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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Sep 10. 2020

빗장을 풀다 - 관계 2

북아트 <풀다>

빗장을 풀다 - 관계 2


<초등학교 일기장 묶음>

아이들을 키우는 집집마다 일기장이나 스케치북, 이것저것 만들기 작품이 한 짐이다. 낙서같은 그림이지만 내 아이가 그린 것이라 버릴 수 없고(언젠가는 다 버리지만), 아이가 잊은 듯하면 그 기회를 틈타서 만들기 작품을 슬쩍슬쩍 버리곤 한다.

그래도 끝까지 남아있는 것은 일기장이다. 정작 아이는 그 일기장을 다시 들춰보지도 않는데 부모는 어쩌다 일기장이 눈에 띠면 한참을 주저앉아 끝까지 다 읽는다. 선생님께 검사받기 위해 의무적으로 쓴 일기장에도 가족끼리 함께 한 행사같은 것은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어서 추억을 회상하게 된다.


막내 아들의 초등학교 일기장을 한데 묶었다. 이 아이는 일기에 쓸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시(詩)를 썼다. 시만 따로 뽑으면 노트 한 권쯤은 될 것 같다. 본인도 이미 다 잊었을 초등학교 때 쓴 시를 읽으며 감상에 빠지곤 한다. 이게 부모다! 세상 모든 자식들아, 너희들은 알고있니? 부모는 이렇다는 것을?


일기장 여러 권을 표지를 만들어서 묶었다. 책등은 튼튼한 가죽이다. 표지와 책등 연결은 접착후 버튼홀 스티치고 강화했다.


<HY의 편지 상자>

나의 첫 딸보다 몇 살 더 어린 지인이 내게 자주 엽서와 편지를 보내왔다. 친정 어머니와 멀리 떨어져있는데 첫 아이를 출산한 그녀에게 우족탕을 끓여줬더니 그것이 많이 고마웠던 모양이다.

서점에서 엽서 그림을 보다가 내 생각이 났다고 쓴 엽서, 가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을 때 써서 보내온 여러 장의 편지글, 자신의 방황을 스스로 다잡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준 애틋한 편지들, 큰 서류봉투 속에 담아뒀다가 이렇게 상자를 만들었다. 상자 뚜껑 안쪽에 붙인 십자가는 편지를 보낸 지인이 직접 그린 것이다. 그 그림을 어떻게 보관해야할 지 고민하다가 편지 상자를 만들게 됐다.  가끔 편지글을 읽어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리고 화살기도를 날린다. "이제부터는 당신의 그림이 블루보다는 따뜻한 색이 되기를!"



사람은 나이듦에 따라 변화해간다. 내가 젊어서는 잘난 척하고 거시적인 역사에 관심을 가졌었다. 청춘은 그래야 빛나는 청춘인줄 알았다. 우리 아버지의 삶의 역사보다는 나라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가 더 중요했었다. 그런데 나이가 점점 많아지면서, 결정적으로는 큰 오빠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미시사에 관심을 갖게되었다. 오빠의 일생을 뒤돌아보면서 미시사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어쩜 이것은 나이든 사람의 자연적인 현상일지도 모른다. 젊어서 방대하게 펼쳐졌던 시야가 나이들어 가면서 점점 그 시야가 좁아짐을 느낀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시대에 내가 가지고 있는 많은 잡동사니들은 정리해야 할 물건들이 되었다. 정리라는 말은 과하지 않은 표현이지만 사실은 버려야 할 물건이 된 것이다. <물건들>은 버릴 것이다. 그러나 나의 기억은 버리지 못하겠다.


<가족 사진 필름들>

1976년 5월 22일 우리는 결혼했다. 그후의 많은 기록들은 나의 기록이 아니라 우리의 기록이 되었다. 결혼식 사진부터 그후로 찍은 사진들의 현상 필름들을 모아둔 스크랩 북이다.

결혼 사진, 남편의 대학 졸업사진(결혼 후 이듬해에 졸업), 첫 아이의 백일과 돌 사진, 그후 둘째 셋째 아이들의 자라는 모습들이 담긴 사진 필름들이 모여있다. 디지털화 되기 전까지의 필름들이다.

