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인연들

관계와 인연에 대한 탐구 14

by morgen

작은 인연들


<89 >

나는 인터넷의 한 여행 동호회 회원이었다. 싸이트 안에서의 그 동호회 번호는 896.
문득 우리 아지트를 열면 뜨는 번호 896이 내 눈에 크게 들어왔다. <89>라는 숫자가 이미 내게 오랜 시간 동안 익숙해졌기 때문이리라.
서울 올림픽이 있던 88년 12월부터 우리는 방이동 89번지의 아파트에 살다가 1999년도에 이사를 했다. 물론 그 기간 동안 나는 독일로 옮겨서 살았지만, 우리집은 그대로 방이동 89번지에 있었다.
독일로 갈 때는 독일 친구가 우리가 살 집을 미리 얻어두었었는데, 처음 그 집에 도착한 나는 집 앞에서 깜짝 놀랐다. 그 집 주소가 서울집과 똑같은 89번지였기 때문이다.

신기한 우연이었다. 나라도 동네도 다 바뀌었지만 집 주소는 그대로 89번지에서 살게 되었던 것이다.

핸드폰의 번호에도 어김없이 89라는 숫자가 끼어들었다. xxxx 8979189. 이렇게 앞뒤로 가운데 숫자를 에워싸고 있다.

이 숫자와 맺은 또 하나의 인연은, 우리 친정아버님 산소가 89번이다. 내 나이만큼의 세월 이전에 고인이 되신 아버님께서 소홀리 공원묘지 89번에 잠들어 계시고 나는 89번지라는 주소의 집에 살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서울집의 89번지도, 독일 집의 89번지도 모두 떠났다. 움직일 수 없는 아버지만 그대로 89번지를 지키고 계시다가 몇 해 전 음력 윤달 좋은 날에 89번 묘지를 떠나셨다.


그런데 89라는 숫자와의 인연이 아주 끊어진 것은 아니다. 런던집의 전화번호에 그 숫자는 다시 끼어든 것이다. 런던집 전화번호의 마지막 두 자리가 89이다. xxxx-xxx-3689.


이런 것까지도 숫자 89와의 인연은 계속됐었다. 교회에서 새 자동차를 구입했을 때 차량번호를 보고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89는 물론이고 독일 있을 때 전화번호와 같은 8979까지 그대로 옮겨놓은 번호이기 때문에.


< 명희 >

명희는 중학교 고등학교 6년을 함께 다닌 오랜 친구이다.

명희는 충청도에 있는 우성초등학교를, 나는 서울의 청파 초등학교를 다녔다.

중학교에서 처음 만나 친한 사이가 되었다.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충청도에서 서울로 시집온 우리 외숙모가 명희의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이었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일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나는 외가에서 외숙모와 함께 살았었으니 우리는 외숙모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더가깝게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서로 만남을 이어갔고, 결혼 후에도 계속 우리들의 우정은 이어졌다. 나는 명희보다 훨씬 먼저 결혼하였다. 우연히도 남편이 입사한 회사는 명희와 같은 건물에 있었다. 남편이 직장을 그만 두고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명희가 다니는 회사와 입찰의 경쟁상대가 되기도 했다. 명희는 직장 생활에 바쁘고, 나는 결혼 후 살림살이에 바빠 자주 못 만나고 지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파트 단지 안에서 우연히 명희를 만났다.

놀랍게도 명희네 집이 나랑 같은 아파트였다. 우리는 7동 명희네는 11동. 명희는 결혼 한 후 친정집을 인수받아 그 집에서 지금도 살고있다.


독일로 이주한 내가 독일 생활을 끝내고 영국으로 이사를 갔다. 한국에 다니러 왔을 때 명희를 만났는데 명희는 중학생인 딸을 런던으로 유학 보낸다고 했다. 홈 스테이 할 집도 다 정해놓은 상태였다. 놀랍게도 명희 딸이 살게될 집은 우리와 한 동네였다. 우리는 정말 놀랐다. 그 넓은 런던에서 바로 이웃이라니.

