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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Jun 25. 2021

질 들뢰즈 <감각의 논리>

책 리뷰

감각의 논리(Francis Bacon Logique de la sensation, 1981)

질 들뢰즈 지음. 하태환 옮김. 2021.,03,31 민음사


이 리뷰에서 인용한 쪽수는 위의 책에 있는 쪽입니다.


이 책의 리뷰는 먼저 발행했던 "프란시스 베이컨 - 십자가 책형"의 뒤를 이은 글로서 프란시스 베이컨의 미술세계를 좀더 깊이있게 조명할 의도로 썼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의 저서 <감각의 논리> 책 리뷰를 쓴 것입니다.




들뢰즈Gilles Deleuze 1925 1  18  파리에서 보수적인 중산층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1995  11  4 일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20 세기 후반에 가장 영향력 있는 다작의 프랑스 철학자   사람이다. 들뢰즈는 철학을 개념의 생산으로 생각했으며 자신을 “순수한 형이상학자라고 했다. 다중성의 개념이 실체의 개념을 대체하고, 사건이 본질을 대체하고, 가상이 가능성을 대체하는 형이상학자이다.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Ecole Normale Supérieure (파리 고등사범학교)의 학생들인 푸코와 데리다같은 동료들이 "3 개의'H'(Hegel, Husserl, Heidegger)"에 집중한 시대에 들뢰즈는 경험주의와 Hume에 대한 글을 썼다. 일종의 도발이다.

철학이 아닌 분야까지 해박한 들뢰즈를 그의 동료  프랑수아 리요타르는바벨의 도서관이라고 불렀다.  미적분학, 열역학, 지질학, 분자 생물학, 인구유전학, 윤리학, 발생학,인류학, 정신 분석학, 경제학, 언어학, 그의 지식은 광범위했다. 미셸 푸코는 들뢰즈의 영향력은 철학을 뛰어 넘는다고 했다. 그의 작품은 건축, 도시 연구, 지리, 영화 연구, 음악학, 인류학, 젠더 연구, 문학 연구  기타 분야의 연구자들에 의해 승인되고 그의 개념이 사용되었다.

들뢰즈는 1968 년에 정치 활동가이자 급진적 정신 분석가인 가타리Félix Guattari를 만나 자본주의와 정신 분열증에 대한 책 <안티오이디푸스 Anti-Oedipus (1972)>와 <천개의 고원 A Thousand Plateaus (1980)>을 출간했다.


칸트는 미학을 두 부분으로 분리했다. 가능한 경험의 형태로서의 감성 이론 (순수 이성 비판의“초월적 미학”)과 실제 경험에 대한 반성으로서의 예술 이론 (“미적 판단의 비판”)으로.

들뢰즈는 미학의 이 두 부분은 재결합한다. 예술의 가장 일반적인 목표가 "감각을 생성"하는 것이라면 감각의 유전적 원리는 동시에 예술 작품의 구성 원리이다. 반대로 이러한 감성의 조건을 가장 잘 드러 낼 수 있는 것은 예술작품이다. 따라서 들뢰즈는 비평가가 아닌 철학자로서 예술에 대해 글을 쓴다. 독자는 그의 글을 초월적인 감각 영역에 대한 철학적 탐구로 읽어야 한다.



이 책에서 들뢰즈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그의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베이컨의 작품과 예술의 본질에 대한 깊은 생각을 보여준다.

191쪽의 얇은 책이지만 결코 쉬운 내용은 아니다. 들뢰즈의 글은 원래가 매우 암시적이고 신조어로 가득차 있고, 독자가 계속해서 자신의 철학적 가정을 다시 생각하도록 강제하는 스타일이다.

게다가 번역의 난해함인지 나의 한글 해독능력의 부족인지, 어쨌든 울퉁불퉁 자갈길을 걷는 느낌이다. 번역이 엉망이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우리글로 대치하기 참 난감한 몇 단어들의 번역 단어들이 너무 어색하고 생소해서 어리둥절할 때가 가끔 있다.


