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와 인연에 대한 탐구 20
“어머니 정신 놓으셨어요?”
그 아이를 만난 이후로 세월은 흘러 벌써 20년이나 되었다. 아들의 밴드 공연장에서 처음으로 얼굴을 보았는데, 그 때는 바로 곁자리에 서 있지도 않았었다. 동양 여자아이이고 눈짐작으로그 아이가 그 아이라고 확신했을 뿐이었다. 정식 인사도 없었고, 눈인사 정도로 가벼운 만남이었다. 그 아이에게 나의 호칭은 미세스 윤이었을 뿐.
다시 그 아이를 만난 건 우리 집에서였다. 학기를 다 끝내서 기숙사를 나와 있을 곳은 없는데 졸업식에 참석은 하고싶고, 그런데 집에 다녀오기로는 집이 너무 멀어서 며칠간 우리집에 머물렀다. 함께 한 식탁에서 밥을 먹었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짧은 기간이나마 한 식구가 되었던 것이다.
로레타는 물을 마실 때는 꼭 내게 먼저 “물 드릴까요” 묻고 그 후에 자기 컵에 물을 따랐고, 식사가 끝나도 다른 식구들이 일어나기 전에는 먼저 일어나지 않았다. 일어난 후에는 꼭 식탁 의자를 식탁에 바짝 붙여놓는 정리를 잊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이야기 거리나 되나? 누구나 다들 그러는 거 아니야? 그런데 나는 이런 하찮은 것도 이야기거리가 될만한 경험을 여러 번 했었다.
정말 예쁘고, 잘 생기고, 공부도 잘하고, 참 멋진 한국 유학생들이 함께 밥을 먹는 식탁에서 연장자보다 먼저 수저를 들고, 자기 컵에만 물을 따르며 동석자들에게 혹시 물이 필요한지 묻지도 않고, 심한 경우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의자도 정리하지 않은 채 자리를 떠나는 아이들이 여럿 있었다. 대학생 나이에 말이다.
유학생들에게는 아예 식탁 예절 따위는 하찮은 것이고 공부가 더 중요한 학생들이 있었을 것이다. 로레타는 여러 한국 유학생들과는 달리 예의바른 식탁 매너로 내 마음에 흡족함을 주었다. ‘의미’는 붙잡고 들여다보는사람의 것이지 스쳐버리는 사람에게는 참 아무것도 아닌 것이 바로 ‘의미’ 아닌가. 로레타와 함께 지낸 며칠은 내게 참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졸업식에 입고 갈 정장 수트와 셔츠를 다릴 줄 몰라서 내게 다려달라고 부탁하던 로레타가 참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 무렵 나는 런던 집에서 살림을 하고 있었고, 남편은 유럽 출장중에 독일에 머무르고 있었다. 아들은 로레타와 함께 독일에서 아버지를 만나기로 했다. 베트남 식당에서 아버지에게 로레타를 처음 소개하였는데 어떤 면이 그리 마음에 들었는지 따질 이유는 없지만 어쨌든 로레타는 아들의 연인으로서 아버지 마음에 흡족했던 것 같다.
학비와 생활비 모두 빠듯하던 생활이었는데 남편은 아들의 주머니에 돈을 넣어주고 또 더 넣어주었단다. 평소에 하지 않던 말, 아니 그런 생각도 안하고 사는 사람같았는데 이런 말까지 하면서 말이다. “남자는 말이야 주머니가 두둑해야 기가 죽지 않는 법이다.” 이러면서 두둑한 용돈을 주었다고 한다. 그 용돈은 아들이 벌어들인 게 아니고 로레타가 번 것이지…
오랜 연애끝에 로레타는 드디어 우리 가족이 되었다.
결혼이 필요하지 않다며 작은 오피스텔에서 함께 살기 시작한 아들과 로레타. 그렇게 지낸 후 결국은 남들 한 번밖에 안 하는 결혼식을 두 번씩이나 했다. 로레타의 본국인 홍콩에서 한 번, 우리나라에서 또 한 번. 그런데 서류상 필요해서 우선 구청에서 혼인신고 먼저 한 날짜까지 더하면 그들의 결혼 기념일은 언제인지 잘 모르겠다.