걸어서 30분 안에 있는거리. 명희는 내가 가까이 있는 것에 마음이 좀 놓인다고 좋아했고, 우리가 전생에 무슨 사이였을까, 이런 이야기를 하며 즐겁게 담소했다.

중학생인 명희 딸을 만나러 그 아이가 사는 집 근처에 간 나는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는 명희 딸을 보고 너무 놀랐다. 중학생 때의 명희가 거기 서있는 것이다.

모녀가 똑같이 닮았기 때문에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간 듯 명희 딸과 명희를 혼동할 정도였다.

지금도 명희와 나는 사회생활의 여러 가지 일로도 얽혀있다.


< 사돈 >

큰며느리는 나랑 같은 교회 교우의 딸이다. 물론 며느리도 교우이다. 내가 외국에서 살다 왔기 때문에 공백이 길긴 했지만 우리 사돈끼리는 수 십 년 지기인 셈이다. 며느리는 어려서부터 보아온 아이라 정말 자식과 다름을 못 느낄 정도로 친밀하다.

안 사돈과 나는 이름이 같다. 교회에서도 다른 교우들이 사돈간에 서로 이름이 같다고 화제로 삼곤 한다. 이것도 인연일까.


사위는 전혀 알지 못하던 사람을 결혼 무렵에 알게 되었다. 30 넘도록 연애 한 번을 못하던 딸이 갑자기 사위를 만나게 되었고, 다섯번도 만나기 전에 이미 결혼을 결심한 것이다. 사위는 우리와 같은 고향 사람이다.

딸과 사위는 고향과 상관없이 만났지만, 만나고 보니 고향이 같은 사람이라 더욱 친밀감을 느꼈나보다.

결혼식은 사위의 고향에서 했고, 결혼식에 우리 며늘네 안사돈도 참석을 했다.

그런데 경기도 수원 남창리 사람인 안사돈이 그 결혼식에서 학교 동창인 선배를 만났다. 그 두 사람은 뜻 밖의 만남을 아주 반가워했다. 경기도에서 충청도로 시집간 안사돈의 선배와 경기도에서 서울로 시집간 안사돈이 결혼 후 처음으로 만난 모양이다.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안사돈의 그 선배는 우리 딸의 시댁 작은 어머니였다.


딸이 결혼한 후로 처음 맞이한 내 생일에 우리 가족은 함께 모여 저녁식사를 했다.

나는 호적에도 양력으로 올렸고 생일도 양력으로 한다. 그 자리에서 생일 이야기를 하던 중 사위의 어머님이 나의 음력생일과 똑 같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댁은 음력으로 생일을 하신단다.

며느리의 어머니와는 이름이 같고, 사위의 어머니와는 생일이 같다.


이건 나와 직접 관계된 일은 아니지만 지인들과 얽힌 인연이 또 있다.

며느리에게는 연년생 여동생이 있다. 그 여동생 부부간의 인연이 참 재미있다.

우리가 아들처럼 여기는 막내아들의 후배가 있는데 그 아이가 공군장교로 군복무할 때 자기 동료를 한 사람 우리 며느리 동생에게 소개를 하여 둘이 사귀게 되었다. 이런 일이야 흔히 있는 일.

그런데, 며느리 동생과 사귀는그 남자친구가 우리교회 청년의 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개는 우리 막내의 후배가 멀리 진주에서 했는데, 알고보니 서울의 한 교회 교우의 형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결혼을 했고 아기도 낳았다.

결혼전 상견례를 한 후에 안사돈이 웃으면서 하는 말이 자기 예비사돈 이름도 자기와 똑같다는 것이다. 그 소리를 들은 우리들은 안사돈과 함께 얼마나 많이 웃었던지. 우리 안사돈은 큰딸 작은 딸 시어머님이 모두 자신과 이름이 같다.


