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원초적 관계, 부모

관계와 인연에 대한 탐구 15

by morgen

가장원초적인 관계, 부모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관계는 바로 부모님이다. 자식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떤 면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있기도 한데 부모를 선택할 수는 없다. 우리 부모님이 나를 선택할 수 있기는 해도 내가 부모님을 선택할 수는 없다.


나에게 ‘아버지’라는 관계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나의 언어 속에 ‘아버지’라는 말은 필요가 없었지만, 나에게도 ‘아버지’라는 사람이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출생하기 전에 실제로 있었던 인물이다. 애초부터 하늘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우리처럼 여기서 살았었는데 그냥 다 버리고 훌쩍 하늘로 떠난, 실존했던 사람이다.

아버지는 실존 인물이었다.

나와 같은 시대에 살지 않았더라도 그 존재를 믿고 인정하는 역사 속의 한 인물처럼 나의 아버지도 나의 출생 이전에 실존했던 사람이다. 이제 십년 후쯤, 아니면 언제일지... 어쨌든 몇 년 후에든 우리는 먼 하늘에서 첫 만남을 할 것이다. 유행가 제목은 "천상재회"인데 아버지와 나는 "천상초회"를 하게 될 것이다.


나는 어머니와 성격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자식은 부모의 DNA를 물려받고 부모의 교육을 통해서 성장하니 자식이 부모를 닮는 것은 당연하지만, 부모와 자식이 자란 환경이 다르고 처해있는 환경이 다를 때는 서로 성격도 달라질 수 있고, 서로 이해가 잘 안 될 수도 있다.

나의 어머니가 어려서 자라난 환경과 내가 자라난 환경은 완전히 다르고, 가정을 가지면서 처하게 된 환경도 어머니와 나는 또 완전히 다르다. 타고난 성격까지도 나는 엄마를 닮지 않고 친정 고모들을 많이 닮았다. 아마도 아버지를 닮은 것 같다.


어쨌든 우리 아버지는 어머니를 열렬히 사랑해서 그 옛날에 연애 결혼을 하셨다. 정확한 연도는 확인하기 어렵지만(다 돌아가셔서) 두 분은 1943년쯤 결혼하셨다. 그 두 분의 관계도 예사롭지 않은 관계인데, 양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에 성공한 우리 부모님. 나의 고향은 충청도 청양군 산골짜기, 그러니까 아버지가 그곳 사람이고, 어머니는 인천 출신이다. 그 시절에 어떻게 그 산골 촌구석 남자와 도시의 여자가 만날 수 있었을까. (청양출신들을 비하하려는 뜻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서울에 살던 누님(나의 큰고모)댁을 방문했고, 거기서 작은 아버지 집에 놀러온 우리 어머니를 보았다. 말하자면 사돈 처녀를 본 것이다. 요즘말로 ‘한 눈에 뿅 갔다’고 해야 되나, 어찌어찌하여 둘이는 결혼을 하게 된다.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는데 서로 사돈간에 혼사는 안된다며 양가의 반대가 심했었단다.


어머니 말씀을 들으면 결혼 안해주면 아버지가 죽는다고 하셔서 진짜 죽으면 안되니까 결혼을 한 거라고 하신다. (이거 가능한 이야기인가?)

그래서 촌수가 얽히게 되는데, 아버지는 당신 큰누나의 시집 조카딸과, 어머니는 당신 작은 어머니의 친동생과 결혼을 했으니, 그 후에 태어난 우리들이 촌수를 따져가며 부르는 호칭이 매우 어렵게 되고 말았다. 어떤 땐 어머니쪽의 호칭으로, 어떤 땐 아버지 쪽의 호칭으로 부른다. 직접 연관이 있는 나는 잘 구분하지만 내 남편은 언제나 헷갈려한다.


