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Georges Bataille <Edouard Manet>
조르주 바타유 지음, 번역 송진석. 문학동네 출판.
2020년. 168쪽
롤랑 바르트는 그의 저서 <텍스트의 즐거움>에서 바타유를 “분류할 수 없는 작가”라고 하였다.
철학, 문학, 인류학, 사회학, 종교, 예술을 넘나드는 사상과 저술활동은 그를 ooo으로 분류하고 규정지을 수 없다. 그는 늘 경계 너머를 사유했다. ‘과잉’ ‘위반’ ‘소모’ ‘주권’ 개념이 바타유 사상의 핵심으로 포스트모더니즘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당대에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사후에 재평가되었다.
일반적으로 그의 이름에 가장 많이 붙는 설명은 ‘에로티시즘’과 ‘범법(위반)’이다.
이 책은 바타유가 1955년에 출간한 두 권의 예술책 중에 하나이다. 예술의 기원을 <라스코 혹은 예술의 탄생>에서, <마네>를 통해서는 현대예술의 탄생을 다뤘다.
미술사에서 마네는 ‘사실주의Realism’를 ‘인상주의Impressionism’로 전환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대미술Modern Art’의 창시자로 간주된다. 바타유가 이 책에서 마네의 삶과 작품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회화의 역사에서 마네는 이전 화가들과 단절했고, 지금의 세계를 열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와는 어울리지만 자신의 세계에선 어울리지 못하고 스캔들을 일으켰다.
시대에 따라 쇄신하는 예술의 변화무쌍한 미와 대중의 취향이 이렇게 불일치한 적은 마네 이전에 결코 없었다. 30쪽
마네는 1863년부터 본의 아니게 스캔들을 일으켰고 살롱전에 출품된 <올랭피아>는 그가 일으킨 스캔들의 정점이었다. 31쪽
애칭 ‘명동백작’으로 불리는 이봉구씨의 말이 생각난다. “예술은 혼자서 하는 외로운 작업이지만 분위기도 중요합니다. 서로 모여 작품 이야기, 세상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영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살롱문학’은 그래서 필요한 것입니다.”
문화예술인들은 함께 모여 창작의 고통을 나누고, 동시대의 문화예술을 함께 향유한다. 그런 현상은 과거로 돌아갈수록 더욱 뚜렷하다.
내가 세 번씩이나 감상한 매력적인 영화 <Midnight in Paris>에는 여러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젤다와 스콧 피츠제랄드, 헤밍웨이, 피카소, 마티스, T.S. 엘리옷, 달리, 만 레이, 틀루즈 로트렉, 드가, 고갱…. 그들의 이름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유명 예술인들을 영화 속에 다 끌어넣었다.
마네와 함께 한 사람들은 보들레르, 에밀 졸라, 말라르메가 있다. 바타유는 이 책에 그들이 마네를 어떤 사람이라고 했는지 친절하게 다 모아놨다. 마네는 어떤 사람인가?
말라르메는 “턱수염과 재치있게 희끗거리는 성긴 금발”이라고 했다. 졸라는 또 이렇게 증언했다. “… 눈은 생기가 넘치고 영리하며, 민활한 입은 때로 약간 빈정대는 듯하다. 불균형하고 표현력이 풍부한 얼굴 전반은 어떤 알지못할 섬세함과 에너지를 갖고있다. 말라르메의 훨씬 생생한 다음 표현은 친구 마네를 괴롭히던 “좌절”의 감정에 관련된다. “담황색 외투를 걸친 천진난만한 사티로스….” 요컨대 평범한 한 남자. 그러나 매력적이고 약간 저속한 듯 만 듯한……. 34쪽
인용에 덧붙여 바타유가 그린 마네는 이렇다.
마네, 약간은 피상적인, 그러나 날카로운 신경을 소유한 사람. 넘치는, 그를 불만족의 상태에 내버려두며 소진시키는, 그가 어렵사리 이해하는, 그러나 확실히 그를 넘어서는 하나의 목표에 사로잡힌 사람. 37쪽
사회는 더이상 신권이나 왕권을 지지하지 않았지만 예술은 그 구조를 계속해서 재현했다. 그러나 마네의 회화는 고전회화의 이상을 어겼다. 낡은 이상을 고집스럽게 옹호하는 사회의 기대를 어겼다. 마네의 그림은 현대 사회에서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가치를 고수하는 것에 반발한다.