의미는 의미를 부여할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냥 지나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어떤 작은 꼬투리 하나라도 관심 속에서 부각되고 그 인식이 인연이라는 관계로 느껴지는 것 같다. 간과할 수 있는 사소한 일이 생각의 그물에 걸리는 순간, 그것은 관계를 얽어 매는 인연이 되는 것이다.


<친정 조카딸과 사위>

친정조카(큰 오빠의 딸)는 런던에 살고있다. 몇 년에 한 번 씩 한국에 오면 거의 우리 집에서 지낸다. 혼자 사는 엄마 곁 보다는 손주들이 수시로 모이는 우리집이 런던에서 온 아이들에게 더 즐겁기 때문이다. 올케와 조카 그리고 조카손주들은 아예 우리집으로 휴가를 온다. 저녁식사 후에는 차나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 꽃을 피운다.

어느 날, 외국 생활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 아버지의 이종사촌인 박씨아저씨 이야기가 나왔다.

박씨 아저씨는 부잣집 외아들로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자랐고 체육학과를 졸업했다. 수 십년 전 미국 로스엔젤레스로 이주하셨다. 그곳에서 어떤 일을 하셨나 했더니 일은 않고 늘 골프나 치러 다니셨단다. LA의 쓰리 박(3박씨)으로 꼽혔었다고 한다. 공주출신인 박씨아저씨는 공주출신 박찬호와 박세리와 더불어 LA 쓰리 박으로 불리셨던 것이다.

이야기라는 것이 시작과는 달리 엉뚱한 방향으로 뛰는데 박찬호 선수에 머물렀다. 나의 친정 조카들 두 명이 야구를 했기 때문에 박찬호는 우리의 우상과도 같았다. 런던에서 온 조카딸과는 유치원 동창생이다.

사위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니, 박찬호와 유치원 동창이라고? 나도 ㅇㅇ유치원 다녔는데!"

갑자기 흥분된 목소리로 떠들던 이야기가 이어지자 조카딸과 사위가 같은 유치원 동기동창생인 것이 밝혀졌다. 나이가 같은 것은 알았었지만 유치원 동창이라니. 딸과 사위가 결혼한지 10년이나 돼서야 그걸 알게 되었다. 나중에 집으로 돌아간 사위가 사진을 보내왔다. 사위가 간직하고 있는유치원 앨범에는 나의 조카딸과 오빠와 올케가 함께 찍은 가족 사진이 올라있었다. 세상 참 잘 살아야겠다.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


<천생연분>

남의 이야기인데 이런 이야기는 해도 본인들에게 큰 지장이 없을 것 같다.

아들이 학교다닐 때 이야기이다. 수학여행을 갔다. 이태리 피렌체. 뮌헨 중악역에 모여 기차를 타고 가는 여행이었다.

음악선생님은 영어권 출신인데 중앙역에서 “플로렌스”행 기차를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고 한다. 기차 출발시간이 거의 다 돼도 플로렌스행 기차는 보이지 않았다. 불안해진 그가 주변 사람에게 영어로 질문을 했더니 “아, 피렌체!” 하면서 바로 앞에 있는 기차를 가리켰다. 그는 헐레벌떡 뛰어 기차에 올랐고, 무사히 피렌체 여행을 했다.

그때 학생들을 맡아서 피렌체 문화를 안내하던 안내자 여성과 눈이 맞아 두 사람은 결혼을 했다. 그 기차를 타지 못했다면 그 결혼을 성립되지 못했을 것이다.


또 한 사람, 같은 교회 청년의 결혼 이야기.

결혼 적령기가 되어 몇 번의 소개팅을 했었다. 소개팅한다고 다 마음에 들고 결혼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적령기를 좀 지난 어느 날, 출장간 파리에서 인연을 만났단다.

파리 거리를 걷다가 동양인 여자와 스치게 되었는데, 그 한국 여자가 바로 소개팅 때 만났다가 별 성과없이 헤어졌던 여성이었다. “아휴, 우리그냥 결혼하라는 하늘의 계시인가봐!” 그 후 그들은 실제 결혼을 했고 잘 살고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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