인화한 사진들을 앨범애 모아두었는데 그 앨범조차도 이젠 필요가 없다. 앨범 속 사진들을 스캔하여 USB에 저장해뒀으니까. 다시는 이 필름으로 인화할 일이 없을테지만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것도 내가 세상 떠나기 전에 처분해야할 물건이다.

많은 잡동사니를 끌어안고 있는 나의 잡동사니 관련 글

<누드 룩색>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가는 동안 앞자리에 앉은 한 여자 아이 때문에 나는 뜻하지 않게 추억의 창고를 뒤적거리게 되었다. 그 아이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 아이가 메고 있는 <누드 륙색(nude ruck-sack)> 때문에.
속이 훤히 비취는 투명 비닐로 된 작은 배낭을 멘 여자 아이가 바로 앞자리에 앉아있었다. 그 아이는 등에 멘 배낭 때문에 의자 등받이에 기대지 않고 있었다. 배낭속의 물건들이 나를 유혹했다. 오른 쪽에 반듯이 자리잡고 있는 흰 털복숭이 강아지, 왼쪽에 켜켜로 쌓여있는 핑크색 필통, 알록달록한 그림책, 구깃구깃한 빵 봉지, 콜라 캔이 자세히 들여다보였다. 보이는 물건들에 가려진, 아이의 등쪽에 붙어있는 물건들은 또 무엇이있을까 궁금했다. 아이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 아이에게 마구 정이 쏠렸다. 마음으로 그 아이가 귀엽고 예쁘고, 그래서 한번 꼬옥 안아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깟 비닐 배낭이 왜 그렇게 내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을까. 별것도 아닌 흔한 비닐 백, 아이들이라면 흔히 가지고 다니는 동물인형, 필통, 그림책, 음료수, 그런 물건들이 특별할 것도 없는데 왜 나는 그 가방에 사로잡혔던 걸까.


어린시절에 내가 귀하게 챙겨두던 잡동사니로는 어머니의 일제 화장품 ‘구리무(cream) 통’과 코티 분갑이 있었다. 구리무 통은 하얀 색깔로 키 높은 항아리 모양이었다. 소꿉놀이할 때 깨진 화분 조각을 갈아 고춧가루로 삼아 물에 푼 다음에 풀잎 몇 개 띄우면 멋진 나박김치가 되는데 그 국물김치를 담아두는 데는 엄마의 일제 구리무 통이 안성맞춤이다.
코티 분갑은 옅은 주황색과 금색의 은행잎 무늬가 있던 것으로 기억된다.이제 생각하면 한 손안에 들어오는 작은 크기였는데 그 안에 담아둔 것들은 얼마나 많았던지! 향기가 살짝 배어있는 껌의 은색 속종이, 봉숭아 씨, 주워모은 단추들, 남자애들에게 뇌물로 받은 색유리 구슬 몇 개, 그리고 찰고무 지우개도 참 귀한 것이어서 그 분갑에 모셔뒀다.
깨진 사기그릇 조각 하나라도 주워모아 두었다가 소꿉놀이의 살림살이로 쓰던 때였으니 화장품 용기는 얼마나 귀한 보물이었겠는가.
나중엔 어머니 발음으로 ‘고르드’라는 화장품 통도 생기게 되었다.<폰즈 콜드 크림>통이다. 그런 작은통들마다 나의 소중한 재산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는데 지금 그것들은 다 어디있지? 십수년에 한번 씩이라도가끔 생각나는 물건들이다.


