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관계와 인연에 대한 탐구 13

by morgen

친구


오래된 친구를 만났다.

대부분 모임이 그렇듯이 잡다한 이야기들이 오갔고 그 이야기들에는 예전의 그리운 추억도 있었고, 다가올 우리들의 장래 상황에 대한 염려도 있었다.

다섯 명이 모인 자리였기 때문에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많이 오갔다.

남편 흉은 봐도 자식 흉은 덮고 숨긴다는 부모의 마음을 넘어선 우리들은 자식 때문에 속상한 이야기들도 서슴찮고 했다. 그렇게 막역한 사이인 우리들. 이미 수 십년 지기들!

풋풋했던 시절에 지란지교를 읊기도 했던 소중한 옛 친구들.

우리가 만났던 옛 시절에 뵈었던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들. 그리고 우리 친구들의자녀들을 보면 예전의 친구가 등장한 듯한 놀라움. 그런 친구들과 참으로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친구관계가 오래 유지되는데는 무슨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일까? 이유가 없이 그냥 세월의 흐름이 이어준다는 느낌인데......

굳이 좋은 관계가 탈없이 오래 지속되는 이유를 찾아본다면, 지금도 잘 유지되고있는 학창시절 동창들과의 관계를 살펴보자.


금전관계가 없는 것이좋다.

무얼 잘 잊지 못하고 오래도록 끙끙 앓는 여자들의 특성(전체 여자들 다는 아니지만)상 친구와 얽힌 금전관계가 명쾌하지 않으면 우정에도 잔 금이 가고 틈이 벌어진다. 생계에 관계되는 어려움이라면 내 능력껏, 또는 능력을 넘어서까지 당연히 친구를 돕는 것인데, 돕는 과정에서 받는 사람에게 수치감을 주어선 안된다.

준 사람은 곧바로 준 것을 잊어버리고, 그러나 받은 사람은 잊지말고 마음에 깊이 간직하면 아름다운 관계는 유지될 것이다.

빌려주고 갚고 그러는 과정에서 약속이 빗나가기 시작하면 우정에도 금이 가기 마련이다.

친구의 어려운 상황을 그냥 못본 척 할 수 없는 것이니, 거래는 하지 말고, 학비나 생계비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적은(?) 금액을 친구 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슬쩍 도와주고 곧 잊자! 잊자!


대화의 소재도 친구 관계에 중요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친한 친구들과는 종교와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피한다. 정치와 종교에 대해서는 가장 극렬한 논쟁이 있게되고, 그 여파로 금이 가기 시작한 우정은 회복하기 어렵게 쩍 벌어지고, 끝내는 서로 다른 방향에서있는 친구와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상황이다. 나는 크리스쳔이고, 진보성향이다. 그런데 친구들 사이에서 나의 위치는 사이비 크리스쳔이고, 좌도 우도 아닌 회색분자로 보일 것이다.

크리스쳔의 당연한 사명감은 그 좋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진보든 보수든 자신의 정치성향에 중요하고 확고하면 타인을 설득하기도 해야한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니 사이비 크리스쳔, 회색분자일 뿐이다.

가능하면 모임에서 종교와 정치 대화는 피해간다. 평화로운 모임을 위해서. 이런 싱거운 모임이라니! 그러나 그 외의 대화도 무한히 많고 즐겁다.


기독교인은 '오직 하나님' 유일신 사상,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있지만, 나는 내가 믿는 신이 내 존재의 기둥인 것과 마찬가지로 내 친구가 믿는 신도 그에게 소중함을 인정한다. 타인의 종교도 존중한다. 대상이 다를 뿐이지 서로에게 소중한 것은 소중하기 때문에. 이런 나의 종교적 사상이 나를 '날라리 교인'으로 몰아부치는 현실이 슬프기만 하다.


정치 이야기가 시작되면 왜들 그리 흥분하는지? 성향이 서로 다른 친구와의 대화, 정말 그런 상황은 피하고 싶다. 미칠 것 같다. 답답하다. 벌떡 일어나 반대 의견인 친구를 향해 소리치며 알려주고 설득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나는 또 비겁자가 되기로 한다. 내가 화나듯 친구도 그만큼, 또는 그 이상 화가 날테고, 가능하면 나를 설득하고싶어 할테니까.

친구와 내가 서로 다른 구호의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서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우정과는 무관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비겁이라면 나는 비겁자를 자처한다.


우리는, 친구들과 나는, 역사의 기구한 상황(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분단, 군부독재)을 안은 같은 땅에 태어났고 그 영향을 받으며 자라는 동안 자아형성이 되었기 때문에 그 방향은 좀 다를 수도 있다. 현실 정치는 우리가 처한 각자의 입장에서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종교는 정말 섣불리 말할 수 없는, 결코 가볍지 않은 대화이다. 종교 지도자를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길이 달라지기도 한다.

어제도 내가 친구들에게 한 말은 나의 종교사상, 종교는 배움(learn)이나 이해(understand)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존재(being)이고 삶 속에 동행하는 느낌(feeling)이라는 말만 했다.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는 피하고 종교 그 자체만을 이야기하고 지나갔다.

현실 정치의 비판에 대해선 너무 극명한 차이가 있어서 정말 어렵게 어렵게 대화를 피했다.


내게 친구는 누구인가?

어떤 범위까지 친구에 속하는 것일까?

친구를 정의하는 일이 먼저이고, 그 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그 다음이라는 생각이다. 그런 생각에서 이미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와 친구들의 관계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능하면 상처가 될 금전관계를 피하고, 갈라지기 가장 쉬운 종교와 정치적 대화를 피하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지독한 아이러니.

친구끼리 서로 사회 현상이나 정치적 상황에 대해 장시간 토론도 하고, 내가 믿는 절대 신에게로 오지 않는 친구를 인도하기도 하고 그런 사이가 진정 친구들간에 오가는 정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도를 걷지않고 곁길만 가고 있는 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런 나를 나도 알수가 없다. 나는 철학자가 아니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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