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와 인연에 대한 탐구 17
아내는 남편에게 속해있는가
남편의 출장길에 따라가서 좋은 대접을 받았다.
그이를 따라다니면 맛있는 음식에 정중한 예의를 갖춘 대접을 받는다. 선물을 받을 때도 있다. 그이의 거래처 사람들은 나를 만나보지도 않았으면서도 내게 선물을 보내온다.
그이 회사 직원들은 나를 절대로 ‘할머니’나 ‘아줌마’ 그런 호칭으로 부르지 않는다. ‘사모님’이라고 부른다. 사모님이라 부르는 호칭에 어떤 존경심이 담겨있는 것이 아님을 안다. 그저 편리한 호칭일 뿐이다. 좋은 차례에는 나를 먼저 세워주고, 어려운 차례에는 뒤에 세워주며 나를 대우해준다.
이런 대접이나 대우는 순전히 내가 그이의 아내이기 때문에 받는 대우이다. 그이와 관계된 사람들로부터 선물을 받는 것도 내가 그이의 아내이기 때문에 받는 것이다. 내가 그이의 아내가 아니라면 상대방은 내게 선물을 줄 이유도 없고, 특별한 친절을 베풀 이유도 없다.
좋은 대접을 받거나 값진 선물을 받을 때 가끔 이런 생각들을 해본다.
내 이름표를 붙인 나, 그이의 아내가 아닌 나, 자연인 나로서도 이렇게 좋은 대접을 받고 값진 선물을 받을 수 있을까? 좋은 대접과 값진 선물을 받을 기회는 많이 있겠지만, 주는 이들은 나와 직접 관계있는 사람들이지 남편과 관계있는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내가 그이의 아내이기 때문에 그이와 관계있는 사람들이 내게 좋은 대접을 해준다면 나는 그들에게서 대접받은 만큼 남편에게 좋은 대접을 해줘야한다. 남편과 관계있는 사람들에게서 값진 선물을 받는다면 남편에게 그 선물값에 상응하는 보답을 해야한다. <나>이기 때문에 받은 대접과 선물이 아니라 <그이의 아내>이기 때문에 받은 것이니까.
남편으로 인하여 좋은 대접을 받고 다니고, 가끔 좋은 선물도 받으면서 남편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저 남편에게 속해있기만 한 사람인가?
그렇지 않다. 남편이 아니더라도 나는 나 자신으로서 존재한다. 그리고 내 몫의 값을 치른다. 받은 값만 치른다면 나는 남편에게 속한 사람으로 그칠 것이다.
받은 것에 상응하는 값만 치르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내가 먼저 베푸는 능동적인 자세를 취함으로써 나는 남편에 속해있지 않은 나로서 존재한다.
내게 대접을 잘 해주었거나 그렇지 않았거나를 가리지 않고 남편과 관계있는 사람들을 위해 수시로 그 사람의 평안과 행복을 위한 기도의 화살을 날린다. 그 이름과 가족 사항까지 다 알고있는 사람들, 성만 알고 이름은 모르는 사람들, 신상에 대한 아무 내용도 모르지만 남편과 관계가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잊지 않고 기도의 화살을 날린다. 화살촉에 꿀물을 발라서 날린 화살이 내게 친절과 선물로 돌아올 때 나는 남편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이 독립적으로 존재하게 된다고 믿는다. 받는 것의 값을 남편이 아닌 내가 치른 거니까.
나는 남편에게 속한 존재가 아니다. 내 몫의 값을 스스로 지불하는 나 자신으로 존재한다. 존재의 값을 치르는 것, 이것이 바로 권리의 출발점이 된다. 나는 아내의 권리, 여자의 권리에 국한되지 않은 한 인간의 권리를 원한다. <나>라는 존재의 권리를 원하는 만큼 그 값을 치를 것이다. 값을 치름에 게으르고 이기적이라면 내 존재와 권리도 그 값만큼 하찮을 것이고, 적극적이고 헌신적이라면 그 만큼 귀한 존재로 권리도 클 것이다.
남편 앞에 아내로서 서지않고 남편 앞에 한 인간으로 서고, 자식 앞에 어미로서 서지않고 자식 앞에 한 인간으로 서고, 상사 앞에 부하로서 서지않고 상사 앞에 한 인간으로 서고, 시집에서 며느리로 서지않고 시집에서 한 인간으로 서고......
나는 항상 모든 관계와 관계들이 관계 이전의 독립적인 존재를 인정하고 귀히 여기는 세상을 꿈꾼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