1987년, 처음 해외여행을 나갔을 때, 파리의 고급화장품 가게에서 나는 코티분을 찾아봤다. 전혀 눈에 띠지 않아 한국인 판매원에게 코티분은 없느냐고 물어봤다가 무안만 당하고 말았다. 그런 슈퍼 마켓용 물건은 취급 안한다는 것이다. 폰즈 크림도 마찬가지로 슈퍼마켓에서 판매하는 서민용 크림이다. 판매원의 핀잔에 마치 우리 모녀가 모욕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어렵게 생긴 그 화장품은 어머니께 아주 귀한 것이었고, 내겐 빈갑이라도 귀한 것이었었기 때문에.
이사를 하든지, 무슨 이유로든 세로 쓰기로 인쇄한 옛날 책들을 들춰보는 날, 책갈피에서 누렇게 변색한 꽃잎을 발견하는 날도 나는 두 다리 뻗고 앉아 그 꽃잎에 대한 추억을 더듬곤 한다.

내가 모았던 잡동사니, 그것들이 불러일으키는 추억못지 않게 우리 아이들이 어려서 모았던 잡동사니에도 추억이 서려있다.
길에서 걸음을 멈추며 눈을 반짝이고 줍던 사이다 병 뚜껑, 그것이 왜 그렇게 아이들의 관심을 끌었을까? 눈에 띨 때마다 주워서 손목에 끼워두던 고무밴드, 이런 걸 잘 챙겨두는 아이들 때문에 요긴하게 쓰기도 했었지. 달이 바뀌어 뜯어낸 달력종이는 또 얼마나 좋은 종이였던가. 지금도 난 달력 종이를 선뜻 버리지 못한다. 아이들의 교과서를 싸줄 일도 없는데… 또 생일 선물로 받은 천 마리의 종이 학은 차마 버릴 수가 없지않은가.
값 비싼 물건들도 쓸모 없어지면 버리지만, 아이들과의 추억이 깃든 물건들은 아주 작고 하찮은 것이라도 함부로 버릴 수 없다. 그것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작은 역사의 흔적이기 때문에.

누드 륙색을 둘러멘 여자아이는 나와 함께 버스 종점에서 내렸다. 머리를 나풀거리며 팔딱팔딱 뛰어가는 여자아이가 멀어지면서 나도 추억의 창고에서 빠져 나와 발걸음을 옮겼다.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면서 그 내용물보다는 알록달록한 포장용기에 더 관심을 보이며 이쪽저쪽으로 돌려가면서 포장상자를 구경하였다. 나의어린 시절이었든지, 우리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었다면 이 상자는 분명히 버리지 못하고 잡동사니 물건들을 담아두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콤팩트 앨범>

빈 화장품 케이스는 버리기 아깝다. 그렇다고 특별히 재활용할 방법도 별로 없다.그 얇은 분갑 안에 딸의 어렸을 적 사진을 넣었다. 밖에서 식후에 거울을 살짝 들여다볼 때 뚜껑을 열면 딸이 방긋 웃는다. 꺼내면 주르르 딸려나오며 기쁨조 역할을 충실히 한다. 어떤 사진은 지금 외손녀와 똑같은 모습이다.

우리 가족들은 사진놀이를 자주한다. 사진놀이라니? 이런 것이다. 지금 손주들 나이와 같은 나이에 찍은 자식들의 사진을 띄우면서 '이게 누구게?' 이렇게 묻는 놀이를 말한다. 편집좀 하는 아들 딸은 저희들 어릴 적 사진과 지금 애기들 사진을 이렇게저렇게 섞어서 올려놓고는 '이게 누구게?' 한다. 우리 가족은 이렇게 논다. 우리 직계 식구들은 잘 가려내지만 삼촌들과 고모들은 그 닮은 모습에 "어머 어머..."를 연발한다.


내용물을 다 사용한 콤팩트 케이스 속에  딸의 어린시절 사진들을 모아두었다.



아버지의 책.


곰팡이가 났고, 글자를  읽지도 못하지만 내겐 아주 소중한 아버지의 유품으로  정신적 지주가  책이다.

나는 아버지의 책들을 살펴보면서 가장 강렬한 존재감은 존재가 아니라 부재라는 것을 실감한다. 그리고 교감은 경계가 없이 넘나든다는 것도 확신한다.


아버지가 쓰신 표지 글자를 보존하고싶어서 표지째 그대로  위에 새표지를 덧씌웠다.