나는 근본적인 사실 하나를 강조하고자 한다. 성, 교회, 사원 또는 궁전 등, 과거에 수없이 만들고 다시 만들어진 그 위대한 교육적 기념물, 그러니까 권위를 말하고 선포하며 온 군중으로 하여금 고개를 숙이게 만들던 그 기념물은 그것에 근거를 부여하던 의미를 잃어버리는 순간을 맞이했다. 그 기념물은 해체되었고, 그 언어는 마침내 거드름 피우는 웅변으로 전락했으며, 예전에 복종하던 군중은 그것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기에 이르렀다. 49-50쪽.
앞서 발행한 나의 브런치글 <에드와르 마네-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에서 고야의 <1808년 5월3일>을 언급했다. https://brunch.co.kr/@erding89/21 0
이 책 <마네>에서도 바타유는 마네를 설명하기 위해 고야를 소환한다.
오로지 죽기위해 솟아오른 이 부르짖는 사내의 비전, 우리가 <1808년 5월3일>이라 부르는 이 총살 장면은 죽음 자체의 출현에 다름 아니다. 이 죽음은 바로 우리를 벗어나는 죽음이고, 원칙적으로 우리가 결코 알 수 없는 죽음이다. 왜냐하면 죽음이란 발생과 함께 인식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59쪽
바타유는 고야가 신성한 죽음의 순간을 포착했다고 감탄한다. “찰나적 미광”을 포착하고 그 “섬광”은 빛의 폭발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화가가 자신의 그림을 통해 강렬한 발언을 한다. 감상자는 고야의 그림에 나타난 죽음에 대한 외침을 듣는다.
회화에 대한 웅변이 이보다 더 멀리 간 적이 있을까? 하지만 그 외침은 결정적인 침묵처럼, 웅변의 질식처럼 우리에게 와닿는다. 59쪽
마네의 <막시밀리안 황제의 죽음>은 화가가 마치 보도사진처럼 사건을 객관적으로 그렸다. 화가의 발언이 없다. 침묵이다.
표면적으로-어쨌거나 의도적으로-마네는 작업 대상으로 꽃이나 생선을 선택했을 때와 똑같이 무심하게 사형수의 죽음을 그렸다. ~~~이 그림은 웅변의 부정이다. 그것은, 마치 언어가 그러하듯, 감정을 표현하는 그림의 부정이다. 60쪽
바타유는 화가의 적극적인 스토리 개입이나 방관에 대해 '존재와 부재'로, '웅변과 침묵'으로 묘사한다. 마네는 '부재'와 '침묵'으로써 사실주의를 벗어나 인상주의로 발을 내디뎠다. 우리는 인상주의라하면 클로드 모네가 제일 먼저 떠오르고, 모네의 해돋이 그림에서 "인상"이란 말이 나온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마네를 인상주의의 아버지(현대미술의 창시자)라고 함은 마네가 사실주의 화풍을 따르지 않고 기존의 공식적인 화법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인상주의를 굳이 나누자면 마네는 구성과 형식에서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 그렸고, 모네는 색채의 표현에서 '빛이 보여주는 색채'를 그린 것으로 나눌 수 있겠다.
지금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루브르 미술관에 걸려있는, 많은 관람객들에게 인기 명화로 손꼽히는 마네의 그림이 그 당시에는 극심한 비난의 대상이었다.
조르주 바타유의 책 <마네>에서 작가연보와 번역작가의 해설을 빼면 실제 바타유의 논문은 88쪽이다. 그중에 <올랭피아 스캔들>이 20쪽을 차지하고 있으니 작가가 마네의 '스캔들'을 얼마나 깊이있게 다뤘는지 알 수 있다. 바타유가 옮겨놓은 몇 가지 <올랭피아> 혹평중에 하나를 인용한다. <프레스 La Presse>지에 실린 권위있는 비평가 폴 드 생빅토르의 비평이다.
"군중은 마치 시체 공시장으로 몰려들 듯 마네씨가 숙성시킨 '올랭피아 앞으로 몰려든다. 그토록 낮은 곳으로 내려간 예술은 심지어 비난할 가치조차 없다. '저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로 하세. 그냥 보고 지나가게.' 지옥의 밑바닥 가운데 하나를 가로지르며 베르길리우스가 단테에게 한 말이다." 71쪽
현재 루브르에 걸려있는 걸작 <올랭피아>가 첫선을 보인 날의 평이다.
(이 책에서는 마네의 작품사진들을 앞부분에 몰아놓고, 그 뒤로 글이 시작된다. 이 리뷰글에서는 독자들의 쉬운 이해를 위해 그림과 책에서 언급한 그림 관계 글들을 함께 놓았다.)