어머니는 경성청사의 전화교환원으로 근무하셨고, 이미 서울 처녀에게 마음을 빼앗긴 아버지는 그야말로 덕수궁 돌담길에서 어머니의 퇴근을 기다리는 순정남이셨던 것이다. 많이 사랑하셨었나보다. 1940년대 초반의 덕수궁 돌담길 연애! 우리 부모님이 그런 연애를 하셨단다.

아, 두 분은 하늘나라에서 재회를 하셨을까? 덕수궁 돌담길같은 어느 곳에서 두 분은 서로 만나셨을까...

유성온천 신혼여행 중에 찍은 부모님 사진. 오빠들은 아버지 모습을 닮고 나는 어머니 모습을 닮았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고모님들을 통해서 들은 단편적인 내용들 뿐이다. 고모님 다섯 분은 돌아가셨고, 이제 옛 이야기를 자세히 해주기 어려운 막내고모님 한 분 남으셨다. 그 분도 연세가 95세. 그나마 아버지랑 어려서 함께 살았던 큰 오빠마저 몇 년 전에 돌아가셔서 내가 이제는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어렵게 되었다.


아버지와 친구였던 넷째 고모부가 단편적인 이야기를 띄엄띄엄 해주셨었다. 말씀하실 때 마다 우리 아버지의 죽음을 참 애석해 하셨다. 증산(정산)에 중학교를 세울 계획을 하셨었다는 이야기도 하셨다.

지금 정산에는 중학교도 있고 고등학교도 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일궈놓은 방앗간 바로 앞에 중학교가 있다.


어머니는 시누이가 다섯(원래 여섯인데 한 분은 어려서 운명을 달리했다.)인 산골로 시집오셔서 어떻게 지내셨을까? 시누이 시집살이 이야기는 평생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나의 다섯 고모님들은 올케(나의 어머니)를 돌아가신 오빠(나의 아버지) 모시듯 온갖 사랑과 정성을 다하여 극진히 대접했다. 일찍 잃은 동기간에 대한 애끓는 애정을 나의 어머니와 우리 삼남매에게 쏟아부으셨다.


어머니는 가끔 방앗간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밥해먹기가 힘들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어머니의 친정에서는 갓 잡은 민어를 먹었는데 시집에서는 짜디짠 고등어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도 가끔 하셨다. 어머니는 열 아홉살에 결혼하셨다. 그때의 나이는 지금 나이와 그 숫자의 감각이 다르지만 도시에서 자란 열 아홉살 여자가 첩첩 산중 산골로 시집와서 겪는 불편은 많으셨을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8년의 시간들, 그 시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그래도 아버지는 어머니가 결혼 안해주면 죽겠다고 엄포를 놓으셨던 분이니 어머니를 많이 사랑해주셨을 것이다. 빨래할 때도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셨던 듯, 어머니가 빨래를 하는데 양말은 뒤집어서 한 번 더 헹구라고 하셨단다. 이거 잔소리 아닌가.


아버지 한 분 안 계신 이유로 우리 삼남매(오빠 둘과 나)는 고모님들에게 마치 특권처럼 사랑을 듬뿍 받았고, 어머니도 무한한 애정과 보살핌을 받으셨다. 이제 그 시대 분들은 다들 하늘나라로 떠나셨고, 막내 고모님 한 분이 그 순서를 기다리고 계시다.


아,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





아버지의 책.


곰팡이가 났고, 글자를 다 읽지도 못하지만 내겐 아주 소중한 아버지의 유품으로 내 정신적 지주가 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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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은, 읽을 수 없는 아버지의 책 <장자>가 읽을 수 있는 현대의 <장자>보다 더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점이다. 내가 읽은 책에서 장자사상을 잘 이해하지도 못했는데, 읽지도 못하는 아버지의 책은 내게 어렴풋이나마 조금 더 뚜렷이 장자사상의 이해를 도와준다. 참 이상한 현상이다.