글자가 지워지지 않을 만큼은 곰팡이 부분을 닦아내었고, 산화방지액을 스프레이하였다.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일일이 읽는 토를 달아가며 열심히 읽으신 우리 아버지. 내가 무엇을 건성건성 대충대충하는 것이 부끄럽다.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한결같이 열심히 공부하신 흔적이 내 엉성한 삶에 큰 귀감이 된다.


싱례, 지제의, 어록 단 표지(왼쪽),  어록 단 내용(가운데),  일정가례一精家禮 (오른쪽)

상자 가득한  책들. 아버지가 읽으시던 책들. 말끔히 새옷 입히고 정리하고 싶지만 낡고, 곰팡이 피고,  헤어진 종이 한장도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감싸안고싶은 마음으로 그저 표지만 새로 덮었다.

세월의 두께를 걷어낼 용기도 없고 축적된 시간들을 버린 후에 몰려들 그리움도 감당할 자신이 없다.


아버지의 책을 만지는 시간은 성찰의 시간이다.

곰팡이를 닦아내고, 손바닥으로 쓰다듬고, 가신 분들을 그리워하는  시간이 내겐  소중한 시간이다.

語錄 . 우리의 단어장 같은 책이다.우리가 영어단어 노트를 만드는 것처럼 낱말들을 일일이 적어두셨다.

 ,  ,   ... 이렇게 구분해서 기록된 낱말들에서 익숙한 말도, 낯선 말도 발견된다. 인명 사전인지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도 적혀있다.


제의에 대한 소상한 내용적혀있다. 할아버지께서 아버지를 가르치시기 위해 기록하신 것이다.

一精家禮. 一精은 할아버지의 .  노트와 함께 상례집을 남기시며 참고하라고 적어두셨다.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자상한 가르침을 주신 분이셨는데.... 나는  자식들에게 어떻게 했던가?

훈계보다는 화를 냈고, 칭찬보다는내가  좋아했다. 중심이 자식인 것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스마트폰 일정에 기록하는 세상이지만, 우리아버지는 기억해야할 모든 날들을 할아버지가 이렇게 직접 써서 알려주시던 시대에 사셨다.


아버지가 읽던 장자(왼쪽),  할아버지가 쓰신 생일 축하문(오른쪽)

이상한 일은, 읽을  없는 아버지의  <장자> 읽을  있는 현대의 <장자>보다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점이다. 내가 읽은 책에서 장자사상을  이해하지도 못했는데, 한자로만 적혀있어서  읽지도 못하는 아버지의 책은 내게 어렴풋이나마 조금  뚜렷이 장자사상의 이해를 도와준다.  이상한 현상이다.

이 놀라운 현상은 순전히 수도 없이 많이 책장을 넘기며 묻혔을 아버지의 손 때와, 분명히 큰 소리로 낭독하며 읽으셨을 그 들리지 않는 목소리와, 내게 전해주고싶은 어떤 사상의 흐름이 곰팡이 낀 그 낡은 책 속에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의 책상자 속에는  많은 것들이 들어있다.

가례에 관한 자상한 지침도, 개인편지도, 불경과 성경의 필사노트도, 그리고 나도 알아서 반갑게 맞이한 천로역정과 도덕경 장자... 게다가 열국지 옥루몽 이런 책들까지 참 많은 것들이 들어있다.


옛날에도 생일카드가 있었다.

아버지의 상자 속에서 나온 글인데 내용을 보니 생일 카드이다. 빛바랜 종이 한장인데 원형을 그대로 손질하여 표지를 만들어 붙였다.

신축년, 1901. 나의 할아버지가 할아버지의 할머니, 그러니까 나의 고조 할머니 생신을 축하드리고자  올린 .  글의 끝에 不肖孫在南이라 씌여있는데  在자 南자  나의 할아버지 함자이시다.


이런 것들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기록으로 남겨주신 내용,  중의 어느  구절,  구절의 내용적인 가르침에 나는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하셨고, 아버지는 그 가르침에 귀기울였다는 것.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그 분위기가 내 삶에 큰 작용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다음 글은 글 뭉치를 풀다 – 문학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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