<감각의 논리>가 처음 접하는 들뢰즈의 책이라면 우선 들뢰즈(Gilles Deleuze)의 철학 사상을 알고 시작하는 것이 책 읽기에 도움이 된다.

들뢰즈는 여러분야에서 철학적인 개념을 논증했는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그의 탈근대적 사유를 들 수 있다. 철학의 근대적 사유가 표상적, 동일성, 본질주의라면 현대철학은 비표상적, 차이, 잠재성, 유동성의 철학이다. 들뢰즈가 존재론에서 강조한 것은 '차이의 철학'이다. 존재의 원천, 인식의 근거는 곧 '차이'이다. 들뢰즈는 생성존재론 개념에서 존재는 무한생성하며 연속적인 변주를 일으킨다고 역설한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무한 생성과 연속 변주가 바로 들뢰즈의 존재론이다.


<감각의 논리>는 일련의 철학적 개념을 만들어낸다. 각 개념은 베이컨 그림의 특정 측면과 관련이 있지만 "감각의 일반적인 논리"에서도 자리를 차지한다. 들뢰즈는 공간에 대한 집약적인 개념과 가상의 시간 개념에서 감성의 조건을 찾아내는데 들뢰즈는 이러한 감각의 효과를 감수성의 “초월적인 운동”이라고 말한다. 

들뢰즈는 인물의 고립, 살의 변형, 복잡한 색상 사용, 우연의 방법, 삼면화 형태의 사용 등 베이컨의 스타일을 분석한다. 여기에서 들뢰즈는 '장기가 없는 몸'과 같은 그의 잘 알려진 개념을 창조하고, 그림에 대한 자신의 접근 방식을 현상학 및 예술 역사 전통의 접근 방식과 대조한다. 베이컨의 작업을 감각의 '논리적'개념에 연결하고 이 논리를 조사하면서 베이컨과 세잔, 벨라스케스, 카임 수틴과 같은 과거 화가들과의 결정적인 관계를 탐구한다.

이미 들뢰즈의 철학을 접한 독자들은 다이어그램, 표정, 차이와 반복, 햅틱 공간과 같은 익숙한 개념을 접하게 될 것이다.


책은 17장(위의 사진)으로 나누어 각 표제어에 대한 설명을 한다.

1장~5장은 베이컨 그림의 3요소인 형상, 윤곽, 아플라를 구분하고, 그림을 예로 들어 설명을 한다. 세 가지 요소는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짚어본다.


들뢰즈는 구상과 형상을 구분하고 있다. 구상이 현실성의 층위에서 형성된 것이라면, 형상은 잠재성의 층위에서 생성중인 것이라는 논지이다.

회화란 재현할 모델도, 해주어야  스토리도 없다. 그런데 회화가 구상적인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가지 방법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하나는 추상을 통해 순수한 형태를 지향하는 , 다른 하나는 추출 혹은 고립을 통해 순수하게 형상적인 것으로 향하는 것이다. 12-13


베이컨의 회화 -조각을 닮은 베이컨의 회화는 형상(figure), 윤곽(contour), 아플라(aplat)의 요소로 이뤄졌다. 형상은 대부분 뒤틀리고 왜곡되고 엉켜진 얼굴과 인물로 그려져있고, 윤곽은 의자나 침대같은 사물 또는 원이나 큐브형태로 표현한다. 넓은 단색으로 처리된 아플라의 색감은 기괴한 형태의 배경으로 잘 어울린다.

사실 윤곽은 장소로서 물질적 구조에서 형상으로, 형상에서 아플라로라는 두 방향으로의 교환 장소이다. 윤곽은 일종의 이중적 교환이 일어나는 동식물의 막과 같은 것이다. 이 방향에서 저 방향으로 무언가가 통과한다. 회화가 서술할 것은 아무것도 없댜하여도, 회화가 해줄 스토리는 아무것도 없다하여도, 그래도 회화의 기능을 정의할 무언가가 발생한다. 23쪽


4장 신체, 고기와 기, 동물-되기. "동물-되기"라는 말은 얼마나 낯선 표현인가. 들뢰즈에 의하면 이것은 그가 강조하는 "차이와 생성의 변증법"의 핵심이다. 들뢰즈의 존재론의 핵심은 "차이"라고 언급했듯이 "동물-되기"는 "하강의 변증법" 이미지이다. 만물은 보이든 안 보이든 흐르고 있고, 그 흐름은 "되기"를 이뤄낸다. 움직인다는 것이다. 베이컨 그림에서 보여주는 흘러내리는 형상이다.

