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딸아, 내 딸아.

관계와 인연에 대한 탐구 22

by morgen

딸아, 딸아, 내 딸아


난 그 애가 어떤 때 가장 행복한지, 행복을 느끼는지 모른다. 어떤 때 가장 불행한지, 불행을 느끼는지 모른다. 이 한 마디로 나는 참 나쁜 엄마인 것 같다. 아니, 나쁜 엄마다. 딸의 행복과 불행을 알 수 없다는 엄마라니!

아이들의 재롱에 취해서 세상 힘든 줄 모르고 사는 걸까, 쪼들리는 살림에 짓눌려서 애들이 예쁜 줄도 모르고 하루하루를 넘기는 걸까, 모르겠다. 지켜보는 나로서는 가끔 뿌듯하고 대견하고, 가끔은 가슴이 아릿하니 쓰리고 애처롭고 안타깝다.


부모에게 첫 아이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 동안의 내가 우주 속에 한 점으로 자리하고 있었다면, 내가 우주 속에 있었다면, 첫 아이를 낳고부터는 우주를 내 품에 품은 사람이 되는 것 같다.

딸은 나의 첫 아이다. 태중에 있을 때는 나를 가장 괴롭혔으며 출생 이후엔 내게 새로운 우주를 안겨주었다. 내가 나의 어머니와 많이 다르듯이 내 딸도 나와는 참 많이 다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내가 어머니와 달라서 충돌하는 과정을 겪는 것과는 달리 딸과는 충돌없이 지낸다. 어머니의 다른 점을 인정하는데는 인색하면서 딸의 다른 점은 기꺼이 다 품어준다. 부모 자식의 관계는 참으로 신비로운 인간 관계이다.


딸은 2월28일 생으로 학년에서 제일 어렸고(그때는 입학연령이 3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머리 좋다는 수치는 제일 높았다. 유년기엔 우리에게 혹시 천재아닐까 하는 망상에 빠지게 했으며, 그 머리로 왜 그 등수(학교 석차)밖에 안 나오지 하는 실망감도 안겨줬다.

뉴 키즈 온 더 블록에 미쳐서 영문잡지를 수집하다가 영어를 깨우쳤고, 수험생일 때도 하루에 영화 한 편을 보던 날라리 수험생, 농구와 배구 녹화 비데오 테잎이 열 두 상자(?)요, 신문 스크랩이 30Kg짜리 여행가방 한 가득이다.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고싶어 했지만 참 고루한 우리부부는 신문방송학과를 고집했고, 걱정도 안했던 대학입시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실패를 했다.

딸은 떨어진 것이 잘됐다 신난다하는 쾌재를 부르며 우리가 있는 독일로 와버렸다. 대학에 가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독일에서 신나게 정말 신나게 놀며 나와 함께 독일어 학원에 다녔다.

유럽 곳곳을 여행하며, 실감나는 언어로 말하자면 싸돌아다니며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추석 때가 되자 갑자기서울에 가야겠다고 선언을 했다. 이유는 대학 시험 한 번 봐보려고.

입시준비 책 한 권도 안 가져온 아이가, 대학가면 뭐하냐던 아이가 무슨 변덕이 생겨서 그랬는지 어쨌든 딸은 귀국했고, 2개월 논술학원을 다닌 후 11월 수능을 봤다. 그해 수능은 예년에 비해 어렵다고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는데 딸은 전년과 똑 같은 점수를 받았다.

한 번 합격하면 다른 곳에 다시 원서 낼 수 없는 제도에서 합격할 만한 대학에 빨리 원서를 던져놓고 다시 독일로 돌아왔다. 크리스마스 때 동생들과 맥주도 함께 마시고 연말에 불꽃놀이도 해야해서.

합격했다. 일일 찻집(술집이었던가)하는 재미로 대학을 다니고 그 와중에 신기하게도 놀라운 평점으로 우등상장을 받으며 대학을 졸업했다.

저는 인생을 신나게 즐기며 살았는지 모르나 부모에겐 롤러코스터 타는 맛을 보여준 딸이다.


딸은 대학생이 되면 머리를 염색하고 귀걸이를 하고싶어 했다. 그때 측근들과 이야기중에 우리 딸은 귀를 뚫게 해달라고 조른다는 이야기를 하면 모두들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대학생이 아직도 그런 것을 부모 허락받느냐고. 어쨌든 딸은 귀를 뚫고 금 귀걸이를 했다.