이 놀라운 현상은 순전히 수도 없이 많이 책장을 넘기며 묻혔을 아버지의 손 때와, 분명히 큰 소리로 낭독하며 읽으셨을 그 들리지 않는 목소리와, 내게 전해주고싶은 어떤 사상의 흐름이 곰팡이 낀 그 낡은 책 속에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책들을 살펴보면서 가장 강렬한 존재감은 존재가 아니라 부재라는 것을 실감한다. 그리고 교감은 경계가 없이 넘나든다는 것도 확신한다.

아버지가 쓰신 표지 글자를 보존하고싶어서 표지째 그대로 둔 위에 새표지를 덧씌웠다.

글자가 지워지지 않을 만큼은 곰팡이 부분을 닦아내었고, 산화방지액을 스프레이하였다.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일일이 읽는 토를 달아가며 열심히 읽으신 우리 아버지. 내가 무엇을 건성건성 대충대충하는 것이 부끄럽다.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한결같이 열심히 공부하신 흔적이 내 엉성한 삶에 큰 귀감이 된다.


아버지의 책상자 속에는 참 많은 것들이 들어있다.

가례에 관한 자상한 지침도, 개인편지도, 불경과 성경의 필사노트도, 그리고 나도 알아서 반갑게 맞이한 천로역정과 도덕경 장자... 게다가 열국지 옥루몽 이런 책들까지 참 많은 것들이 들어있다.

옛날에도 생일카드가 있었다.

아버지의 상자 속에서 나온 글인데 내용을 보니 생일 카드이다. 빛바랜 종이 한장인데 원형을 그대로 손질하여 표지를 만들어 붙였다.

신축년, 1901년. 나의 할아버지가 할아버지의 할머니, 그러니까 나의 고조 할머니 생신을 축하드리고자 써 올린 글. 글의 끝에 不肖孫在南이라 씌여있는데 在자 南자 는 나의 할아버지 함자이시다.


상자 가득한 옛 책들. 아버지가 읽으시던 책들.말끔히 새옷 입히고 정리하고싶지만 낡고, 곰팡이 피고, 다 헤어진 종이 한장도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감싸안고싶은 마음으로 그저 표지만 새로 덮었다.

세월의 두께를 걷어낼 용기도 없고 축적된 시간들을 버린 후에 몰려들 그리움도 감당할 자신이 없다.

아버지의 책을 만지는 시간은 성찰의 시간이다.

곰팡이를 닦아내고, 손바닥으로 쓰다듬고, 가신 분들을 그리워하는 그 시간이 내겐 참 소중한 시간이다.

語錄 單. 우리의 단어장 같은 책이다.우리가 영어단어 노트를 만드는 것처럼 낱말들을 일일이 적어두셨다.

한 자, 두 자, 세 자 ... 이렇게 구분해서 기록된 낱말들에서 익숙한 말도, 낯선 말도 발견된다. 인명 사전인지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도 적혀있다. 정몽주, 유숙.

제의에 대한 소상한 내용이 적혀있다. 할아버지께서 아버지를 가르치시기 위해 기록하신 것이다.

一精家禮. 一精은 할아버지의 호. 이 노트와 함께 상례집을 남기시며 참고하라고 적어두셨다.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자상한 가르침을 주신 분이셨는데.... 나는 내 자식들에게 어떻게 했던가?

훈계보다는 화를 냈고, 칭찬보다는내가 좋아했다. 중심이 자식인 것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스마트폰 일정에 기록하는 세상이지만, 우리아버지는 기억해야할 모든 날들을 할아버지가 이렇게 직접 써서 알려주시던 시대에 사셨다.


이런 것들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기록으로 남겨주신 내용, 그 중의 어느 한 구절, 한 구절의 내용적인 가르침에 나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하셨고, 아버지는 그 가르침에 귀기울였다는 것.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그 분위기가 내 삶에 큰 작용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어머니는 남편을 잃은 후에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모시며 임종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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