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양산 통도사, 경주 양동마을, 포항 구룡포, 포항 호미곶
불교 교리는 난해하고 광대하여 조형물을 만들고, 독특한 건축형식을 창조해 신앙의 대상물과 상징으로 대중 포교의 방편으로 삼았다. 불교건축물은 그 자체로 입체화된 교리이고 신앙의 대상물이고 오브제이다.
신라->고려->조선으로 이어지며 변화가 오고, 여러 개의 불전으로 이뤄진 하나의 사찰은 축소 통합된 우주를 의미하게 되었다.
통도사
경남 영축산 아래 통도사는 금강계단에 부처의 진신 사리를 봉안한 불보佛寶 사찰로 대웅전에 불상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金欄袈裟-금실로 수놓은 가사)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삼보 가운데 가장 으뜸인 불보사찰의 위치를 갖게 되었다. 창건은 신라 선덕여왕 때 했는데, 현재의 가람구조는 14세기 고려말에 극락전과 약사전 등 예불용 건물을 건립해서 거의 완성된 것이다. 다시 조선시대 재건되었고, 각기 다른 정토신앙, 미륵신앙, 사리신앙을 보여주는 복합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불교에서 삼보三寶는 불보佛寶, 법보法寶, 승보僧寶를 가리킨다. 불보사찰 통도사는 중생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곳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고려대장경이 보관돼 있는 해인사는 법보사찰이다. 고승을 많이 배출한 송광사는 승보사찰이다.
대웅전은 실제로 부처님이 살아 숨 쉬고 계시는 공간이기 때문에 다른 사찰의 대웅전과는 다른 종교적 상징성을 갖게 된다. 따라서 정자형丁字形 법당 사면에는 각각 다른 이름의 편액이 걸려 있는데, 동쪽은 대웅전大雄殿, 서쪽은 대방광전大方廣殿, 남쪽은 금강계단金剛戒壇, 북쪽은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 쓰여 있다. 대웅전의 합각지붕은 앞면 뒷면 옆면이 모두 정면처럼 보이는 모습이 특징이다.
각 불전에 모신 부처나 보살은 각기 고유한 신앙의 공간을 형성하며 독립된 소우주를 이룬다. 수십개의 불국토를 상징하는 축약된 우주이다.
동서로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에 이르는 하나의 축과, 독립된 것처럼 보이는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 세 개의 영역이 15개의 건물과 20개의 승소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상로전은 대웅전과 금강계단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대광명전을 중심으로 하는 중로전에는 용화전, 관음전, 개산조당 등의 전각이 있다. 하로전은 영산전, 극락전, 약사전 등 정토 신앙과 관계 깊은 전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범종梵鐘은 범종각閣에 있지만, 2층 누각으로 지으면 범종루樓라 한다. 범종각에는 범종만 있기도 하지만, 규모있는 사찰에서는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板등이 범종과 합하여 '불전사물佛殿四物'이라는 이름 아래 함께 배치되기도 한다. 법고는 소가죽으로 만드는데 축생畜生의 제도를 위하여 친다. 목어는 나무로 만든 물고기로 물 속에 사는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이다. 불교의 여러 의식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목탁은 목어가 변형된 것이다.
영축산은 부처님 당시 마가다국 왕사성의 동쪽에 있던 산이다. 석가모니가 <법화경法華經>을 설한 곳으로 유명하며 수행자와 독수리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어서 영축산靈鷲山이라 불렸다. 산의 모양이 불법을 직접 설하신 인도 영축산과 통한다(此山之形 通於印度靈鷲山形)해서 통도사라 한다.
또한 “승려가 되려는 사람은 모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아야 한다(爲僧者通而度之)”는 의미에서 통도사라 한다.
그리고 “모든 진리를 회통하여 중생을 제도한다(萬通法度衆生)”는 의미의 통도通度는 모든 방편을 동원하여 중생들을 행복하게 하고자 하셨던 부처님의 자비사상을 잘 표현한 이름이다.
산문(山門) 체계
산문 체계는 단계적으로 깨우쳐 나아가는 논리를 조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동일한 산문이 단순하게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논리를 점증시켜가는 여러 개의 산문이 연속된다.
일주문一柱門 ; 사찰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 문의 기둥이 한 줄로 늘어서 있어서 지은 이름이다. 신성한 곳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세속의 번뇌를 깨끗이 씻어내고 한 곳으로 마음을 모으는 일심一心을 뜻한다.
천왕문天王門 ; 불법을 수호하는 외호신인 사천왕을 모신 건물이다. 일주문을 통과하면서 지닌 구도자의 일심이 한풀 꺾이려 할 때, 수미산 중턱에 자리한 사천왕이 힘을 내어 수미산 정상 까지 오르도록 구도자를 독려한다. 그런 뜻으로 천왕문은 일주문과 불이문의 중간에 있다.