로레타는 우리 아들 하나 믿고 부모 곁은 떠나왔다. 나는 큰 며느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선언했다. 나는 앞으로 너보다 작은 며느리에게 더 신경을 쓰고 더 잘 보살펴 줄거다. 너는 너의 부모님도 동생도 친구도 있지만 로레타는 우리 밖에는 아무도 없잖아. 그러니 내가 더 잘 보살펴줘야지. 그렇게 알고 서운해하지 말라고 큰 며느리에게 단언했다. 다행히 큰 아이는 너그럽게도 시어머니의 말을 이해해주었다. 고맙다! 큰 며느리는 본인보다 두 살 위인 작은 동서에게 존대말로 예의를 갖추고, 작은 며느리 또한 본인 보다 두 살 아래인 큰 동서에게 꼭 형님이라부르며 존대말을 쓰니 우선 말부터 질서가 잡혀서 달리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다.
나의 서툰 영어와 작은 며느리의 서툰 한국말이 그래도 잘 통해서 큰 불편없이 지냈지만 어차피 한국에서 살기로 한 로레타는 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외국인들이 배우는 한국어학당의 한국어 교재를 처음 보게 되었는데 우리가 일상 어려움없이 술술 말하던 그 말들을 어렵게 공부해야하는 며느리가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이 언어에 대한 에피소드를 일일이 열거하면 어리둥절하고 이해 못할 일도많고, 웃음을 참을 수 없는 일도 많다.
타이틀을 “어머니 정신 놓으셨어요?”로 써 놓았으니 우선 이 이야기를 풀어야겠다.
나는 가끔 두통에 시달릴 때가 있다. 어떤 때는 진통제 한 알로 그냥 넘어가고, 어떤땐 하루 세 번 두통약을 먹을 때도 있다. 이 삼 일 지속될 때도 있다. 그때도 나는 한 이틀을 두통에 시달리다가 다 낫고 개운해졌을 때인데 로레타를 만났다. 로레타가 내게 건네는 인사의 첫 마디가 “어머님 정신 놓으셨어요?”다. 나는 자연스럽게 대꾸했다. “그래 나 정신 놓았다.”라고.
읽는 사람들이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나눈 이 대화를 이해할 수 있을까?
해석이 필요한 것 같다. ‘정신’은 몸과 정신중에 몸을 말해야 하는데 실수로 몸을 정신이라고 한 것이다. 아마도두통이라는 말 때문에 몸과 정신이 헷갈린 것 아닐까. 그래서 정신을 몸으로 바꿔 말하면 “어머니 몸 놓으셨어요”가 된다.
‘놓으셨어요’는 발음상의 문제다. ‘나으셨어요’를 그렇게 발음한 것이다. 읽는 이들은 아직도 어려운가? 완벽한 해석을 하면 “어머니 몸 나으셨어요?”가 된다. 이렇게 우리 고부간의 대화는 살벌(?)하지만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은 다른 고부들보다 한층 더 두텁다.
“어머니 정신 놓으셨어요?” “그래 나 정신 놓았다.”
이 정신 놓은 시에미는 며느리에게 한없이 고맙고 또 고맙다를 연발하며 지내고 있다. 30여년 지나도록 제대로 키워내지 못한 내 아들을 며느리는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좀더 완전에 가깝도록 바꿔놨다.
내 자식들은 나에게 독하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 작은 며느리는 나보다 더 독한 여자다. 결혼하면 남자는 가장으로서 생활을 책임져야 한다는 며느리의 확고한 생각은 곁에서 바라보는 이 에미의 마음을 자주아프게 했다.아들은 공익근무 퇴근 후, 학원 강사로 일하면서 생활비를 벌었다. 일산에서 남산까지 출근하고, 퇴근 후 강남의학원에 가서 영어를 가르치고 일산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견뎌냈다. 나는 아들 며느리의 생활비를 다 대주어도 좋다는 마음이었지만, 며느리는 자기네 생활비는 자기들이 벌어야 한다고 고집했다. 공익근무중인 아들은 돈벌이에 시간 제한이 있으니 며느리가 결혼 전에 모아둔 돈을 보태며 살림을 꾸렸을 것이다. 우리 부부의 역할은 기회 있을 때마다 맛있는 것이나 사주는 것이 전부였다.
어찌 생각해보면 내 아들은 내가 키운 것이 아니라 내 며느리가 키운 것 같다. 나는 어미로서 미성년의 아들을 키웠고, 며느리는 그 아들을 물려받아(?) 성년으로 키워놨다. 그러니 내 아들을 키워준 며느리에게 고마워할 수 밖에!
아들은 아직도 더 커야한다. 그때까지 며느리는 딸과 남편을 키우느라고 많은 고생을 할 것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