신체는 형상이다. 아니 형상의 물적 재료이다. 형상의 물적 재료를 다른 편에 있는 공간화하는 물질적 구조와 혼동해서는 안된다. 신체는 형상이지 구조가 아니다. 31쪽

베이컨의 회화가 구성하고 있는 것은 인간과 동물사이의 형태적인 상응 대신에, 인간인지 동물인지 '구분할 수 없고 명확히 알 수 없는 영역'이다. 32쪽

윤곽은 형상과 구조 사이의 두 방향에서 연락을 보장해 주는 삼투막이며 그것이 됨을 그만두지 않는다.

그림 속에서 이러한 모든 움직임들이 공존, 그것은 바로 리듬이다. 45쪽


6장 ~8장은 감각의 층위들과 히스테리, 회화의 힘에 관한 서술이다. 회화 표면에서 배경의 역원뿔로 들어간다. 배경은 가만있지 않는다. 움직임의 리듬이 형상들을 압박한다. 이를 "히스테리한 힘"이라고 한다.

<감각>은 무엇일까? 감각을 어떻게 정의하면 좋을까? 베이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감각은 하나의 '범주'에서 다른 범주로, 하나의 '층'에서 다른 층으로, 하나의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이동하는 것이라고 항상 말한다. 그 때문에 감각은 변형의 주역이고 신체를 변형시키는 행위자이다. 49쪽

발레리 Paul Valery는 감각을 이렇게 정의했다.

감각이란 이야기할 스토리를 통해 우회하거나 번거로움을 거치지 않고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49


여러 다른 범주의 여러 다른 감각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유일하고 동일한 감각의 여러 다른 범주들이 있다. 감각은 구성적 층리의 차이와 여러 다양한 구성적 영역들을 포함한다. 50쪽

베이컨의 작품에서는 닮은 듯 닮지 않은 감각이 보인다. 그 감각에서 우리는 형상, 윤곽, 아플라가 현실화되거나 잠재화하는 움직임, 리듬을 볼 수 있다. 베이컨 회화의 형상은 곧 감각이고, 이 감각 덩어리는 두뇌를 거치지 않고 내부의 신경다발에 직접 닿는다. 들뢰즈는 자신의 <감각>에 대한 철학개념을 정립시키기 위해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을 불러온다.

하나의 색, 맛, 촉각, 냄새, 소리, 무게 사이에는 감각의(재현적이 아닌) '신경흥분적인' 순간을 구성할 존재론적인 소통이 있을 것이다. 55쪽


7장의 소제목은 <히스테리>다. 정신병리학 공부도 아닌데 미술 이야기에 갑자기 등장하는 제목은 뜻밖이다. 히스테리의 사전적 정의를 보자. "정신적 원인으로 운동마비, 실성, 경련 따위의 신체 증상이나 건망 따위의 정신 증상이 나타난다." "정신적 원인에 의해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비정상적인 흥분 상태를 통틀어 이르는 말."

회화에서도 히스테리가 발견된다는 말인가?

앞서 언급했듯이 베이컨의 그림은 우리의 신경에 직접 작용하는 감각이다. 이를 두고 들뢰즈는 '신체의 히스테리 형식'이라고 부른다. 베이컨의 회화는 하나의 형상이 매 순간마다 다른 감각을 보여준다. 형상이 여러 개로 분류된다는 게 아니라, 하나의 형상이 계속 경련을 일으킨다.

