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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Oct 18. 2020

요하네스 베르메르 -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

비전문가의 그림 감상

감상鑑賞이 아닌 감상感想입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혼자 지내는 휴일, 몇 가지 노래를 듣는다. 요즘 노래도 넘쳐나는데 굳이 옛 노래를 찾아 듣는다. 나이 탓인가?

좋아하는 나나무스꾸리의 <하얀 손수건>을 듣고,  송창식 윤형주의 트윈플리오 시절 <하얀 손수건>을 들었다. 그 노래를 듣다가 갑자기 김정호의 <편지>가 생각나서 수 십년 묵은 그 노래를 들었다. 갑자기 편지라는 단어에 마음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내친 김에 가을 시 몇 편을 골라서 읽는다. 고은 시인의 "가을엔 편지를 하겟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를 검색한다. 여러 가수들이 그 노래를 불렀지만 곡을 만든 김민기가 직접 부른 노래를 듣는다. 가을 분위기에 어울리는 최양숙의 노래도 듣는다.

안되겠다. 이러다가는 가을 속에 깊이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하루 해가 다 넘어가겠다.

그림으로 옮겨간다.



혼자서 암스테르담을 여행했었다. 주로 고흐의 그림을 보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었기 때문에 다른 그림에 대한 기억은 어렴풋할 뿐 선명하지 못하다.

그러나 베르메르의 그림은 기억난다. <편지를 읽는 푸른 옷의 여인>이다. 암스테르담에서 베르메르의 그림을 봤고, 그 10년 도 넘은 후, 몇 년 전에 델프트에서 베르메르를 집중 조명한 베르메르 센트룸을 방문했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17세기 화가들을 나라별로 꼽아보자면 네델란드의 렘브란트가 있고, 스페인의 벨라스케스, 프랑스의 푸생이 있다. 네델란드의 이웃나라 벨기에의 루벤스도 있다. 나는 어린 네로(동화 "플란다스의 개" 주인공)가 되어 네로가 그렇게 보고싶어하던 루벤스의 예수님 그림들을 보러 갔었다.

위에 열거된 화가들은 주로 종교화, 역사화, 초상화에 관심을 보이고 대작을 그렸다. 그런데 베르메르는 일상속의 다양한 표정을 작은 풍속화처럼 그렸다. 우리 이웃의 평범한 모습들이 친근감을 준다.


Vermeer, Jan ---Woman in Blue Reading a Letter

1663-1664Oil on canvas 46.6 x 39.1 cm Rijksmuseum, Amsterdam

https://www.rijksmuseum.nl/en/collection/SK-C-251


이 그림을 보니 잊혔던 생각이 희미한 빛으로 떠오른다. 벽걸이 지도의 밑에 있는 봉이 그림 한가운데를 선명히 가르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마치 화면을 분할한 구성화를 보는 듯하다.

그런데 가로지른 막대기가, 그림에서 별로 뚜렷한 포인트가 될 것도 없는 작은 쪽지의 편지에 힘을 더해주고 있다. 강한 색의 봉이 먼저 시선을 끌고, 그 다음엔 두뇌가 이 그림의 제목을 상기하고, 그렇게 둘이는 상호작용을 하여 "편지"에 가장 중요한 촛점이 잡히게 된다.
아, 이 여인이 지금 편지를 읽고 있구나!

벽에는 환한 빛이 머물러 있고, 여인의 등은 검은 어둠이 드리워져 았지만 여인의 그림자가 없는 것으로보아 빛은 아마 두 군데서 들어오고 있는 듯하다.

베르메르의 이런 빛에 대하여 여러 화가들이 과학적인 실험을 했다. 그들은 나처럼 '아 저쪽에도 창이 있어서 빛이 거기서도 들어오나보다' 이런 생각을 하기 보다는 어떻게 빛을 이렇게 표현했을까를 증명하려고 덤벼들었다. 글쎄 어떤건지… 미술비평은 아니니까 나의 느낌이나 말해볼까.

빈 의자가 두개. 여인 쪽의 의자는 여인이 앉는 것일테고, 맞은 편에 있는 의자는 비어있다. 화가는 왜 벽에 지도를 걸어두었을까? 아니, 그림을 위한 지도걸이가 아니라 애초에 지도가 걸린 방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편지"는 연인을 연상케 하고, "지도" 그리고 "빈 의자"는 연인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마음을 잘 말해준다. 여인은 누굴 그리워함이 분명해! 나도 가끔 느끼는 감정이다. 빈 의자의 그 텅빈 자리가 누군가에 대한 많은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거기 앉아있어야 할 사람이 불현듯 그리워지는 그 감정을 느낀다.


이 그림은 내게 한편의 詩로 들려온다. 시 같은 그림이다. 벽의 환한 빛과 여인의 비단 질감의 푸른 옷으로 전체는 고요에 휩싸인 느낌이다. 지도와 의자는 쓸쓸함을 안겨준다.


그러나 마냥 적막하기만 한 건 아니다. 편지에 든 내용들이 살아서 여인의 머리 속으로 가슴속으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여인의 머리 위쪽으로 뻗친 지도 그림에 상상의 옷을 입혀보자.


편지 내용이 여인에게 전달되는 움직임 같기도 하고, 연인을 그리워하는 상념들을 발산하는 움직임 같기도 하지 않은가. 베르메르가 이 여인과 지도를 연관시켰는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오늘은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가을 빛을 듬뿍 담아 편지를 써야겠다.




델프트 베르메르 센트룸 입구와 외관.
베르메르가 광학장치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설명하는 사진(왼쪽),   거울을 이용한 광학장치를 체험해보고 있는 나(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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