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양동마을
이전 발행한 "짧은 여행"글에 양동마을 사진을 올렸더니 구독자의 댓글에 '무첨당' 이야기가 있어서 추가로 또 씁니다. 오래전 2015년에 리움 기획전 "한국 건축 예찬- 땅의 깨달음"에서 전시 설명을 한 기억을 소환하였으나 기록하려니 빈약합니다. 관심있으면 무첨당은 언제라도 가 볼 수 있지만, 유첨당은 볼 수 없는 곳이지요.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무첨당無忝堂
보물 제411호, 1964년 보물지정.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안길 32-19
양동마을 이언적 종가 무첨당은 제사를 지내는 제청의 기능이 강했으며, 독서와 휴식, 손님 접대와 문중 회의(門會)를 했던 큰 사랑채다. 종갓집은 크게 동쪽에 살림채인 본채, 서쪽에 사랑채이자 별당격인 무첨당, 사당의 3개의 영역으로 되어 있다. 이 가운데 사랑채에 해당하는 것이 무첨당이다. ‘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하다'는 의미로 무첨당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언적의 손자 이의윤李宜潤(1564~1597)의 호에서 당호를 따왔다고 한다.
이언적李彦迪(1491∼1553)은 조선시대 성리학자이며 문신이었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에 등재된 무첨당 설명 인용;
"조선시대 성리학자이며 문신이었던 회재 이언적(1491∼1553)선생 종가의 일부로 조선 중기에 세운 건물이다.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로 건물 내부를 세 부분으로 구분하여, 가운데 3칸은 대청이고 좌우 1칸씩은 온돌방이다. 대청은 앞면 기둥 사이를 개방하고 누마루에서도 대청을 향한 쪽은 개방되어 있으며, 뒤쪽과 옆면은 벽을 쳐서 문짝을 달았다. 평면은 ㄱ자형을 띠고 있고 둥근기둥과 네모기둥을 세워 방과 마루를 배치하고 있다. 이 건물의 기능은 상류주택에 속해있는 사랑채의 연장 건물로 손님접대, 쉼터, 책읽기를 즐기는 따위의 여러 용도로 쓰이던 곳이다.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솜씨를 보여주고 있으며 별당건축의 기능에 충실하게 지은 건축물로 회재 이언적 선생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
유첨당有添堂
유첨당은 실제 있는 건물은 아니다. 양동마을의 무첨당無忝堂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전시작품이다.
양동마을 무첨당의 공간을 재해석한, 방과 대청과 누마루로 구성한 유첨당이다. '더함이 있다'라는 뜻이다.
여강이씨 종가인 무첨당의 초각과, 경주손씨 종가인 서백당의 난간을 더하여 유첨당이라 하였다. 양동마을을 이룬 두 가문의 화합을 의미하고, 전통적인 목구조와 현대적인 철골구조로 지어서 전통과 현대의 결합을 뜻하기도 한다.
고려의 문인 이규보의 <사륜정기>에 있는 공간의 크기, 4명이 둘러앉아 바둑을 두며 풍류를 즐길 수 있는 1평, 사방 1.8미터 크기이다. 전시작품이지만 실제의 느낌을 그대로 연출하여 온돌에 올라가시면 온돌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방안의 창문 밖 벽에는 설치 풍경사진들을 설치하여 관람객은 감상하며 자연의 풍경을 빌려오는 차경을 체험할 수 있다.
관심있는 독자를 위하여 이규보의 사륜정기 자료를 남깁니다.
동국이상국전집 제23권 / 기(記)
사륜정기(四輪亭記)
http://db.itkc.or.kr/inLink?DCI=ITKC_BT_0004A_0250_010_0090_2000_003_XML