회화는 재현 아래서 재현을 넘어 직접 현재함을 추출하기를 제안한다. 색의 시스템 그 자체도 신경 시스템 위에 직접 작용하는 행위 시스템이다. 이것은 화가의 히스테리가 아니고 회화의 히스테리이다. 65쪽


뮌헨에 있을 때 자주 미술관에 드나들었다. 원화의 매력에 푹 빠져있었다. 중세, 근대, 현대, 동시대 미술을 한 도시에서 다 감상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미술사에 관심이 높아졌다. 자주 가던 렌바흐 하우스에서 재현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폴 클레Paul Klee의 그림을 마주했다. 클레는 회화를 이렇게 정의한 화가이다.

"보이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한다."

회화는 산이 굴곡된 힘이나 사과가 싹트는 힘 혹은 풍경의 열적인 힘 등을 보이도록 해야한다. 70쪽

회화는 과연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가? 보이는 방법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은 화가의 도전이다. 베이컨 회화에서 보이는 힘을 예로 들어보자. 여러 작품에서 보여준 '외침'의 힘이다. 베이컨은 공포보다는 외침을 그린다. 그려진 '외침'에서 보이지 않는 힘이 보인다.


미래의 힘을 보이도록 하기 위한 기능만을 가진 사람으로서 소리지른다. ~~~

~앞에서 혹은 ~에 대해서 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에게 소리친다.' 외침의 감각할 수 있는 힘과 외치도록 한 것의 감각할 수 없는 힘의 결합을 환기하기 위하여. 74쪽

Study after Velazquez's Portrait of Pope Innocent X. 1953..Oil on canvas. 153X118Cm.

Des Moines Art Center, Des Moines, Iowa


Portrait of Innocent X , c1950, oil on canvas. 141 cm × 119 cm . Galleria Doria Pamphilj Rome

https://en.wikipedia.org/wiki/Portrait_of_Innocent_X 


<교황 이노센트 10세>는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베이컨이 모작한 것이다. 물론 원작과는 달리 베이컨 특유의 새로운 표현이다. 원작은 근엄한 교황의 모습이다. 그러나 날카로운 눈매는 그림에 긴장감을 준다. 베이컨의 그림에선 교황의 외침이 보인다. 가슴에서 타오르는 보라색 불길, 벌어진 입과 흰 이빨은 노란 틀 속에 갇혀 분노인지 공포인지 알 수 없는 비명소리를 낸다. 보는 사람은 뇌를 통하지 않고 신경계를 통해서 직접 비명을 들을 수 있는 그림이다. 감각을 그린 것이다.


9장 ~11장은 삼면화가 무엇인지, 그리기 이전의 회화 -시각적인 것과 손적인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들뢰즈는 베이컨 회화의 리듬을 결정하는 힘은 '하강'이라고 한다. 모든 감각은 흘러내리는 살, 뼈에서 흘러내리는 살에서 나온다. 한 층위에서 다른 층위로 하강하며 리듬에 의해 감각이 발달한다.

예를 들자면, 아래 그림은 여러 다른 층위의 감각들이 짝짓기를 이룬 회화이다.

https://www.moma.org/collection/works/79204   

Painting, 1946. Oil and pastel on linen. 197.8 x 132.1 cm. MoMa


우산 아래 남자는, 위로부터 아래로의 감각의 이동(우산 위의 고기)과 아래에서 위로의 감각 이동(우산에 의해 찢어진 머리)에 띠르면 단순한 형상이다. 하지만 이것은 또한 떨어지는 무시무시한 미소가 증명하듯 머리와 고기 속에서 감각들이 서로 꽉 엉키는 것에 따르면 짝지어진 형상이다. 80쪽


11장 말미에는 베이컨 회화에서 형상을 얻게된 과정을 묘사한다. 첫 단계는 구상적인 것의 배제이다. 구상적인 것 위에 행해진 그라프들(솔, 스펀지, 헝겊으로 지우거나 물감을 흩뿌린 흔적)로 구상을 없애버렸다. 두번째 단계는 형상적인 것의 구성이다. 첫 단계로 구상적인 것을 제거한 후에 형상을 그리는 것이다. 들뢰즈에 의하면 현실성의 층위 위에 잠재성을 도입하는 것이다.