머리카락도 옅은 브라운 색으로 염색을 했다. 나중엔 좀더 밝은 브라운인지 어두운 노랑인지 그런 색으로. 그게 그렇게 하고 싶었었나? 귀를 뚫은 이후로는 내가 가끔 귀걸이를 사주기도 했다. 금속 알레르기 때문에 금 귀걸이만 할 수 있어서 많이 사주지는 못했다.

딸은 무언가를 요구하고 허락받기 위해서 조르다가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우리를 협박하곤 했다. 그 협박의 방법이란 것이 자신의 귀걸이를 잡고는 "엄마, 나 이거 잡아당길 거다. 아빠, 나 이거 잡아당길 거다."하는 것이다. 어쩌겠나, 딸이 그렇게 협박을 하면 우리 부부는 다 들어줄 수 밖에.

세종문화회관에서 포스터 파는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공연이 끝난 늦은 밤에 아빠는 그 시간당 임금보다 훨씬 더 비용이 드는 자동차를 가지고 딸을 태워오곤 했다. 어떻게 우리 딸만 태워오나. 함께 일한 다른 친구들을 한 차에 태워서 여기저기 돌며 내려주고 집에는 자정을 넘겨 들어오곤 했다.

학과에서 일일 호프집을 열면 아예 ㅇㅇ이 아빠 판매액이 예산에 들어있을 정도로 남편은 꼭 참여를 했다. 딸의 별명은 파파걸이었다.


남녀공학 대학을 졸업하고 남자선후배 남자 동창생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나이 서른살 넘도록 남자친구 한 명도 사귀지 못한(않은) 딸이 결혼은 갑자기 후딱 했다(해버렸다).

교회 오빠를 추천하며 그 사람은 어떠냐고 슬쩍 물어보면 “아니, 그 오빠가 오빠지 무슨 남자야?” 이러던 딸이 갑자기 결혼을 했다. 9월 15일에 결혼한 제 동생의 바로 뒤를 이어 3개월 후인 12월 15일에.

딸의 결혼에 대해 걱정됐던 점은 예비 사위의 아버님이 장남이시고(이건 사위가 장남인 것보다 더 복잡한 문제), 예비 시어머니가 효부상을 탔다는 것이었다. 효부상을 수상한 시어머니, 이건 음전하지 않은 딸을 둔 친정엄마인 내게 두려움이었다.

한 가지 걱정을 추가하자면 사위에게 여자 형제가 없다는 점. 나는 예비 시어머니에게 딸이 없다는 점이 많이 걱정되었다. 딸을 키워보지 않은 시어머니가 어떻게 며느리를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됐었다. 선머슴같은 딸을 시집보내는 이 에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딸은 예비 사돈댁의 아버님 4형제가 참 우애가 좋으시다고 떠들어댔다.

그 <좋은 우애>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가슴이 새카맣게 타고 허리가 할미꽃이 됐을 예비 시어머니의 역할 때문에 유지됐을 터인데…


대학생 때는 뮌헨대학 도서관에서 온갖 자료들을 다 챙겨 교수님께 갖다바치더니 교수님이 대학원 원서는 왜 안 내느냐고 권고와 독촉과 협박을 해도 저는 공부하기 싫다고 끊어버린 딸.

뮤직 비즈니스를 공부하러 런던의 대학원에 지원하고는 그냥 “나는 이런 놈의 날씨에서는 못살아”하면서 다시 한국으로 와버린 딸.

뮤직 비디오 찍는데 쫓아다니며(일을 했는지, 구경을 했는지) 영상편집을 한다더니 나중엔 방송국 드라마 편집을 맡았다고 밤을 새며 열정적으로 일을 했다. <천국의 ㅇㅇ><백만 장자와 ㅇㅇㅇㅇㅇ> 이런 드라마.


프리랜서로 일하던 딸은 KBS 대전 방송국에서 단기간 일하던중 지금의 사위를 만나 결혼에 이른 것이다. 드라마 편집하던 딸이 <사랑과 전쟁> 편집은 안 해봤는지 유럽여행 다니듯 신나게 여행을 갔다. 우리집에서 시집으로. 여행 전날 밤 짐 챙겨서 이튿날 아침에 떠나듯 직장 퇴근 후 집에서 제일 가까운 쇼핑몰에서 딱 한번 혼수 쇼핑을 하고 떠났다.

