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와 인연에 대한 탐구 23
두 아들
나에겐 두 아들이 있다.
한 아들은 제국주의자이고 또 한 아들은 사회주의자이다. 이것이 깜짝 놀랄 일은 아니다. 큰 아들 출신대학 이름이 Imperial이고, 작은 아들이 사회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우리가 재미로 붙인 말이다.
그들의 성격이 별명과 같지는 않다. 그러나 둘이 서로 다르긴 하다. 끙끙 앓는 성격과 폭발하는 성격. 외양도 다르다. 저체중과 과체중. 전공학문도 다르다. 재료공학과 사회학.
국제학교에 다닌 두 아들들은 10학년에 IGCSE (International General Certificate of Secondary Education) 시험을 치러야 했다. 큰 아들은 한국에서 온지 2년도 안된 상태에서 IGCSE 시험을 치렀고, 그 결과는 수학 A, 과학B, 독일어 B등급이었다.
수학 A, 과학 B등급에 깜짝 놀랐다. 언어의 극복이 안 된 상태로 잘 따라갈 수 있는 과목은 우선 수학이다. 어려서부터 아주 많은 책을 읽었고, 글 쓰는 솜씨도 제법이라 큰아들이 인문학 계통의 공부를 할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아들이 그런 성적을 받고보니 진로를 결정하는 일에 혼란이 왔다.
문학이나 철학을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좋은 고전을 감명 깊게 읽은 영향이기도 한데, 외국어를 접하고 2년이 채 안된 아이는 현지 언어로 고전을 자유롭게 읽을 수 없다. 언어능력이 좋은 큰 아들이 단지 영어 실력이 딸려서 어문, 사회, 철학 그런 쪽으로 관심을 가질 수 없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많은 고민을 했다. 부모로서는 이런 고민도 했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을 수 있다.
기초 원리를 암기하는 고역을 겪지 않고 실험 실습으로 그 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한 외국교육에서 잠자고 있던 수학이나 과학에 대한 잠재능력이 깨어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심사숙고하는 중에 큰 아들은 졸업 논문(고등학교 졸업)을 과학쪽으로 정했고, 그대로 진로를 결정했다.
자기가 늘 즐겨 연주하는 기타 줄에 대한 논문을 썼다. 기타줄의 소재에 따른 탄성과 파장을 연구한 논문으로 아주 좋은 점수를 받았다.
졸업반에서는 IB(International Baccalaureat우리나라의 수학능력 시험)를 치르기 위해 과목을 선택해야 했다. 3개의 스탠다드 레벨(Standard level) 과목과 3개의 하이어 레벨(Higher level) 과목을 선택해야 한다.
큰 아들은 물리 화학 수학을, 작은 아들은 영어 역사 화학을 하이어 레벨로 선택했다.
사회학과 지원 목표를 일찍부터 정해놓은 작은 아들이 화학을 선택한 이유는 과학과목 중에 한 과목을 꼭 하이어 레벨로 선택해야 하는 규정 때문이었다.
작은 아들은 화학 때문에 고전했다. 큰 아들이 가르쳐 주었는데 형제가 옥신각신 입씨름 하는 소리를 들어보면 동생은 형이 가르쳐준 대로 다 이해했다고 대들고, 형은 동생이 다 이해하지 못했다고 우겼다. 원리를 완전히 이해했으면 어떤 문제라도 풀 수 있는데 왜 틀리냐는것이 형의 얘기였다. 이해를 못 했으니까 틀린 거라고.
동생은 아까 원리를 가르쳐줄 때는 다 알아들었는데 막상 문제를 푼 것이 왜 틀리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해했다.
큰 아들은 문제집을 한 번도 풀어보지 않고 시험을 봤다. 내가 걱정을 하며 제발 문제들을 풀어보라고 닦달을 해도 원리를 알면 다 풀리는 문제를 뭐하러 자꾸만 푸느냐고 대꾸하곤 했었다. 이런 스타일이니 원리 가르칠 때 알았다고 대답한 동생이 문제 풀이에서 자꾸만 틀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작은 아들은 펍(pub)에 가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토론하는 것을 좋아해서 주말이면 외출을 말리는 나와 실랑이를 했다. 자기가 읽은 문학 책, 역사 책, 자기가 쓴 논문들, 그 모든 것들에 대해서 토론하고 싶어했고,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싶어 했다.
역사 속의 인물들을 죽일 놈으로 몰아부쳐 또다시 죽이기도 하고, 영웅으로 추켜세워 무덤에서 다시 살려내기도 하는 그 짜릿한 언어의 유희를 즐기며 맥주로 목을 추겼다.
사회학과 전공을 일찌감치 정해둔 작은 아들은 IB에 제출할 논문을 '한국 전쟁'에 대해 썼다.
작은 아들이 지원한 대학에서 하이어 레벨 세 과목이 모두 6등급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부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그러나 IB 결과 영어 7, 역사6, 화학 4가 나왔다. 원하던 대학엔 갈 수 없게 됐다. 큰 아들같으면 아주 간단히 그 대학을 포기하고 다른 곳을 알아봤을 것이다. 그러나 작은 아들은 달랐다.
지원한 대학에 편지를 썼다.
‘나는 꼭 이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싶다. 화학을 선택한 것은 독일 대학에 가기 위함이었으며, 대학 입학 후엔 다시 과학 과목을 공부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과학 과목을 한 가지라도확실히 해두고 싶었다.