화가가 하고자 하였던 것과 한 것 사이에 필연적으로 어떻게가, '어떻게 할까'가 있었다. (첫 번째 구상인) 가망성이 있는 시각적 총체가 자유로운 손적인 터치들에 의해서 분배되었고 변형되었다. 이 손적인 터치들은 시각적 총체 속에 다시 주입되어 (두 번째의 구상인) 가망성이 없던 시각적 형상을 만든다. 그리는 행위란 시각적 총체 속에 주입된 자유로운 손적인 터치들의 통일성이며 그들의 반발과 재주입의 조화이다. 이 터치를 통과함으로써 되찾은, 재창조된 구상은 출발시의 구상과 닮지 않게 된다. 그로부터 베이컨의 지속적인 공식이 나온다. 닮도록 하여라. 단 우발적이고 닮지 않는 방법을 통해. 113-114쪽

'손적'이란 단어. 이렇게 어색한 번역어들이 가끔 보인다. 프랑스어 manuel인데 '손으로 하는'것을 뜻한다. 이것을 '손적'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12장 ~13장은 '디아그람'에 대한 내용, 더하여 '유사적 디아그람'을 이야기한다. 베이컨 회화의 특징인 '닮지않은 닮음'을 규명한다. 추상회화와 추상화가들, 추상표현주의 회화와 화가들의 작업방식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12장을 시작하면서 당황했었는데 바로 '돌발표시'라는 어휘 때문이다. 디아그람을 '돌발표시'로 번역했는데 낯설었다. 이 책에서 의미하는 '디아그람'은 차이와 반복에 의해 돌발적으로 생겨났다 사라지는 리듬을 뜻하므로 '돌발표시'라는 어휘를 사용했을 것이다. 그냥 '디아그람'이라고 썼어도 괜찮았을 것을.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디아그람은 무엇인가. 나는 도표와 그라프의 뜻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니 '돌발표시'라는 어휘에 당황할 수 밖에.


따라서 돌발 표시는 그림 전체를 갉아 먹지 말아야 하고 공간과 시간 속에서 제한되어 있어야 한다. 돌발 표시는 생산적이고 통제되어야 한다. 격렬한 수단들은 고삐가 풀리지 말아야 하며 필수적인 대재난은 전체를 다 삼키지 말아야 한다. 돌발 표시는 사실과 가능성이지 사실 그 자체는 아니다. 모든 구상적 여건들이 사라져 버려서는 안된다. 특히 새로운 구상, 형상의 구상은 돌발 표시로부터 빠져나와야 하고, 감각을 명확함과 엄밀함으로 데리고 가야 한다. 127-128쪽

들뢰즈에 의하면 회화에서 신체적인 것과 잠재적인 것으로 이어가고 있는 리듬이 수없이 많은 선들로 촘촘히 쌓여있으므로 그 리듬 덩어리를 '디아그람'으로 정의한 것이다. 이는 미셀 푸코의 <감시와 처벌>에서 빌려온 개념이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감옥을 판옵티콘으로 서술하는데, 판옵티콘이란 무형의 힘들이 서로 연결되고 관계맺는 형태를 표현한 것이다. 우리가 아는 감옥, 학교, 병영, 병원의 설계도가 유사하고, 그 판옵티콘 속에서 교본에 의해 행해지는 모든 행위들을 '디아그람'이라고 명명했다.

https://brunch.co.kr/@erding89/203  <감시와 처벌> 책 리뷰.


베이컨이 붓으로 쓸어내리고 헝겊으로 뭉개는 방법으로 디아그람을 표했다면 다른 화가의 디아그람 표현 방법은 어땠을까? 빈센트 반 고흐를 예로 들어보자. 누가 뭐래도 고흐의 '짧은 붓질'이 고흐의 디아그람이다. 짧은 붓질은 나무들을 비틀어 흔들고, 땅을 움직이게 하고, 하늘을 꿈틀거리게 하는 디아그람이다.