Olympia 1863. Oil on canvas. 130 X 190 cm. Paris, Musée d'Orsay
그동안의 나체 여인상들이 뽀얗고 부드럽고 리듬감있는 아름다움을 보여줬는데 마네의 <올랭피아>는 전혀 그렇지 않다. 곡선미를 살리기 위해 신체 비율까지도 무시했던 나신과는 다르다. 더구나 수줍은 표정도 아니다. 벌거벗은 채로 정면을 바라본다. 보이는 대로 그린 것이다. 올랭피아는 여자이지 여신이 아니다.
도발적 정확함 가운데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녀의 벌거벗음(실제로 육체의 벌거벗음과 일치하는)은 난파한 배, 빈 배에서 스며나오는 침묵처럼 그녀로부터 배어나오는 침묵이다. 그녀의 모습은 그녀의 현존의-부재의 단순함을 지닌 현존의- “신성한 끔찍함”이다. 78쪽
<올랭피아>는 현대시와 마찬가지로 그런 세계의 부정이다. 그것은 올림포스, 시편과 신화적 기념물, 기념물과 기념비적 규약들(이런 것들은 고대 도시국가의 옛 현실을 참조한다)의 부정인 것이다. 84쪽
흰색 시트와 거슬리는 파열을 일으키는 선명한 인물을 완화시켜주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어둠 속으로 들어간 흑인 하녀는 가벼운 분홍색 옷의 거슬림으로 환원되고, 검은 고양이는 어둠의 깊이를 이룬다……. 오로지 귀에 매달린 커다란 꽃, 꽃다발, 숄과 분홍색 옷의 요란한 색조만이 인물로부터 부각되며 인물의 ‘정물’로서의 성격을 드러낸다. 색채의 파열과 부조화는 어찌나 강력한지 나머지는 죄다 입을 다문다. 이제 시의 침묵속에 빠지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87쪽
The Old Musician, 1862. oil on canvas.
187.4 x 248.2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모델들은 막이 내려간 막간 휴식시간의 배우들처럼 무질서하게 배치되어있다. 내가 보기에는 화가가 일부러 모델들에게, 어느 정도는 우연히 나올 수 밖에 없는 포즈에서 멈춘채 더이상 꼼짝하지 말라고 요구했을 것 같다. 50쪽
보들레르는 마네의 스페인 취미에는 관심을 보였지만 정작 스페인풍 그림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Spanish Ballet 1862. The Phillips Collection, WashingtonD.C.
마네의 그림들은 대개 지나가는 스페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파리에서 그린 의아한 작품들이다. <스페인 발레>는 이 계열의 가장 매력적인 그림 가운데 하나인데, 마네는 거기서 ‘눈에 보이는 것’을 이국정취의 효과와 조화시키고 있다. 43쪽
Music in the Tuileries Gardens 1862. oil on canvas 76.2 × 118.1 cm Hugh Lane Gallery, Dublin
“한 미술 애호가는 격분한 나머지 <튈르리 정원 음악회>를 계속해서 전시장에 내버려두면 폭력행위도 불사하겠다고 위협했다.” 82쪽
마네에 대한 악평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풀밭위의 점심식사>에 대한 평은 가혹했다. 익명으로 잡지에 (가제트 드 프랑스) 실린 기사인데 바타유는 그 사람이 들라크루아라고 확신한다. 들라크루아가 죽은 후에는 그런 말이 더이상 나오지 않았으므로.
세상이, 시대가 변하여도 사람들은 사회 전반적인 변화의 흐름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마네가 활동하던 시대에도 그랬다. 선택적인 변화를 원했던 것일까?
부르주아 계급은 정치적 현실이 세 존재에게 더이상 견고한 기반을 부여하지 않길 바랐다. 대신에 비실재적인 예술이 세 존재의 전적인 영역으로 남길 원했다. 적어도 예술은 신성한 형태를 지닌 영광스러운 과거를 유지해야만 했던 것이다. 89쪽
(여기서 “세 존재”는 귀족, 왕족, 신을 가리킨다.)
