손녀 개학일은 더 늦어서 일주일 동안은 큰 손녀만 우리집에 오게 된다. 그동안 크다고 소홀히 했던 사랑을 독차지할 기회에 큰 사랑을 듬뿍 담아줘야겠다.

아직 유치원 개학은 며칠 남았는데 벌써부터 왜이리 허전하지? 아무런 역할도 없는 노인네로 늙어갈까봐 겁난다. 내가 바라던 자유시간이 충분히 보장되는데 그 기쁨은 별것도 아닌게 되어버렸다. 고 깜찍한 손녀딸이 내 일상을 흔들어놓고 말았다. 그냥 시쳇말로 자위한다.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고.

그러나 퇴근 후 아이들 저녁을 먹여야 하는 며느리는 더 힘들어질 것 같아서 걱정이다.


큰 며느리는 정말 크다. 키도 크지만 마음은 키보다 훨씬 더 크다. 아들이 결혼하겠다는 말을 꺼냈을 때 물었다. 그 애의 어디가 그렇게 좋으냐고. 원래 말 수가 적은 아들은 “착하다”는 단답으로 결혼 의지를 확고히 밝혔다.

아들의 표현은 100% 맞는 말이다. 착하다.


남편은 며느리가 우리 식구가 되기 전에 며느리와 함께 수해복구 봉사를 갔었다. 태풍 “매미” 피해 복구 현장이었다. 남편은 며느리가 어찌나 열심히 땀 흘리며 일하는지 감탄했다고 자주 이야기한다. 처녀아이가 겁도 없이 거친 노동에 팔 걷고 덤벼드는 모습이 아주 씩씩해 보였다고 이야기한다. 며느리는 성실하고 씩씩하고 착하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는데 진심을 다한다.


우리 딸이 아들보다 3개월 늦게 결혼했는데 아이는 딸이 먼저 출산했다. 외손녀가 친손녀보다 1년7개월먼저 태어났다. 생활 형편은 아들네가 조금 더 나은 편이다. 며느리는 자기 딸 옷을 살 때면 꼭 우리 딸네 아이 옷도 함께 사서 주곤 한다. 비싼 코트 같은 것은 딸네 아이 칫수에 맞는 것 하나를 산다. 그리곤 먼저 입은 다음에 자기 딸에게 물려달라고 한다. 시누이를 이렇게 배려하는 올케는 드물 것이다. 우리 딸이 많이 미안해하니까 며느리는 직설적인 설명을 하지 않고 슬쩍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ㅇㅇ이 것을 샀는데 입혀보니까 너무크네요. 지금 맞는 ㅇㅇ이 먼저 입히고 내년에 가져올게요.”

그런 변명을 하기 시작한 후로 며느리는 왜 그렇게 항상 제 딸 몸에 큰 옷만 사는지, 어미가 그렇게 눈대중이 없어서 항상 큰 옷을 사는지…. “사고보니 크다”는 며느리의 변명에 가끔 가슴이 뭉클해질 때가 많다.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어도 한 두 나라가 아닌 것 같다. 이런 며느리가 한 식구가 된 것을 보면 내가 아주 많은 나라를 구했을 것이다.


돌아가신 나의 친정어머니는 성격이 까탈스러운 분이셨다. 우리 며느리도 그런 시외할머니가 불편할 때가 많았었다. 저녁 식사 후 차를 마시고 과일을 먹은 후에 일어서려고 설거지를 늦추면 그냥 보고 넘어가지를 못하셨다. 게으름을 트집 잡으셨고, 집안이 어지럽혀진 것도 꼭 못마땅한 표를 내셨었다. 그런 시외할머니에게 불평 한 마디도 없이 잘 지낸 며느리에게 고맙다.

어머니가 90세를 넘기고 기력이 쇠약해지시면서 까탈스러운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일도 줄어들었다. 침상에 누워계시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그럴 때 우리 천사 며느리는 진심으로 할머니 걱정을 하곤 했다. 할머니가 큰 소리도 못 치시고 저렇게 누워계신 것을 보니 너무 속상하다, 차라리 일일이 간섭하고 큰 소리 치실때가 더 좋았다고 한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이런 며느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 어머니가 우리 며느리를 불편하게 했던 점, 며느리에게 진심으로 미안하고, 잘 참아준 며느리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지금 내가 손녀딸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겼듯이 며느리도 친정에서 그렇게 예쁜 아이였을 것이다. 귀한 아이였을 것이다. 우리집 식구가 된 지금도 며느리 너는 그대로 귀한 사람이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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