14장 ~17장은 미술사를 정리하며 색채주의와 베이컨을 재정립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베이컨의 회화의 기본 구조는 형상, 윤곽, 아플라로 이루어졌다. 윤곽을 사이에 둔 형상과 아플라(배경)의 관계, 기하학적 통합은 이집트 미학이 근원이다. 저부조를 만들어내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연상시킨다.

이집트적 구도는 회화적 구도이기보다는 차라리 저부조적  배치이다. 따라서 리에글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1)저부조는 눈과 손의 가장 엄밀한 결합을 만들어 낸다. 왜냐하면 저부조는 평평한 표면을 요소로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평평한 표면은 눈으로 하여금 촉각처럼 움직이도록 허용해 준다. 더 나아가서 눈에게 촉각적인 혹은 눈으로 만지는 기능을 부여하고 명령한다. ~~~ 2)이러한 눈으로 만지는 기능을 취한 것은 바로 면전적이고 가까이 밀착한 시각이다. 왜냐하면 형태와 배경이 서로서로에게 그리고 우리 자신들에게 동일하게 가까운, 표면이 동일한 면 위에 있기 때문이다. 141쪽


햅틱(haptic/ haptique)개념이 거론된다. 햅틱은 '촉각의'라는 뜻인데 '촉시적(觸視的)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책에는 ‘눈으로 만지는 것'으로 번역되어있다.

베이컨의 회화는 분명히 평면화이다. 보는 사람은 원근법으로, 명암대비로 입체감을 느낄 수 있는데, 이 책에서는 베이컨 그림의 입체감을 어떻게 설명하는지 보자.

눈으로 만지는 세계와 그 의미를 차갑고 따뜻함의 기능에 따라, 팽창과 수축의 기능에 따라 구성하는 것은 색이자 색의 관계들이다. 확실히 형상을 변조하고 아플라 위로 펼쳐지는 색은 돌발 표시에 종속되지 않지만 돌발 표시를 통과하고 그로부터 나온다. 사용된 돌발 표시는 변조기처럼 행세하고, 따뜻함과 차가움, 팽창과 수축의 공통의 장으로 행세한다. 전체 그림 속에서 색의 만지는 의미는 사용된 돌발 표시와 그의 손적인 침입에 의해 가능해진다. 158쪽

삼차원을 이차원으로 환원하고, 이차원 속에 삼차원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차원인 채로 형상이 입체감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색의 특이한 사용법으로 만드는 것이다. 들뢰즈는 이것을 '돌발표시'가 '변조기'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디아그람은 변조기(modulator/ modulateur)가 된다는 것이다.

색채의 변조에 의해 동일한 평면 위에 있는 구성 요소들이 모두 독립해 있고, 형상은 별도의 다른 입체감을 가지고 있다.

색채주의는 시각의 특별한 의미를 도출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빛-시간의 광학적 시각과는 다른, 색채-공간의 눈으로 만지는 시각이다. 뉴턴적인 광학적 색채의 개념에 반대하여, 괴테는 눈으로 만지는 이러한 관점의 일차적인 원칙들을 도출하였다. 159쪽

색채주의의 어휘들, 즉 차고 따뜻할 뿐만 아니라, '터치' '생경한' '생생하게 포착하다' '밝히다' 등은 눈의 이 만지는 힘을 증명한다.(반 고흐가 말하듯이 "눈을 가진 모든 사람이 거기서 명학히 볼 수 있는" 그러한 시력을 말한다.) 160쪽

색채주의(변조)는 고려된 색들에 따라 변하는 팽창과 수축의 관계로만, 따뜻하고 차가운 관계로만 구성되지 않는다. 색채주의는 색의 체제로도, 이 제재들의 관계로도, 순수 색조와 혼합 색조 사이의 조화로도 이루어진다. 사람들이 눈으로 만지는 시각이라고 부르는 것은 엄밀히 말해 색들의 이러한 의미이다. 이 의미 혹은 이 시각은 회화의 삼요소인 골격, 형상, 윤곽이 색채 속에서 소통하고 수렴함에 따라 더욱더 전체성과 관계한다. 172쪽

