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먼저 죽으면 좋겠다.

관계와 인연에 대한 탐구 19

by morgen

내가 먼저 죽으면 좋겠다.


그는 참 낭만적인 사람이다.

딸이 내가 있는 외국에 나와 있을 때 그는 괜히 빈 집에 전화를 걸었다. 그때는 집전화 공중전화 삐삐를 사용하던 시절이었는데, 전화기에 음성 녹음을 해두면 부재중에 그 녹음을 들을 수 있던 시절이다. 딸이 외국에 있는 것 뻔히 알면서도 자동응답기에 녹음된 딸의 음성을 들으려고 괜한 전화를 건 것이었다.

엄청 고집이 세고, 무슨 일이 생기든 다 “괜찮아”로 답을 하고, 많은 난관과 역경을 뚫고 온 강한 남자다. 그런데 그깟 딸 목소리 한 번 들으려고 빈집에 전화를 하는 그런 실없는 짓을 하다니.


그런 그와 나는 이제 우리의 인생을 슬슬 정리하면서 단정히 마무리할 준비기에 접어들었다. 그는 강한 남자이지만 나는 자칭타칭 독한 여자다. 독한 여자답게 생각하고 그에게 선언까지 했다. 당신이 먼저 죽으라고.


그는 혼자서 끼니도 잘 챙기고, 빨래와 청소도 혼자 잘하는 남자다. 내가 없다고 제때 밥도 못 먹고 차림새가 꾀죄죄하거나 집안을 구질거리게 해놓고 살 사람은 아니다. 요즘은 노인냄새 나면 손녀딸들이 싫어할까봐 씻고 향기좋은 스킨로션을 열심히 바르는 그, 내가 없다고 홀아비 냄새 풍길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왜 나는 우리가 헤어지는 순서는 그를 먼저 보내고 내가 뒤를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마도 여성으로서 갖는 모성본능이 그를 향해 뻗쳐서 그런 것일까? 내가 먼저 간 후에 젊은 나이도 아닌 늙은 그가 혼자 남아서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면 너무너무 안쓰러워 눈물이 날 지경이다. 자식들이(며느리들도) 신경을 쓰더라도 아무래도 아버지보다는 여자인 내가 더 편할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를 보낸 후에 따라갈 거라고 생각했다.


동네 카페에 나가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그러던 그의 일상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에 발이 묶였다. 이른바 삼식씨가 된것이다. 정확한 삼식씨. 아침 8시30분, 점심 12시 30분, 오후 4시 간식, 저녁 7시30분, 정확한 스케쥴에 따라 식사를 한다. 학교 출석 안 하는 날에 우리 집에 오는 손녀는 저녁을 6시에 먹이지만, 자정을 넘기고 잠자리에 드는 그와 나는 7시 반에 저녁을 먹는다. 전업주부인 나의 주된 업무는 밥 시간을 지키는 일이 되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분명히 그동안 지나온 시간 보다는 짧다. 그런 우리에게 코로나 19는 둘이 함께 하는 시간을 착실히 확보해 주었다. 사실 이 나이 먹도록 주부로 살아온 내가 그깟 밥 세 끼 하는 것이 뭐그리 어렵겠는가. 아무 일도 아니지. 그래도 그는 가끔 “나가서 맛있는 것 사먹을까” “배달음식 시켜먹을까” 이런 립 서비스를 자주 한다. 안다. 빈말이 아니고 진심이라는 것을.

식사를 위해서 그도 많이 애쓴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우아한 레스토랑을 연출한다. 거실에 있는 스피커를 식당쪽을 향해 돌려놓으면서 먼 곳의 스피커 볼륨은 크게, 가까운 스피커 소리는 작게 하고, 선풍기 바람도 식탁을 향해 미풍으로 조정하는 일을 잊지 않는다. 내가 부엌 일 끝내고 거실 소파에 앉으면 다시 스피커를 거실 쪽으로 돌려놓는다.

그가 나보다 더 젊은 것도 아니고, 내가 돈벌러 다니느라고 바쁘게 헐떡이며 사는 것도 아닌데 그의 가사분담은 여러가지다.

젖은 쓰레기, 일반 쓰레기,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일과 마트에서 오는 식자재 배달이나 택배물건은 그가 마스크 쓰고 나가서 받는다. 아, 그가 하는 중요한 일, 커피를내리고, 아침 저녁 약을 챙겨준다.

무거운 것도 들어준다. 세탁이 끝난 젖은 빨래 바구니를 부엌쪽 세탁장에서 거실쪽 앞베란다로 옮겨준다. 더러운 일은 도맡아 한다. 가끔씩 가시처럼 생긴 긴 플라스틱 꼬챙이로 세면대와 욕조 샤워실 하수구를 청소해준다. 삼식이의 의무 때문은 아닐거라고, 나를 진정 사랑해서 일 거라고 믿는다(착각?).


함께 음악을 듣고, 그가 집필중인 소설의 자료와 글쓰기 내용을 서로 이야기하고, 함께 넷플릭스 영화를 본다. 미드 <지정생존자>를 보다가 중간에 끊지 못해서 아침 6시, 이미 동이 튼 그 시간까지 보기도 했다. 이런! 늙은이답지 않은 짓이라니! 같은 공간에 오래 함께 있다보니 더욱 친밀감이 드는 건 사실이다.

이렇게 찰싹 달라붙어 지내는 요즈음, 그를 먼저 보낸 후 내가 가면 좋겠다는 소망이 점점 사그라지고 있다. 그가 없으면 살기 어려울 것 같다. 많이 생각나고 외로울 것 같다.

손녀의 귀찮은 요구사항을 그에게 슬쩍 떠넘기는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커피는 누가 만들어주나. 쓰레기는 누가 버리지. 나는 늘 그가 챙겨주던 약도 제대로 안 먹을 것이다. 매일은 아니라도 가끔은 청소기를 돌려야할텐데…

이렇게 일꾼으로서의 그를 아쉬워하는 이야기만 쓰고 있지만 사실은 내가 겪게 될 외로움이 두렵다. 난 이제 엄마도 없는데 그마저 떠나면 어쩌란 말인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와의 이별이 지레 겁난다. 그래서 “당신이 먼저 죽어”라고 하던 마음을 고쳐먹고 말을 바꾼다.


“당신 먼저 죽지마. 내가먼저 죽어야겠다. 알았지!” 여기서 “알았지!”에 붙은 느낌표는 매우 중요하다. 물음표가 아니다. 명령형 느낌표다.

그와 나의 나이 70. 아직도 사랑하고 있는가? 그렇다.

그와 나를 에워싼 공기를 함께 흡기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다 내 것 같은 느낌으로 하루 하루를 산다. 그러니 절대로 당신 먼저 가면 안 된다. 당신을 에워싼 공기가 없어지면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을 테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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