불이문 不二門 ; 천왕문 다음에 있는 불이문은 번뇌의 속된 마음을 돌려서 해탈의 세계에 이르게 한 다하여 해탈문解脫門이라고도 한다. 궁극적으로 번뇌와 해탈이 둘이 아니기 때문에 불이문이라고 한다.
경주 양동마을
경주 양동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의 두 가문에 의해 형성된 유서 깊은 양반마을로, 안락천이 흐르는 설창산 남쪽 자락에 자리한다.
양동마을에서는 조선시대의 양반문화와 농경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집들은 지형에 순응해 등고선과 나란히 앉아있다. 안 길은 골짜기를 따라 경사를 이루고, 안 길과 집을 잇는 샛길은 등고선에 비스듬하게 완만하게 거슬러 뻗어있다. 양반의 한옥은 5-7부능선에 자리잡고, 노비의 초가는 그 아래에 위치한다. 주요 전통가옥은 대개 아담한 안마당을 둘러싸는 ㅁ 자형 구조로 안채는 안마당을, 사랑채는 바깥마당을 향함으로써 남녀의 공간을 자연스럽게 나눈다.
꼼꼼히 살펴보면 설창산 산줄기가 勿자 모양의 능선을 이루고 골짜기마다 자리한 거림居林, 안골(內谷), 물봉勿峰, 갈곡 같은 작은 마을이 모여 큰 마을을 이룬 모습이다. 본래 이 작은 마을들을 이어주는 길은 관가정觀稼亭에서부터 서백당書百堂과 무첨당無忝堂 앞을 지나 갈곡 쪽으로 뻗은 좁은 길이다. 이후 경사지마다 집들이 지어지면서 샛길들이 뻗어나가 복잡한 마을 길의 체계를 이루었다.
양동마을 향단은 이언적이 노모를 위해서 지은 집인데, 생활하기 편하도록 부엌이 가까운 일자형 건축이다. 지금은 출입통제되어 내부 촬영은 할 수 없다.
포항 호미곶
일출을 보려했으나 날씨가 흐려서 만족할만한 모습은 아니었다. 우리가 간 날 해뜨는 시각은 6시56분. 생각보다 늦은 시간이어서 새벽부터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늙은 우리 부부에게 그 시간은 깨어난 지 한참 후니까 말이다.
3월초, 이 기간은 매화를 빼고 꽃맞이는 이른 시기이다. 차창 밖의 풍경에 봄빛은 없었지만, 마음으로 보는 눈에는 봄빛이 보였다. 모두가 깨어나는 시기. 상춘객들이 없으니 사찰에도 바닷가에도 한가해서 좋았다. 관광지 분위기가 괴로운 나로서는 꽃이 아직 피지않은 이 시기가 오히려 다니기 좋은 시기이다. 옆지기가 지금 열중하는 소설쓰기에 영감을 얻을 필요가 있는 작은섬은 4월초에 가기로 했다. 등대관찰도 필요하다는데 포항에 있는 등대박물관에서 열심히 관람했다.
막내 아들네
브런치 마지막 포스팅을 보니 '손녀의 초등학교 졸업식'이다. 이어서 '손녀의 초등학교 입학식' 이야기다. 3월2일 막내 손녀 초등학교 입학식에 가려고 길을 나섰다. 같은 날 손녀의 중학교 입학식도 있었지만 학부모 참석하지 말라는 통지를 받았다. 한 곳만 가도 되니 마음 편히 부산에 가기로 했다. 다녀오는 길에 통도사와 양동마을을 둘러볼 계획을 세우고.
어느 집이든 자식 귀하지 않은 집이 있을까. 우리 막내 손녀도 귀한 아이다. 특별한 신분이라는 뜻이 아니라 오래 기다리던 중 어렵게 얻은 아이라 특히 더 귀하다는 것이다. 결혼 후 8년만에 만난 천사! 그 아이가 자라서 초등학교 입학이라니 축하해야지. 손녀가 입학하는 것을 축하한다기 보다는 이만큼 키우느라고 애쓴 아들 며느리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얼마나 오랜동안 눈물바람을 날렸던가. 다행히 건강한 아이가 태어났고, 건강하고 똑똑하게 자라서 드디어 학교를 다니기 시작한다. 초등학생이 되어서 사용할 책상도 생겼다. 우리 부부는 손녀방에서 지나온 모든 세월에 감사하며 편안하고 포근한 밤을 보냈다. 아침에 눈을 뜨고 블라인드를 걷으니 아파트 빌딩 사이로 바다가 보였다. 시야가 탁 트이지 않았지만 거실 전면이 바다를 향해 있지 않은 것이 오히려 안정적인 분위기이다.
아름다운 꽃 사진을 올릴 수 있는 시기는 4월초 남쪽 아주 작은 섬 여행 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