화가가 눈으로 그리지만, 눈으로 만지는 한에서만 그린다고 말할 것이다. 176쪽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는  회화에 있어서 새로운 감각의 발생과정을 설명한다. 들뢰즈가 넘어서고자 하는 칸트의 '초월철학'의 그림자가 보인다. <감각의 논리>를 통하여 칸트의 예술론과 감성론의 분열을 재통합한다. 예술적 감각이 사유를 발생시킨다. 회화가 생성한 새로운 감각을 통하여 자신의 철학적 개념을 펼쳐낸다. 회화적 실험을 한 것이다.

회화의 감각은 철학적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철학이 만든 개념은 회화의 개념으로서의 감각의 논리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들뢰즈에게 중얼거린다.

"질! 당신은 베이컨의 그림은 뇌를 거치지 않고 신체에, 신경에 직접 작용한다는 논리를 펼쳤지요. 예, 맞습니다! 나도 그림을 해석하기 이전에 그냥 감각으로 확 느꼈거든요. 그러고 끝이면 편했을 텐데, 쓸데없는 고생 안했을텐데... 그런데 나는 '신체에 직접 작용한다'는 그 말을 이해하기 위해 평소보다 더 많이 뇌를 사용했답니다. 뇌 주름의 갈피갈피 골짜기를 헤매며 <감각의 논리>를 이해하려고 엄청 애를 썼다구요."


베이컨은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같은 계획을 세우고 그림을 그렸을까? 베이컨은 들뢰즈의 논증 이전부터 그림을 그려왔다.

들뢰즈가 그의 철학적 개념 <감각>을 논증하기 위해서 베이컨의 그림을 이용한 것일까? 이미지는 어떠한 설명 글보다 더 쉽게 기억되고 오래 남는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회화를 감상하는 관람객들은 과연 그 그림의 표면을 뚫고 들어가 들뢰즈가 펼쳐놓은 <감각의 논리>를 발견할까? 감싱자는 그림을 보는 즉시 그 앞에 더 머물 것인가 다음 그림으로 옮길 것인가를 결정한다. 이론보다는 감각이 먼저이다.


질 들뢰즈의 철학개념과 프란시스 베이컨의 회화가 어깨동무를 하고 등장하는 책 <감각의 논리>는 들뢰즈가 베이컨을 미술계에 우뚝 세우기 위해 쓴 책은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독자들은 들뢰즈의 철학개념을 확실히 이해하게 되고, 더불어 베이컨의 괴기스러운 그림도 이해하게 된다. 베이컨이 들뢰즈의 이론에 공감했든 안했든 들뢰즈는 베이컨을 미술사의 흐름에서 뛰어난 존재로 만들었다.

들뢰즈의 생성(devenir)존재론은 기존개념을 벗어나 많은 수정을 하고 새롭게 구축하여 다른 개념들과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사유방식이다. 베이컨의 회화는 탈영토화(노마드적 사고)를 통해 재영토화를 거듭하고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점이 들뢰즈와 베이컨이 어깨동무를 한 채 이 책을 이끌어간 것 같다.


<감각의 논리>에 대해선 자신없지만, 오래 살아온 경험으로 하나 확신하는 것은 있다. 뇌가 인지, 분석, 지령하기 전에 몸이 먼저 알아차리는 경우가 참 많다는 것을! 몸에 새겨지는 감각이 있다는 것을!




길고 지루한 이 리뷰를 다 읽은 독자는 이 글에서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눈치챘을 것이다.  베이컨을 조명하는데 중요한 '삼면화'의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책에 서술한 정도만 들여다봤다. 좀더 깊이있는 연구로 '삼면화'를 설명하면 좋겠지만 책의 리뷰로서만 그쳤다.

리뷰에 누락된 부분은 미술사조를 가로지르는 '추상'과 '추상표현주의'를 다루지 않았다는 것이다. 책의 뒷부분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썼지만, 이 리뷰에서는 프란시스 베이컨에 집중했다. 아쉬운 독자들은 책을 읽어보시면 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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