Lunch on the Grass 1863. 264X208Cm. Paris, Musée d'Orsay
“마네씨는 세상의 모든 심사자에 의해 만장일치로 거부되는 데 필요한 자질을 갖고있다. 그의 눈에 거슬리는 배색…… 인물들은 그 어떤 절충으로도 순화되지 않을 날것의 강렬함으로 신랄하게 부각된다. 그는 결코 익을 것 같지않은 풋과일의 모든 떪음을 갖고있다” 85쪽
A Bar at the Folies-Bergère | The Courtauld
A Bar at the Folies-Bergère 1882. oil on canvas. 96X130Cm. Courtauld gallery, London
거대한 거울의 유희를 통해 반사되는 빛의 현혹이다. 전경의 술병, 과일, 꽃은 여자 바텐더 양편으로부터 직접 조명을 받고있다. 활기가 있는게 사실이나 어딘가 빛이 꺼진듯하다. 이마를 덮은 금발 아래의 시선은 피로와 권태로 흐릿하다. 그녀 앞쪽의 사람들은 실재하되 거울의 빛나는 몽환극 속에서 하나의 반영일 따름이다. 99-100쪽
무한한 빛의 축제로서 여성 바텐더의 무기력한 아름다움을 빨아들이지만, 음험한 도덕적 안이함이 그림 위로 무거운 침묵이 감돌게 한다. 110쪽
마네는 인상주의와 어느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는 인상주의자였다. 마네의 화실 카페 '게르부아'에는 드가, 모네, 르누아르, 세잔, 베르트 모리조... 인상파 동료 화가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마네에게 아틀리에서 벗어날 것을 권유했지만 마네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마네를 움직이게 한 것은 베르트 모리조였다. 마네는 바깥 공기와 밝은 색채를 받아들였다. <배 위에서>, <모네의 아틀리에>, <베네치아의 대운하> 그림에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빛이 반사하고, 그렇게 화실 밖의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이 책에서 바타유는 마네의 여러 그림들을 곁들이며 그 시대의 반응들을 옮겼고, 또한 자신의 감상과 비평을 기록했다. 글의 끝부분에 이르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바타유는 마네의 어떤 작품을 가장 좋아했을까? 첫째로 손꼽히는 수작으로 바타유는 무엇을 선택할까? 혹시 <말라르메의 초상> 아닐까?
<말라르메의 초상>에서 바타유의 감상평은 수사가 화려해진다.
https://www.wikiart.org/en/edouard-manet/stephane-mallarme-1876
Portrait of Stéphane Mallarmé. 1876, 27.2X35.7Cm. Musee d'Orsay, Paris
이 초상화는 회화의 행복한 우연 가운데 하나이다. 그것은 헛된 풍요를 벗어던진 회화의 깊이를 우리 눈앞에 펼쳐놓는다. 이 그림에서 비쳐보이는 것은 한 세기 전부터 아틀리에를 강박처럼 넘나들고 있는, 그러나 거의 항상 포착하기가 힘든 저 지고의 가치이다. 발레리는 그가 "마네의 승리"라고 부르는 것을 --먼저 보들레르를 통해, 그리고 이어서 말라르메를 통해 이룩된-- 시와의 만남과 결부시킨다. 승리는 바로 이 그림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가장 내밀한 방식으로. 114쪽
조르주 바타유의 책 <마네>는 작가 연보, 에드와르 마네에 관한 작가의 논문, 송진석 번역가의 논문 <조르주 바타유의 예술론-마네를 중심으로>로 구성되었다. 바타유에 관한 작가연보는 "연보와 사건"으로 편집되어 그 시대상황을 짯짯이 들여다 볼 수 있다. 이보다 더 세세한 연보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하여 그동안 보기좋은(?) 그림으로만 바라봤던 마네의 그림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됐다. 유명한 <올랭피아>나 <풀밭위의 점심식사>가 기존의 명화를 차용한 것인데 마네의 그림이 차용된 원작 이상으로 유명세를 탄 것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지나다니며 힐끔힐끔 바라보던 그림을, 눈으로 보던 그림을 철학으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추상적인 철학을 구체적인 그림으로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림보다 철학이 오히려 더 구체적인 것 아닌가! 조르주 바타유는 <마네>에서 “마네는 보이는 대로 그렸다”고 서술했는데, 그림이 보여주는 표면을 뚫고 그 속으로 들어가고, 그 이면까지도 훤히 보여주는 철학이야말로 그림보다 더 구체적인 표현인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카페 ‘게르부아’에 들어가 한 시대를 풍미한 여러 예술가들을 만났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파리의 밤거리를 배회하던 길(오웬 윌슨)이 1920년대로 들어가는 차를 탔듯이, 나는 조르주 바타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에드와르 마네의 ‘게르부아’에 들어가 레드와인에 취했다. 샹송을 들으며.
바타유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책말미에 쓴 그의 글을 옮긴다.
나는 마네를 통해 가장 비밀스러운, 가장 통찰하기 힘든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는 오늘 날 현대 회화가 우리 눈앞에 펼쳐놓고 있는, 온갖 놀라움으로 풍요로운 이 환상적 세계의 탄생을 알리기에 가장 마땅한 화가였다. 117쪽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