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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Oct 25. 2020

인생의 계절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내 나이는 거부할 수 없이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겨울을 향해 묵묵히 걷고 있다.  살짝 눈물이 돋는다. 햇살이 예리하게 내 눈을 찌른 것 같다. 스치는 바람이 너무 차가운것 같다. 아니, 좀더 솔직해지자면 쓸쓸한 것 같다, 그냥. 이 “그냥”이란 것은 살짝 눈물이 돋게 할 힘이 있는 것 같다. 내게 묻는다. 왜 “ㅇㅇㅇ하다” “ㅇㅇㅇ이다”고 쓰지 못하고 “ㅇㅇㅇ한 것 같다”“ㅇㅇㅇ인 것 같다”고 쓰고 있는가?


가을 바람이 휭~하고 내 곁을 지나간다. 아, 흔들리지 않기로 했다. 바람은그냥 스쳐 지나가거라. 불타는 나뭇잎에도 한눈 팔지 않으련다. 떨어지는낙엽이 내 가슴속에 자리잡지 않도록 마음을 꽁꽁 여민다. 나는 탐스러운 가을 열매만을 생각한다. 유행가 가사였던가, “익어가는 중”이라고.


아, 음악을 듣자. 이가을의 노래를.


여러 해 전에 하늘나라에 성급히 자리를 잡은 큰 오빠는 노래 리멘시타(L’immensita눈물 속에 핀 꽃)를 좋아했다. 이 가을엔 오빠의<리멘시타>와 내가 좋아하는 <고엽(Les feuilles mortes)>은 피해가야겠다. 그런데… 어쨌든 지금 우리집 거실엔 샹송이 흐르고 있다. 음악이 흐르다보면 리멘시타도 고엽도 나올 차례가 있을텐데. 안돼! 벌떡 일어나 음악을 바꾼다. <노트르담 드 빠리>. 아, 이것도 늪지대에 속한다. 빠지면 안 되는데.


내설악 단풍


온 산이 불타고 있다.


북쪽 산에 붙은 불길은 유전자에 새겨진 속도대로 남으로 남으로 내려오고 있다.  마음에도  불씨 하나 옮겨 붙는다.  불씨가 어떻게 꽃으로 피어나려나…  무겁게 가라앉아 버티고 있는 영감靈感을 억지로 쥐어짜본다.  계절의 습도처럼 메말랐다. 건조하다. 가슴 속에 하나  들어와 박힌 단풍 잎에서 메이플 시럽은 나오지 않는다. 안타깝다.

불씨는 아직 가슴 속에 머무르고 있다. 나이에 맞는 지혜가 슬쩍 옆구리를 찌른다. 그 불씨를 꺼트리면 안 된다고. 옆구리를 계속 쿡쿡찌른다. 알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수렴동 계곡


불꽃은 영원히 타오르기만 하지 않아.
불꽃이 사그러들 때도 있지.
그러다가 다시 불꽃이 일어나기도 하고.

다만, 그 소중한 불꽃을 꺼트리진 않을거야.
불꽃이 사그라지더라도 불씨가 남아있으면 다시 살아나 활활 타오를 수가 있거든. 그러니  불씨를  지킬거야. 천년을 타오를 불씨를  지킬거야.

불꽃이 꺼지는 것은  탔기 때문이기도 하고, 갑자기 불어닥친 바람 때문이기도 하고, 지나가는 검은 구름에서 쏟아지는 소나기 때문이기도 하지. 불꽃은 피어오르지 못해도 내 가슴에 남은 불씨를 나는 꺼트리지 않을거야.


가을은 강물보다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계절은 바람보다 먼저 저만큼 가있다.

 무채색의 계절이  터이니.

그래도 춥지 않은 것은  가슴 속에 불씨 하나 남아있어서.


다시 샹송으로 바꾼 음악은 <Bravo Pour leClown>.  에디트 피아프가 “브라보”를 연신 외치고 있다. 그래 나도 따라 해보자 브라보, 브라보! 뜻이야 어떻든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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