나는 영어에서 최고 등급을 받았다. 앞으로 사회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서 공부할 어려운 저서들을 충분히 읽고 소화해낼 자신이 있다. 그리고 사회학과 지망생으로서 역사에서도 6을 받았다. 이런 내가 단지 Higher Level에 모두 6 이상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사회학을 전공하려는 사람이 화학을 못했다고 입학을 거부당한다면 올바른 처사라고 볼 수 없다. 나의 입학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시고 나에게 공부할 기회를 달라.’ 이런 내용이었다.
놀랍게도,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 대학에서는 작은 아들을 받아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우리 식구들은 모두 껴안고 펄쩍펄쩍 뛰었다.
나중에 압학 1년 후에 다시 한번 놀랐는데, 그것은 학교에서 새학년도 신입생 모집을 위해 발행한 입학 안내서를 보니 아들이 입학하던 해에 사회학과에 204명이 지원하여 30명이 합격한 기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조건에 맞추지 못한 우리 아들을 받아들인 것에 대해 큰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학교에서 이 아이에게 어떤 기대와 희망을 걸고 공부할 기회를 주었는가 깊이 생각하며 그에 합당한 학생이 되고자 노력했다.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이 이렇게 서로 다르지만 유치원을 다니지 않던 어린 시절부터 둘이는 친구가 되어 놀았다. 다른 아이들 다 유치원 가고 학원 간 사이에 형제는 빈 골목을 누비며 놀았다. 독일에서도 형제는 방과후 활동을 함께 하며 늘 붙어 다녔다. 함께 농구를 하며 Street Ball에 나갔고, 축구도 했다. 음악과 미술도 같이 했다.
스쿨 버스를 타는 시간에 동생은 늦어서 헐레벌떡 뛰어가면, 형은 미리 나가서 동생이 곧 온다고 차를 잡아두는 식이었다. 큰 아들이 아침 마다 버스기사에게 "Brother comes!"를 외쳤다.
두 형제는 늘 기타를 연주하며 작사 작곡을 해서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살던 독일 집에 지하실이 있어서 애들은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불렀고, Keller(지하실)라고 제목을 붙인 녹음 테이프를 만들기도 했다. 드나드는 손님들이 준 용돈을 모아 전자기타를 사서 연주하는 바람에 나는 고역이었지만, 그것이 우리 애들이 밖에 나가 방황하지 않고 집에서 나름대로의 외로움을 달래며 스트레스르 푸는 방법이려니 하고꾸욱 참으며 지냈다.
대학 시절에는 함께 밴드 활동을 했다. 큰 아들은 트럼펫, 작은 아들은 드럼을 연주했다. 형제는 출생 이후 둘이서 가장 오래 함께 한 사이였다. 결혼하여 제각각 살림을 꾸리기 전까지는 떨어진 적이 없이 붙어있었고, 결혼 후에도 같은 오피스텔 같은 층에 나란히 살았다. 형은 1009호에, 동생은 1006호에.
큰 아들의 결혼식에서 나는 연신 눈물을 찍어냈다. 결혼식을 치르는 동안 어린 나이에 외국애서 어려움을 극복하며 겪었던 여러가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며 눈물을 돋구었다. 그때는 좋아서 웃음을 터뜨리던 일들도 회상할 때는 눈물로 변하는 것은 참 이상하다.
작은 아들의 결혼은 정신 못 차릴 정도로 분주하게 치렀다. 며느리의고향인 홍콩에서 중국식 결혼식을, 한국에서 다시 결혼식을 하느라고 바빴다. 열 명이 넘는 가족들이 홍콩 여행과 낯선 풍습의 결혼식에 참여하느라고 얼떨떨했고, 서울에서 치른 결혼식에는 홍콩에서 온 며느리 가족들의 안내에 분주했다.
큰 아들과 작은 며느리, 큰 며느리와 작은 아들은 서로 동갑내기이다. 나이가 어쨌든 작은 며느리는 큰 동서에게 깎듯이 존댓말을 하고, 역시 큰 며느리도 작은 동서에게 존댓말을 한다. 아들 며느리들이 우리 집에 자주 오는 것은 ‘시집 방문’보다는 저희 형제들끼리 만나서 노는 것을 즐기기 때문인 것 같다.
두 아들들의 살림 스타일도 서로 다르다.
큰 아들네는 아들이 요리를, 며느리는 설거지를 한다. 작은 아들네는 며느리가 요리를, 아들이 설거지를 한다. 그러니 우리 집에 모였을 때는 제 집에서 하던 대로 큰 며느리와 작은 아들이 자연스럽게 설거지 담담이 된다. 요리는 주로 내가 하니까 큰 아들과 작은 며느리는 일에 대한 부담이 없는 셈이다. 네 명이 함께 놀기를 즐기는 친구들 같다.
나의 두 아들들은 서로 눈에 띠게 다른 점도 많지만, 그것이 마찰과 충돌을 일으키지 않고, 잘 조화를 이루며 지내왔다. 낯선외국 생활에 서로 의지하는 동지였고, 취미생활을 함께 하며 노는 친구였던 두 형제. 나의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은 형제이기도 하지만 평생 친구로서 지금도 변함없이 교류하며 지내고 있다.
며느리들까지 전혀 이질감 없이 합류하여 즐거운 생활을 누린다. 게다가 손주들까지 웃음꽃을 마구마구 피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