임신을 하자 야근이 있는 직장에 사표를 냈다. 아이를 셋이나 낳는 바람에 경력 단절이 길어지고 있다. 막내가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데 그 일년쯤 후엔 다시 자신의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코비드 19 이전에는 PC방 야간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으고, 그 돈으로 제가 좋아하는 유명 아이돌 콘서트표를 주저없이 사는 전업주부.

딸은 외손녀를 데리고 아이돌 콘서트를 구경가곤 한다. 이런 딸이 멋진 인생을 사는 것인지, 멋대로 인생을 사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내 딸은 아직 푸르게 젊고 나는 안정적인 것이 아니면 뒤로 빼는 겁쟁이 노인네가 되어있다.


내가 늘 선머슴같다고 걱정하는 내 딸. 그 아이는 인터넷 요리 싸이트를 뒤져서 독학으로 열심히 요리에 도전하며 산다.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한 내가 궁여지책으로 계량컵과 계량스푼을 사줬더니 표준맛은 내는 모양이다. 눈저울 손저울은 몇년쯤 실습을 하면 가능할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 손맛도 더해지려는지...

한 때는 사위의 점심 도시락을 싸주기도 했었다. 측근들은 도시락을 챙겨가는 사위를 보고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남자라고 했다. 아이 셋에 남편 도시락을 싸게 하다니, 이런 이유였다.
요리에 대해 뭔가 질문을 해오는 딸에게 나는 자주 구박을 받는다. 왜냐면 웬만한 건 그냥 <적당히>라는 말로 답을 하는 까닭이다. 몇 그람인지, 몇 스푼인지 그런 귀찮은 걸 내가 어찌 안단 말인가. 나의 계량은 <적당히>가 가장 정확한데 말이다. 몇 분쯤 두어야 하는가에도 역시 <적당히> 두라는 식으로 답을 한다. 서로 다른 저울과, 다른 시계를 가지고 있는 걸 알면서도 딸은 자주 물어온다.

그런데 딸과 내가 공동으로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하나 있다.
그 놈의 파! 파가 문제가 된 것이다. 파 머리를 세로로 반 가르라고 했더니 "엄마 여기 하얀 부분이 머리지?"하고 묻는다. 참 기가 막혀서. 파 머리가 거긴줄도 몰랐나?
"엄마, 이건 파 뿌리지? 검은머리 파뿌리하는 그 뿌리 맞지?"
"넌 아직 파 머리가 뭔지 뿌리가 뭔지도 모르냐?"
문제는 바로 여기서 생겼다.
“말도 안돼! 어떻게 머리가 뿌리에 붙어있어요? 어떻게 뿌리에 머리가 붙어있어요?”
딸이 자꾸만 묻는다. 내가 무슨 신통한 답을 할 수 있겠는가.
골똘히 생각해보지만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 머리와 뿌리가 서로 붙어있다는 것이 이상하다. 그것은 파 밑둥이라고 불러야하는 것 아닌가?
어쨌든, 파는 뿌리와 붙은 부분을 왜 머리라고 부르는지 모르지만, 아직은 나의 <적당히>라는 어림짐작이 딸의 정확한 계량과 시간보다 훨씬 나은 것 같다.


(파뿌리 쪽에 있는 하얀 부분은 파밑둥이라 하는데 나는 파머리라고 불러왔었다. 우리 어머니는 파대가리라고 하시지만 나는 대가리 소리가 민망해서 그냥 파머리라고 해왔다. 우리 집뿐 아니라 아마 다른 집에서도 파대가리 또는 파머리라고 하는 집이 있을 것이다. 사실은 <파대가리>라는 식물은 따로 있다.)


딸아 딸아 내 딸아, 아이돌 콘서트 구경가느라고 PC방 야간 아르바이트 하지 말고 잠이나 푹 자거라.

나이 40넘은 네가 아직도 그런데 쫓아다니는 것을 보면 이 늙은 에미는 마음 관리가 잘 안된다. 아이돌 콘서트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그것 가려고 밤새 일하는 네가 안쓰러워서 그런다.

그 표 값은 내가 줄 수도 있는데. 난 네가 편히 살면 좋겠다. 그리고 보고싶은 공연 표는 나한테 사달라고 하면 좋겠다.

너에게도 두 딸이 있으니 이 에미 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언젠가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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